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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의자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by 조희

계절의 의자


조희



못이 박혀야만 의자가 의자일 수 있어요


의자 아닌 다른 것으로 말할 수 없는

창가 구석에 있는 빈 의자

창밖에는 사과나무가 어른거려요

두텁게 쌓인 먼지가 슬픔을 절감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요 일요일에는 의자 아닌 망각을 배워요

생각하지 않는 자세가 전망 좋은 방을 빨리 구하겠죠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 요일을 낭비해 보고 싶어요

공기를 떠도는 얼굴이 의자를 내려다봐요

수요일엔 사과향기가 기웃거리다 가고 토요일엔 사과가 앉았다 갔겠죠 의자는 습관처럼 계절을 이해했겠지요 사과 씨 사과 씨 방향으로


가을을 마구 써버린 의자들은 깨달을 거예요

저수지 밑으로 가라앉은 시간이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곳에든지 미치고 싶은 것들에 미친 의자들의 목록이 있어서 계절이 잘 돌아간다고

낮아질 줄 아는 새가 둥지 위로 날아가면서 짹짹거려요

우리는 가슴 한켠에 못이 박힌 창고 하나씩 갖고 살겠죠 더 이상 쌓아둘 곳이 없어서 터미널이나 기차역에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기다리는 것과 소멸되는 것 사이에서

긴 방황에서 돌아와 의자 위에 앉아요 결코 빈 의자가 아닌 일요일이 가득한

아, 망각에 찔리는 이 달콤한 엉덩이


못이 박혀야 의자일 수 있는

달력이 뜯어져야 계절이 돌아갈 수 있는


예쁜 의자, 양평 해븐리하우스, 2022,1,21.jpg
당신의 달, 야외정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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