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아줌마가 첼로를 만나면
3. 기나긴 여정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며 망설이는 동안에도 선생님이 꾸준히 오시는 바람에 레슨이 이어졌다. 어느 날 막내가 거실에서 연습하는 내게 말을 걸었다.
“엄마는 <나비야>를 그리 좋아하세요?”
“내가 언제 그걸 좋아했어?”
“늘 상 <나비야>만 켜고 계시잖아요?”
“으음. 누군 <나비야>만 하고 싶겠냐? 넘어가질 못해서 그래. 넘어가지를….”
그렇게 단순한 동요 <나비야>를 완성하는데도 몇 달이 걸렸다.
첼로가 악기 중에서 가장 듣기에 무난하다고 하지만 지지직거리는 내 연습 소리는 내가 들어도 집안의 소음 공해였다.
“첼로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지면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아내가 아프지 않다는 증거니까~”
남편에게는 되레 큰소리를 쳤는데, 내가 앓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 이 협박이 어느 정도 먹혔다. 시어머니는 귀가 어둡기도 하고, 과거에 손자의 교습을 오래 봐와서인지 별말씀이 없었다. 다만 친구 분들이 오시면 문 닫아도 소리가 들릴까 봐 바로 연습을 중단하곤 했다.
“저거 뭔 소리여?”하고 한분이 묻기라도 하면 보나 마나 내 첼로가 이야기 도마 위에 오를 것이 빤하니.
아들들은 조심스레 크래임을 걸었다.
“엄마! 좀 이따 저 나간 다음 연습해 주시면 안 돼요? 책이 집중이 안 돼서….”
연습시간이 30분에서 한 시간으로 늘고, 밤 10시를 넘긴 날이 몇 번 있자, 며칠 후 엘리베이터에 공문이 붙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나 저녁 늦은 시간에 악기 연습이나 큰 소리 음향기 트는 것을 삼가 주십시오.> 고맙게도 에둘러 표현했지만 아마도 내가 표적이었을 것이다. 연습시간을 최대한 낮 시간대로 옮겼다. 그때는 방도 마땅치 않아서, 남편 서재와 아들방과 거실을 넘나들며 각 방의 주인이 없는 시간에 연습을 했다.
<작은 별>을 시작할 수 있던 시점은 첼로 배운 지 1년이 넘어서였다. 몹시 쉬워 보이는 그 곡도 여러 달 걸렸다. 2년 반이 넘어서야 스즈끼 1권이 끝났다. 이 교본의 마지막 곡은 바흐의 미뉴엣 2번이었는데 선율이 아름답고, 동요가 아닌 클래식 곡이라 마음이 뿌듯했다. 다소 위로를 얻고 용기가 생겨 그다음부터는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덜 했다.
선생님 제자 중에 저학년 초등생이 있었다. 얼핏 말씀이 그 학생은 시작한 지 일 년밖에 안 됐는데, 내가 배운 지 3년 차에 하고 있는 스즈끼 2권을 한다는 것이다.
“아니 벌써 2권요? 그리 소화를 잘해요?”
“어린 나이일수록 왼손을 쉽게 짚어요. 다른 줄로 겁 없이 옮겨 가고요.”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유연성과 습득력이 큰지 설명해 주었다. 조금 지나니 그 학생은 내가 하고 있는 곡을 벌써 떼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 있었다. 따라잡으려고 매일 한 시간을 꼭꼭 채워 연습했다. 이제 진도가 비슷하려니 하고 물으니 이미 2권을 끝내고 3권으로 가 있었다. 내가 열심히 달렸으나 그 친구는 날아갔던 것이다. 부러움과 야속한 마음을 삭이면서 비교는 금물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얼마 후에 그 학생이 발표회에서 솔로 연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꿈도 못 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그 아이가 비브라토로 멋지게 연주해 냈다는 그날, 쓰라린 가슴을 어루만지며 맘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제는 라이벌도 끝났네. 실력이 비슷해야 라이벌이라도 하지.”
스즈끼 2권에서 헤매는 자신이 무척 한심하게 느껴져서 어느 날 선생님을 붙들고 또 한탄을 했다.
“선생님, 저처럼 이렇게 늦게 첼로 배우는 사람 없겠죠?”
“아니요. 일찍 시작하신 거예요. 보스턴에서 유학하는 제 친구가요. 주민 센터에서 레슨을 시작했는데 90세 할아버지가 계시대요. 제일 성실하게 배우신대요.”
“와우! 90세요?”
역시 미국은 선진국답게 앞서가는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다음부터 나이 타령은 하지 않기로 했다.
클래식 곡이 영 진도를 못 나가는 것은 하루에 겨우 삼사십 분 정도 연습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존 홀터의 책에서 그가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에 새벽같이 출근해서 매일 3시간 가까이 연습했다는 대목이 생각났다. 내 형편으론 아침저녁으로 나눠서 각각 1시간씩 총 연습량 2 시간까지 늘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두 시간을 채운 날 스스로 무척 대견했다. 한밤중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이제 이렇게 쭉 연습해서 멋진 클래식 곡을 소화하리라, 마음먹으며 꿈에 부풀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몸이 이상했다. 잘 일어나 지지가 않고, 둔탁한 아픔이 등 뒤 허리 부분에서부터 엉치까지 느껴졌다. 내 사전에 요통은 없었는데, 난생처음 허리를 무겁게 짓누르며 걸음을 못 디디게 하는 통증을 경험했다. 급한 김에 시어머니가 쓰던 파스를 얻어 붙이고 소염진통제를 찾아 먹었다. 남편에게는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간신히 일을 하면서, 한동안 첼로 연습을 쉬었다.
그 후로 실천력이 약하다고 자신을 너무 닦달하지 않기로 했다. 한 시간을 건성으로 채우고 자주 빠트린 날도 있었던 것이 그나마 허리와 어깨를 보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절제력이 있어서 꼬박꼬박 한 시간 이상 연습했더라면 진작 몸이 망가져서 첼로를 그만두어야 했을 것이다.
식구들이 아플 때 내 첼로 연습도 일단 멈춤이 되었다. 아들이며 시어머니, 남편이 차례로 아픈 적이 있었는데 첼로를 6개월 이상 쉬어야 했다. 아픈 식구를 돌봐야 해서 힘이 소진되어 연습할 수도 없었지만, 첼로 연주 소리가 환자에게 부담될까 봐 못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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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그림 사진: BERÉNY Róbert <Cellist> 1928 헝가리 국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