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심보에서 시작함
1. 꿈을 찾아서
아들에게 취미로 첼로를 시키던 십 년간 단 한 번도 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아이들 키우고 집안의 대소사에 매여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때 아이와 함께 배우며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갱년기를 추스르고 첼로 배워 볼까 하는 마음이 처음 떠오를 때 민망해서 조심스레 주변의 의견을 물었다. 긍정적인 지지를 얻고 싶어서 늘 엄마의 꿈을 응원하던 막내에게 내비쳤다.
“엄마도 첼로 한번 배워보고 싶어.”
“예? 첼로요?” 아들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왜, 엄마 나이가 많은 거니?”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막내는 잠시 가만있더니 마지막에 어른스럽게 한마디 했다.
“그런데 엄마~ 마음에 간직하고만 있어야 하는 꿈도 있는 법이에요.”
“뭐?”
나도 그 꿈은 차마 발설하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만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막상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야릇해졌다.
남편은 펄쩍 뛰었다.
“어깨에 안 좋을 거야.”
“요즈음 좀 괜찮아졌어요.”
“겨우 가라앉은 오십견 도지기 십상이지. 당신은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탈이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반대하니 자신이 없어졌다. 포기할까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했다. 고 3이던 막내는 그때 자신의 꿈에 대한 작문이 상을 받았다고 자랑하던 참이었다.
‘녀석, 자신의 꿈은 중요하고 엄마의 꿈은 간직하고만 있으라고?’
‘저이는 뭐든 늘 하지 말라고 하니까….’
반발심에 시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곧 우유부단한 마음이 스며들어 악기에 조예가 있는 친지의 의견을 또 물었다. 딸아이의 바이올린 실력이 높은 그 어머니는 고개를 갸우뚱.
“중년에 현악기는 좀 무리이지 싶은데요?”
이분의 의미심장한 조언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가며 가며 새록새록 지금까지도 깨달아가는 중이다.
사람이 뭘 하고 싶은 마음이 크면 객관적이지 못하고 듣고 싶은 충고만 듣는다. 그 후에는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피하고 우군을 찾아 나선다.
미국에 사는 여동생이 처음으로 지지해 주었다.
“오보에 하던 우리 아주버님도 50대에 첼로 시작했어. 현악기로 오케 참여하고 싶다고.”
마침 40대에 첼로 배운 분의 책이 나와 있었다. 존 홀트의 『절대 늦지 않음: 나의 음악인생 이야기』 였는데 절대 늦지 않았다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 그의 일상은 하루 저녁은 오케스트라 하러 가고, 다음날은 트리오, 그다음 날은 콰르텟을 하는 것이었다. 중년에 배워도 이렇게 풍성한 연주활동이 가능하구나 싶어 마음이 부풀었다. 현악기는 어려서 배워야 한다는 스즈끼의 주장을 반박하는 대목도 있었다. 이 분처럼 40대 때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 사십이나 오십이나 중년인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6개월간 준비 기간을 갖기로 하고 그동안 뜸 했던 헬스장에 나갔다. 오십 견이 재발하지 않게끔 어깨 주변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첼로를 배우다 어깨가 다시 나빠지는 불상사가 생기면 남편에게 낯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2. 고난의 시작
“아직도 시작 안 했어? 그 나이에 배우면서 뭘 또 기다려? 당장 시작해!”
헬스장을 다닌 지 두 달 만에 동생에게 혼이 나서 레슨을 시작했다. 학원은 찾아갈 엄두가 안 나서 방문 레슨을 받기로 하고, 악기는 아들이 쓰던 것으로, 교본은 스즈키 1권, 스트링빌더 1권을 구입했다.
역사적인 첫 레슨 날, 준비해 놓았던 책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자세를 잡는 데 시간이 다 걸렸기 때문이다. 교본은 그 후로도 몇 달간 사용하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이 하고 앉아서 두 다리 사이로 첼로를 안는 자세, 활을 쥐는 방법을 터득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활을 잡고 그냥 줄을 켜면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우선 활이 제대로 쥐어지지가 않았다. 어깨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이십 분만 지나도 좀이 쑤시고 온몸이 결려 계속할 수 없었다. 이 지경에 이르자 소리는 제쳐두고 제대로 자세만 잡는다면 원이 없겠다 싶었다.
활이 겨우 쥐어져서 처음으로 현을 켰던 날은 절망과 후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었다. 힘없이 뿌지직 나는 소리라니…. 첼로에서 그렇게 해괴한 소리가 날 수 없었다. 오른손으로 어깨를 회전하여, 왼손을 짚지 않은 개방 현을 켜는 연습에만 5개월이 걸렸다. 언제나 왼손 진도를 나갈까 고대했지만 막상 왼손을 짚은 날 또 한 번 낙망했다. 열심히 손가락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끝이 굳은살이 박이도록 매일 짓누르는 연습을 했는데, 소리가 예쁘게 나지는 않고 손가락만 부르텄다.
제1 포지션 있는 스트링 빌더 1권을 마치기까지 1년 8개월이 걸렸다. 보통 연주자들은 아무런 막힘없이 쉬익 이 줄에서 저 줄로 손가락을 옮겨가건만, 나에게 A 줄에서 바로 옆 D 줄로의 이동은 참으로 먼 행차였다. 1 포지션에서 2 포지션으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관현악곡을 하면서 줄 위를 날아다니는 첼리스트의 손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손가락 움직임에 하도 뜸을 들이니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하나 둘 셋 이제부터 2 포지션 갑니다 하고 가면 안 돼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옮겨가야 해요.”
“저도 알아요, 선생님. 저도 재빨리 옮겨가고 싶어요. 이놈의 손가락이 말을 안 들어서….”
“그렇게 한참 생각 한 후에 움직이지 말고 그냥 팍팍 움직이세요!”
“아니 생각 같은 건 안 해요. 그냥 손이 그렇게 빨리 안 움직여서….”
하도 손놀림이 둔하니 뇌에 무슨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계속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어 어느 날 남편을 붙들고 속마음을 토로했다.
“나 첼로 때려치울까 봐.”
“왜 또?”
“계속 한들 영 제대로 된 소리가 날 것 같지 않네.”
“뭐, 점점 소리가 나아지던데?”
“아! 근데 친구들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네요.” 한숨이 나왔다.
“친구들이 뭔 상관이야. 자기가 힘들면 관두고 좋으면 하는 거지. 당신은 다른 사람을 너무 의식해.”
“내가 그렇게 앙상블 하자고 떠벌려 놨는데, 어떻게 그만둬요?”
만만한 남편을 붙들고 투정을 부렸다. 계속하기엔 너무 버거운데, 사방 데다 첼로 배운다고 말해놔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돌아봐도 심히 딱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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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t, John Caldwell『Never Too Late: My Musical Life Story 』 Da Capo Pres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