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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Sep 13. 2023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임군홍의 <행려(行旅)>

문드러진 손목과 상처 난 손을 포개고

한쪽 눈은 떠지지 않은 채

오므린 입술의 엷은 미소

    

몸집에 비해 크고 두툼한 외투가

다행이지만

손은 아직 감싸지 못했군요

    

배고픔과 추위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화가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나요?

    

돌아가시기 몇 달 전의 친정아버지

걸인이었던 어느 성자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이 떠올라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화가의 붓끝에서

시간 여행 출발

80여 년 후 예화랑의 주인공이 되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아픔 많은 밑바닥 인생이라고

얕보지 마세요

동정은 더더욱 사절입니다

    

이래 봬도 자족하며

성실한 하루하루 보내고 있으니

    

발가벗은 채 모태에서 나와 발가벗은 채 돌아가는

우리 모두 

같은 처지라고요?   


---

작가 노트: 1950년 6.25 전쟁 중 납북되어 1980년대까지 빛을 보지 못했던 화가 임군홍의 정전 70주년 기념전이 예화랑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1949년 달력을 만들다가 최승희 사진을 싣는 바람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답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 <가족> 뿐 아니라 유족들이 눈물겹게 보관했던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 분방한 터취의 작품들 가운데서 비교적 단조로운 <행려(行旅)>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북평낭>, 1940,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행려> 1940, 종이에 유채
렘브란트 <제욱시스에 빗댄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663, 쾰른의 Wallraf Richartz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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