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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Nov 20. 2024

천하가 나를 통해 울부짖는 것, 詩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했던가.

천하의 에너지
한 점으로 응축되어 꿈틀거리다
마침내 누군가의 주파수와 공명되어
빅뱅 일어나는 것

부분의 합 아닌 전체에의 폭발
돈오돈수

시는 삶의 이면 직조한다기보다
생의 조각들로 엮은 인드라망이기보다

우주의 속살 훔쳐보고
그 비밀 널리 발설하는 것
광대무변 적나라한 전장戰場 조망하는 것이다.

그와 나란한
생에의 의지 천명하는 것이다.

거룩한 분노이거나
때를 기다리는 칼의 피울음이거나
천하의 포효거나
빼앗긴 조국 찾으러 떠나는 출사표다.


피 끓는 청춘
그 울분이다.

우주는 날로 가속팽창하는데
어찌하여 인간은 갈수록 쪼그라드는가?

인간으로 나서
인간의 입장에 서지 않고
인류 대표하지 않고
제 입장만을 골몰하며

서둘러 좀스러워지는가?

시는 단지 내 입장 쓰는 것이 아니다.
시는 인류의 나아갈 바
인간의 입장에 빙의되는 것

우주의 광기 받아내는 것
천하가 나를 통해 울부짖는 것

그 서슬 퍼런 호령의 통로 되는 것

고로 늙은 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정신 혼미한 자
기어코 움츠러든 자

태양빛 홀로 독차지하는 자에게도
기득권으로 결계치고 들어앉은 자에게도
뱀처럼 똬리 튼 자에게도

칸막이로 가로막고
넘을 수 없는 장벽 둘러치는 자에게도

오지 않는다.
올 수 없다.
올 리 없다.

길 막혔으니 오기 불능이다.


시는,

높은 곳에서 오지만
낮은 곳으로 오기 때문이다.

마천루 통해 오지 않고
땅으로 흙으로 오기 때문이다.

영광의 순간에 오지 않고
페허의 참척에서 오기 때문이다.

행복의 모양으로 오지 않고
요원에 불로 오기 때문이다.

다친 제 생채기 어루만지는 자에게 오지 않고
불길 휩싸인 자에게 오기 때문이다.

그 불,

나른한 꿈 속에 있지 않다.
짊어진 짐 속에도

왕관에도 훈장에도 없다.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플랫랜드*에도 없다.

시는 어디에 있는가?

우뚝 일어서면 시詩
성큼 한 발 떼면 포효
뜨겁게 만나 포옹하며 나아가면 철학이다.

시와 포효와 철학은 다르지 않다.

마침내 인류구원이다.






철학 말하고자 시를 빌려온 것

시 쓰시는 분들은 너므 개의치 말기를.



*돈오돈수 : 지금 모르면 영원히 모르고, 지금 하는 짓을 영원히 하게 되어 있으니 니체의 '영원회귀'는 틀린 말이 아니다. 천재의 존재를 생각한다면 천재의 시는 대부분 20살 시절의 것. 랭보도 나이 들어서는 시를 쓰지 못했다. 천하의 피울음, 우주의 광기 받아낼 수 없는 사정 있었을 것. <돈오점수>에는 승이 절을 떠날 수 없고 절도 돈을 벌어 유지해야 하는 사정이 있는 것. 돈오돈수가 진짜다.


*늙은 자 :  지구의 공전과 상관 없다.

세상에는 100세 청년도 있고 20살 노인도 있다. 정신이 늙은 자는 20살이어도 노인이다.


*플랫랜드 :  1884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수학소설이자 SF소설 제목. 2차원의 납작한 세계. 3차원 이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입체적 사고를 할 수 없는 평면 차원을 말한다.







고운로 그 아이 작가님 어제 시 영감 받아 단감 씨를 쪼개 보았더니... 쨘~

씨앗 속 하얀 숟가락은 여전히 잘 있었네요.

(어릴 적 추억 소환에 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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