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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매 맞지 않으려고

셰익스피어의 꾀,『말괄량이 길들이기』

by 램즈이어

파도바의 갑부 집 딸 카타리나는 천하에 못된 말괄량이로 뭇 남성들의 기피대상이다. 동생을 두들겨 패주고 욕하는 언니와 반대로 차녀 비앙카는 양순하고 예뻐서 구혼자가 줄을 섰다. 큰딸이 노처녀로 늙어갈 것이 빤하니 아버지는 언니가 시집가기 전에 동생을 보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비앙카의 구혼자들은 카타리나를 데려갈 사람을 애타게 찾는데, 마침 베로나에서 온 페트루치오가 관심을 보였다. 부잣집 딸이라는 것에 솔깃하며 그녀의 거친 성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페트루치오: 재산은 청혼의 반주가 될 테니까--- 그녀가 저 플로렌티어스의 애인같이 박색이건, 백 살 무당 같은 할망구건, 아니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를 뺨칠 정도로 고약한 바가지 장이건 상관없네. 그 여자가 가을철의 천둥벼락처럼 왈패 짓을 하더라도 상관없어.


그레미오: 그런데 정말 그 살쾡이한테 청혼하시겠습니까? (174p)


페트루치오: 미쳐 날뛰는 멧돼지 같이 바람에 뒤끓는 파도소리도 들어 본 사람이오. 대지를 뒤흔드는 대포소리, 난투하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아우성과 준마의 울음소리, 그리고 나팔소리도 들어 본 사람이오. 여편네 혓바닥쯤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까짓 것은 농부네 화로에서 군밤 껍질 터지는 소리의 절반만큼도 못합니다. * (1막 2장 171 p)

비앙카의 구혼자들은 너무도 반가워 열두 난제보다 더 큰 위업을 맡는 헤라클레스라고 치켜세운다.

페트루치오가 카타리나를 처음 만나기 앞서, 절친 호텐쇼는 류트 운지법을 가르치다 카타리나에게 얻어맞는다. 그녀가 류트를 세게 내리 쳐서 자신의 골통이 악기를 부수고 나왔다 호소하는 호텐쇼에게.


페트루치오: 세상에, 이야말로 활기찬 처녀로다. 난 얼마나 그녀와 수다 떨고 싶은지! (2막 1장 160, 162) **


페트루치오가 카타리나를 휘어잡는 방식은 주로 '독(毒)은 독(毒)으로'지만 '긍정적 강화' 같은 심리치료도 있다. 그 과정을 요약하면.

1. 카타리나와 단 둘이 있을 때는 그녀가 어떻게 나오던 그 말투에 영향받지 않고, 그녀의 험한 응대를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말한 것처럼 칭찬하고 치켜세운다.


페트루치오: 아, 당신의 여왕 같은 걸음걸이, 방 안이 환합니다. 달의 신 다이애나도 숲을 이렇게까지 빛나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오. 오, 당신이 다이애나가 되고, 다이애나에겐 케이트가 되라죠. 그리고 케이트는 순결한 여자가 되고, 다이애나 더러 놀아나라죠. * (2막 1장 184 p)


2. 대중 앞에서 페트루치오는 카타리나가 생각도 못할 행패를 부린다. 평소에 진상이었던 카타리나마저 그의 터무니없는 행동에 얼굴이 발개지고 사람들 앞에서 낯 부끄러워한다. 결혼식 중에 성경을 떨어트린 사제를 패 주고, 무식하게 신부와 키스하는 등.


그레미오: (카타리나가) 덜덜덜 떨었죠. ----

(예식 후) 그는 신부 목을 휘어잡아 그 입술에 엄청난 쪽 소리로 키스하여

입술이 떨어질 땐 온 교회가 울렸어요. ** (3막 2장 175-177)


3. 음식이나 재봉사가 맞춰온 카타리나의 옷과 모자에 대해 생트집 잡으며, 평소 카타리나가 하던 것보다 더한 심술로 내던지거나 돌려보낸다. 남편 옆에서 지켜보던 카타리나는 하인들에 대한 미안함과 물건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4. 첫 친정집 나들이 때 지독하게 (사실은 말도 안 되게) 우기는 작전을 편다. 하늘에 뜬 태양마저 달이라고 하는 둥. 부부간에 실랑이가 생기면 하인에게 말머리를 돌리라고 안 가겠다고 뻐튕기니, 카타리나는 귀찮고 치사해서 남편의 주장에 무조건 수긍해 버린다.


카타리나: 그럼, 제발 갑시다.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달이건 태양이건, 뭐건 좋아요. 뭣하면 촛불이라고 하셔도 좋아요. (4막 5장 221p) *


5. 며칠 지나니 남편 말이라면 즉시 수용하는 것이 카타리나의 습관이 돼버렸다. 무의식적으로 자동 반응한다.

페트루치오: 카타리나, 당신 모자는 어울리지 않는구먼. 그 장난감 같은 걸 벗어서 발로 짓밟아 버리구려. (카타리나가 그렇게 한다.) * (5막 2장 233p)


6. 카타리나는 마침내 갓 혼인한 미망인과 동생 비앙카에게 아내 된 자가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파하기에 이른다. 이 설교는 마치 페트루치오의 전리품이자 카타리나의 항복 문서 같다. **


남편은 당신의 주인님, 생명이고 보호자, 머리이며 군왕으로, 당신을 보살피고 당신의 생계 위해 바다와 땅 양쪽에서 쓰라린 노동에 자기 몸을 맡기며, 당신이 집에서 따뜻이 편안히 누웠을 때 폭풍우 밤에도 차가운 낮에도 깨 있는데 그가 당신 손에서 갈망하는 공물은 사랑과 고운 모습, 진정한 복종일 뿐으로---그토록 큰 빚에 너무 작은 보답이죠. (5막 2장: 152-160) **


요즈음 여성들에게 셰익스피어가 몰매를 맞을 수도 있겠는데. 역시 천재의 혜안은 2000년대를 내다보았다. 살짝 도망칠 구석을 마련해 둔 것이다.『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극 중 극 (劇 中 劇) 형식이다. 서막에서 꿈같은 상황이 소개되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연극이다. 그러니 꿈의 특성인 과장과 왜곡, 비현실성과 덧없음을 상기하고 가학적이고 유치하며 억지스러운 인물들의 행동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처럼 페트루치오가 카타리나 못지않게, 혹은 그녀 보다 더, 호탕하고 배짱이 두둑한 성품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왈패를 벗은 카타리나는 뭔가 매력이 약해졌다. 길들여지기 전의 카타리나가 예절만 갖춘다면 오늘날 꽤 인기 있는 여성상(女性像)이지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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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꿈/베니스의 상인/말괄량이 길들이기』윌리엄 셰익스피어, 세계문학전집 009, 동서문화사 2016

**『셰익스피어전집 2권』최종철 옮김, 민음사 2024 (20-2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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