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희
겨울 산책길이었다. 성내천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위례신도시까지 가 닿았다. 급격히 찌는 살 때문에 걷기 시작했지만 이른 아침 매서운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가끔 보일 뿐이었다. 겨울풍경을 망각의 배경으로 넘기면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문득 가로등에 붙어 있는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개의 사진 두 장이 크게 실려 있었다. 실종견이었다. 가로등마다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삼십분을 더 걸었는데도 전단지가 가로등에 붙어 있었다. 개를 잃은 주인의 마음이 간절함의 골짜기를 만들고 있었다.
개를 찾습니다.
믹스견(암컷, 4살, 검정, 갈색, 7㎏)
겁이 많으므로 절대 다가가거나 쫓지 마시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 위치만 부탁드립니다.
몸은 검정 바탕털에 눈 위, 입 주변, 턱 아래. 팔 다리는 갈색털입니다.
믹스견은 갈색 패딩옷을 입었고 눈동자는 까맣게 빛났다. 눈 바로 위는 갈색점을 찍어 놓은 것처럼 타원형 갈색털이 있었다. 전단지의 내용대로 동그란 코와 입 주위, 턱 아래, 팔 다리에도 갈색털이 나 있었다.
개를 찾는다니! 실종견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아마도 몇 년 전부터 반려견 복이와 함께 살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가로등에 붙은 전단지를 만져보았다. 촉감은 얼음처럼 차갑지만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전단지 뒷면에서 불어왔다. 훈훈함이 발끝까지 흘러내렸다. 개를 간절히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뻤다. 전단지 밑에는 개를 찾으면 직접 전단지를 수거하겠다는 문구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갑자기 마음 한켠이 울컥해졌다. 얼마 전 마주쳤던 전단지의 믹스견과 비슷한 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아치형 다리 위를 지날 때였다. 성내천을 건너 방향을 바꾸어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거뭇한 형상이 다리 밑 근처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은 개였다. 짖지도 않고 조용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운명 속에서 구출해 달라는 것 같았다. 좀 떨어진 곳에서 바라봐도 말라 있었고 털에 윤기가 없어 보였다. 목줄은 보이지 않았다. 한두 사람이 개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어쩌다 개가 저기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리 위에서 머뭇거렸다.
때마침 등 뒤를 지나던 아줌마 한 분도 개를 봤는지 말을 걸어왔다. “요즘 개를 버리는 사람이 많다죠? 아예 집을 찾아오지 못하도록 차에 싣고 멀리까지 가서 버린대요.” “정말요?” “저 개도 그럴 거야.”라고 했다. 어떻게 버릴 수가 있을까.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내가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야, 개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몰라, 생각을 바꾸고 신고하기로 했다.
핸드폰에 ‘유기견을 발견했을 때’라고 쳤다. ‘유기견 발견 시 관할시·군·구청의 유기동물 담당부서에 신고해 주세요.’라고 나왔다. 그리고 추가로 확인할 곳은 주민센터, 경찰서, 지구대, 소방서, 동물보호소, 동물병원, 애견샵, 동호회/카페 등이 있다고 했다. 마침 가까이에 주민센터가 있었다. 그곳으로 달려가서 사진을 보여주고 신고를 했다. 바로 주민센터 공무원 두 분이 함께 가서 찾아주었지만, 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이후 내가 들은 소식은 구조대도 출동했으나 개를 찾지 못했다는 거였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나도 모르게 그 개를 처음 보았던 장소에 자주 찾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아치형 다리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구슬픈 개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개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주인을 찾는 것 같은 구슬픈 소리였다. 그렇게 곡진한 울음소리는 처음이었다. “아~~오~~~!!” 하고 여러 번 울었는데, 정확히 어디서 우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소용없었다. 오래도록 그 울음소리는 허공을 울렸다. 우리 집에서 걷기엔 먼 거리여서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가 돌아올 땐 걸어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가끔 길을 멈추고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습관처럼. 개를 위한 기도도 정성껏 했다.
나도 개를 잃은 적이 한 번 있었다. 나의 고향에는 메리가 있었다. 집에서 기르던 메리라는 강아지였다. 동네 어른들이 흔히 똥개라고 부르는 개. 엄마가 설거지한 뒤에 우리가 먹던 국물에 밥을 말아주면 긴 혀로 개밥그릇을 맛있게 핥아먹던 착한 개.
나의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나보다 두 살 위인 언니와 내 뒤를 메리가 졸졸 따라다니던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메리는 윤기 나는 누런 털을 갖고 있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메리는 우리집에 있었다. 그런 메리가 어느 날 사라졌다. 언니랑 나는 저녁 늦도록 메리를 찾아다녔다.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메리 못 보셨냐고 묻고 다녔다. 그리고 마을을 돌아가는 개천이 금강으로 흘러가기까지는 몇 개의 다리가 있었다. 메리가 그 다리 밑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옷이 다 젖는지도 모르고 음습한 다리 밑에도 가 보았다. 언니랑 메리를 찾아 이웃 마을까지 갔다가 아버지한테 혼난 적도 있었다.
어른들은 개가 열다섯 살 늙은 개라서 주인 몰래 죽으려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린 난 충격을 받았었다. 개의 죽음을 생각도 못했었고, 혼자서 불쌍하게 죽는다는 것이 내겐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언니도 나와 같은지 큰 눈망울에서 나오는 눈물을 소매 끝으로 자주 훔치고 다녔다. 우리는 오랫동안 메리를 찾아다녔고 슬피 울었다. 언니랑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제일 빛나는 샛별에 메리별이라고 이름을 붙여 보기도 했다.
겨울 동안 전단지 속의 믹스견과 산책길에 만났던 검정개, 너무나 구슬펐던 개 울음소리와 메리에 대한 추억이 뒤죽박죽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허망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2월의 끝자락에서 어떤 것을 찾고 싶었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따스한 새싹 같은 그런 것.
믹스견의 주인에게 연락해보기로 했다. 전단지 사진 속에 있는 개주인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놓쳤던 믹스견 찾았나요? 계속 가슴에 남아 여쭈어보아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내 마음에 벽난로가 켜진 것처럼 기분이 환해졌다. ‘안녕하세요? 2주 뒤에 찾았어요. 경기도 광주에서요. 참 멀리도 갔죠? 여쭤봐 주시어 감사합니다.’ 너무 반가워서 다시 문자를 썼다. ‘강아지가 무탈하고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니 행복해집니다. 기쁘시겠어요. 개 이름이 궁금했어요.’ 또다시 핸드폰이 경쾌하게 띵똥 문자오는 소음을 냈다. ‘강아지 이름은 까미입니다. 따뜻한 관심과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입술을 움직여 아, 까미, 까미, 발음해보았다. 문득 내가 기도했던 간절한 순간이 떠올랐다. 개주인은 또 얼마나 더 간절했을까. 이런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개를 사랑하는 완벽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간절함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봄도 이런 간절한 골짜기를 지나 강물에 도착하는 것이다.
마침 반려견 복이가 내 곁에서 공을 물고 놀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우리는 본능으로 서로를 느끼는 것 같았다.
저 구름의 영혼 속에서 소리 없이 구름이 머리 위를 지나듯이 까미가 달려오고, 메리가 달려왔다. 그들은 나의 무의식에 내려왔다가 구름처럼 서서히 흩어졌다.
지금 이 시간의 톱니바퀴를 까미 주인 같은 사람과 함께 굴리며 산다는 것이 그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