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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사랑을 얻은 자

리어왕의 행복,『리어왕』 

by 램즈이어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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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리어왕은 내 마음속에 불행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재산과 권력을 몰아준 두 딸에게 배신당해 마침내 미치광이가 된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이번에는 리어왕의 행복이 눈에 띄었다. 어떤 사람이고 온통 불행하거나 내내 행복할 수만은 없나 보다. 그는 고난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체험을 했고, 보석 같은 사람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


# 왕은 두 딸들에게 쫓겨나며 폭풍우 속에서 자신을 성찰한다.


 권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사람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몸소 실감하며, 처음으로 집 없고 헐벗은 사람들의 형편에 공감한다. 이후 괴로움이 극심해져 정신이 분열되기 시작하지만.  


리어: 또 녀석(거지)이 개를 피해 도망치는 것도. --- 넌 거기에서 권위의 위대한 모습을 볼 수 있었어. 지위 있는 개는 사람도 복종해. 넝마 옷 사이로는 작은 악덕 보이지만 법복과 털외투면 다 덮여. 죄에다 금칠하면 정의의 강한 창도 힘 못쓰고 부러지나. (4막 6장: 149-151, 156-158)     


리어: 집 없이 가난한--- 무정하게 강타하는 이 폭풍을 견디는 불쌍하고 헐벗은 자 들아, 너희가 어디 있건 쉴 곳 없는 머리와 먹지 못한 허리와 숭숭 뚫린 누더기로 이 같은 계절에 어떻게 몸을 보전하느냐? 아, 이런 일에 난 너무 소홀했다. 허식이여, 치료를 받아라. 자신을 노출시켜 가엾은 자들을 느껴라. (3막 4장: 26-34)      

        

# 두 사람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얻었다. 

    

 그는 마음씨 고운 셋째 딸과 더불어, 세상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충직한 신하 두 명(켄트와 글로스터 백작)을 두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들의 변치 않는 사랑과 충성과 봉사에 에워싸이니 이만한 복(福)도 쉽지 않으리라.  특히 켄트 백작의 일편단심이 돋보인다. 그는 리어왕이 셋째에게 내린 징벌을 보고 직언하다가 추방령을 받는다.      

켄트: 차라리 쏘십시오. 갈라진 살촉이 제 심장을 뚫더라도. 권력이 아첨에 굴복할 때 신하가 두려워서 말 못 할 줄 아시오? 주상이 우둔할 땐 직언이 명예로운 법이오. 보위를 지키고 끔찍하게 경솔한 이 행동을 최대한 숙고하여 멈추시오, 목숨 걸고 판단컨대 막내딸의 사랑은 가장 적지 아니하며 사람들이 조용하게 공허한 말 않는다고 인정 없진 않습니다.               (1막 1장: 146-153)

리어: 내 눈에 띄지 마라. 

    

 왕 앞에서 강하게 반박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그의 내면에는 왕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추방 후에 초라한 행색으로 분장하고 왕 가까이 있을 수 있는 허락을 얻는다. 이후로 왕이 셋째 딸에게 안길 때까지 그를 수발한다. 육체적으로는 왕의 몸종처럼 돌보며, 대외적으로는 부지런히 형세를 파악하고,  멀리 있는 코델리아와 소통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말보다 실행의 사랑을 생각했던 셋째 딸 코델리아 역시 아버지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왕을 변함없이 받아들인다.  


<미친 리어왕에 대한 소문과 직접 본 신하들의 반응>     

코델리아 : 성난 저 바다처럼 미쳐서 크게 노래 부르며 무성한 구름풀, 고랑 잡초, 수레국화, 독 당근, 쐐기풀, 황새냉이, 독보리와 밀밭에 자라는 온갖 잡초 엮은 관을 쓰셨다 하더구나.   (4막 4장: 2-6)  

 신사: 최하층민이라도 정말 딱한 광경인데 왕이야 더 할 말 있으랴. 둘이서 불러온 인류의 원죄를 속죄하는 딸 하나가 당신께 있습니다. (4막 6장:196-198)     

 글로스터: , 파괴된 대자연의 걸작이여, 이 우주도 그렇게 무너지리. 저를 아시겠어요? (4막 6장: 128-129)


<코델리아가 들판에서 왕을 찾아내고서>     

코델리아: , 사랑하는 아버지, 회복의 약 기운을 제 입술에 싣고서 당신께 입 맞추니 두 언니가 지존께 입혔던 격심한 피해가 지워지기 바랍니다.

자기들 아버지가 아니어도 이 백발은 동정심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 얼굴로 싸움 거는 바람과 맞서셨단 말이에요? 강렬하고 무서운 천둥에 대항하셨어요? --- 그런 밤엔 나를 깨문 적의 개도 난로 곁에 뒀을 텐데 불쌍한 아버진 돼지와 처량한 떠돌이와 썩은 밀집 얇게 깔린 움집에서 기꺼이 함께 묵으셨어요? 맙소사, 맙소사!  

  (4막 7장: 26-29, 30-40)

 말로 하는 약속은 조심하고,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성실하게 실천하고자 했던 두 인격을 만났다.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알아주지 않더라도 변함없는 이런 사랑은 하느님이나 가능할 거 같은데…. 이야기 속에서라도 만나니 마음이 기쁘다. 삶과 인간에 대한 소망이 느껴진다.     

       

# 왕은 셋째 딸과 해후하며 잠시나마 부녀의 정을 나눈다.


 리어왕이 결코 불행하지 않은 것은 마지막에 막내딸의 진가를 알았고 잠시 제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딸에게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왕은 코델리아의 두 언니가 자신들의 다른 욕망으로 삼각관계에 빠져 스스로 몰락하는 결말도 본다.)

 마지막에 코델리아와 해후하고, 둘째 딸의 군대에게 두 사람이 붙잡혔을 때 감옥에서 함께 지내는 나날을 소망한다. 그 바람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진실한 딸과 함께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에 감방에서의 행복을 꿈꾼다.

     

<코델리아의 군대가 패하고 두 사람이 사로 잡히자>

리어: 자 우리, 감옥 가자. 네가 나의 축복을 원하면 난 무릎 꿇고서 용서를 구하마. 그렇게 우린 살고 기도하고 노래하고 옛이야기도 하고 금빛 나비 보며 웃고---

우릴 떼어 놓으려면 하늘의 불 막대로 여우처럼 몰아내야 하리라. 눈물을 닦아라.   (5막 3장: 8-13)        


 코델리아는 자객에 의해, 리어왕은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소진해서 죽음에 이른다.『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내 마음은 워째 해피엔딩인 것 같은 느낌이다. 두 사람이 마지막에 사랑의 소통을 해서 그런 것 같다. 명예, 권력, 부가 모두 사라졌지만 가장 귀한 것을 얻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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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전집 5권『리어왕』최종철 옮김, 민음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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