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애들도 자기들끼리 정보교환이라는 걸 하는지. 하여튼 그놈의 '주말 지낸 이야기' 시간이 원흉이다.
유치원에 갔다 온 둘째가 누구누구는 주말에 산리오 카페를 다녀왔다며 졸졸 쫓아다니며 성가시게 군다. 걔는 좋겠다, 걔네 엄마는 천사다, 그 집 딸로 태어났으면 나도 거길 갔겠지 성화를 부린다.
나는 핫한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적정 인원을 초과한 것 같은 북적임이 느껴지면 편안하지 않고 어딘가 답답해서 별로다. 그러나 엄마는 강한 법. 아이를 위해서는 가끔 용기를 낸다. 가끔만.
산리오카페가 어디에 붙었는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다가 동네엄마의 친절한 안내를 힘입어 앱도 깔고 예약도 했다. 카페의 위치는 무려 홍대였다. 10년 전에 가봤던 홍대. 다 변해버린 홍대에서 소싯적에 가봤던 '수 노래방' 만이 여전히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카페를 찾기 위해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지도앱을 열심히 들여다보는데 이놈의 둘째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와, 이 건물은 뭐야~"
"와, 저 언니 좀 봐. 너무 예쁘다."
"와, 엄마 우리 저기 좀 가보자."
와~와~와를 연발하며 아이는 매우 신났다. 급기야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길 한복판에서 춤도 춘다. 흥이 많은 둘째를 두고, 얘 커서 클럽 죽순이 되는 거 아니냐던 남편의 농담이 생각난다. 진짜 그럴지도.
지독한 길치인 나는 지도앱의 도움으로 카페에 무사히 들어섰다. 줄 선 사람들의 행렬을 제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예약하는데 드는 잠깐의 수고가 여기서는 암행어사 마패 만치의 위용을 자랑한다. 카페에 입성한 둘째의 와~와~소리는 더욱 커진다. 둘째는 모든 것에 감탄한다. 의자에도 감탄하고 창문에도 감탄하고 불빛에도 감탄한다. 이러다 공기에도 감탄할 판이다.
너는 그게 그렇게 기쁘니. 나는 감탄하는 둘째를 보고 감탄한다. 사소한 것에 감탄을 연발하는 둘째가 나는 신기하다. 너는 이곳을 기뻐하고 나는 너를 기뻐한다. 나의 잠깐의 수고로 어떤 존재를 이토록 기쁘게 할 수 있다니. 새삼 나의 능력에도 놀란다.
캐릭터 음료를 먹으면서 연신 사진을 찍는 둘째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남자들이 어린 여잘 좋아하는 이유를.
어린 여자는 작은 것에도 감탄한다. 별 거 아닌 곳을 데려가도 감탄하고, 별 거 아닌 것을 줘도 감탄한다. '처음'의 위력이랄까. 어린 여자들하고 연애하는 게 재밌다는 친구가 생각났다. 속물 같은 자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지금은 걔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붐비는 핫한 장소를 싫어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가끔 가볼 만하다고 느꼈다. 기뻐하는 너를 보는 기쁨이 그런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으니까.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라는 둘째를 보며, 이번 '주말 지낸 이야기'시간 후 여러 집에 또 난리가 나겠구나 싶었다. 우리 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