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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조희

한국작가회의 2024 봄호

by 조희

이방인


조희



이 방은 궤도를 벗어난다

벽이 단단해서


내가 말하는 여름은

손가락도 없는 뭉툭한 손의 높이로 있었다


두 눈 없이 조명을 밝혀야 하는 밤마다

꿈속으로 찾아오는 손가락들

사할린 겨울바다에 비치는 얼굴들을 베고


나는 사라지는 명자 아끼꼬 쏘냐*를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비로소 이곳은

스스로 빛을 밝혀야 하는 둥근 등일지도 몰라서


어제를 추모하는 병이 생겼다

몹시 간지러웠다 잠들지 못한 몸은 뜨거웠다


손가락도 없고 스위치도 없는

이 방에서 명자 아끼꼬 쏘냐를 만났다


석류같이 한순간에 확, 터지는

붉은 방 밖에서는 나를 투명인간이라고 불렀다


빛을 빨아들이는

온몸이 붉어진 등 바깥으로

내가 보이고



*지미필름에서 제작한 이장호 감독 영화.


SE-108c53b2-5245-4b7d-af8e-7c77404fab5c.jpg?type=w773 이방인 시가 실린 한국작가회의 회보




이방인 시에 나오는 명자 아끼꼬 쏘냐 영화 포스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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