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2024 봄호
조희
이 방은 궤도를 벗어난다
벽이 단단해서
내가 말하는 여름은
손가락도 없는 뭉툭한 손의 높이로 있었다
두 눈 없이 조명을 밝혀야 하는 밤마다
꿈속으로 찾아오는 손가락들
사할린 겨울바다에 비치는 얼굴들을 베고
나는 사라지는 명자 아끼꼬 쏘냐*를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비로소 이곳은
스스로 빛을 밝혀야 하는 둥근 등일지도 몰라서
어제를 추모하는 병이 생겼다
몹시 간지러웠다 잠들지 못한 몸은 뜨거웠다
손가락도 없고 스위치도 없는
이 방에서 명자 아끼꼬 쏘냐를 만났다
석류같이 한순간에 확, 터지는
붉은 방 밖에서는 나를 투명인간이라고 불렀다
빛을 빨아들이는
온몸이 붉어진 등 바깥으로
내가 보이고
*지미필름에서 제작한 이장호 감독 영화.
이방인 시에 나오는 명자 아끼꼬 쏘냐 영화 포스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