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시작.
그날의 공기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건너가는 즈음,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끝이 조금 시려 왔고,
교회당 창문엔 사람들의 입김이 살짝씩 서렸다.
나는 다섯 살이었고,
교회라는 공간이 뭐 하는 곳인지는 몰랐지만
그곳에 가는 날이면 언제나 깨끗하고 예쁜 옷이 입혀졌다.
그래서 교회 가는 날이 뭔가 특별하다는 것쯤은,
아이의 촉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예배당 안에서는 어른들이 고개 숙이고 기도하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조용히 앉아 있었고,
목사님의 단단한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공기 속에 흘렀다.
그때였다.
바깥 어딘가에서 아빠의 귓속으로
작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물컵에 물방울 하나 떨어진 듯,
공기 안에 ‘덜컥’ 하고 파장이 일었다.
아빠는 고개를 들었다.
설교도 찬송가도 아닌,
더 익숙하고 더 선명한 무언가.
내 울음소리였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그는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예배당 바깥의 공기는
사람들의 기도로 눌려 있었던 감정을 깨뜨리듯
차고, 거칠었다.
교회 마당엔,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그저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작은 미끄럼틀,
플라스틱 장난감 차,
흙먼지가 살짝 묻은 아이들 사이로
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아빠의 맨발은
기억이 아니라 감각을 따라 움직였다.
울음소리를 더듬듯 골목을 달렸고,
그 길의 끝에서—
시내버스 한 대를 발견했다.
버스 앞문은 열려 있었고,
그 문턱에 매달려 있는 작은 몸.
허리를 비틀고, 어깨를 빼내며
누군가의 품에서 도망치려 울면서 발버둥 치고 있던 아이.
그게 나였다.
기사는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 애가 맞아요?”
“당연하죠~ 얘가 오늘따라 이렇게 땡깡을 부리네요~
빨리 출발해 주세요.”
하지만 버스 기사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크고 무서운 소리였다.
아빠는 그 여자의 손을 떼어냈다.
아니, 나를 끌어당기며 그 여자를 패대기친 게 맞다.
몇 달 전부터 교회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자주 놀아주던 여자.
그녀는 옅게 웃고 있었다.
마치,
그저 좋은 일을 하다 제지당한 사람처럼.
“제가 아들만 키우는데
얘가 너무 예뻐서요.
제가 데려가면 진짜 딸처럼 잘 키울 수 있어요.”
“제가 데리고 가게 해 주세요.”
말투는 차분했고,
표정은 어딘가 안온했다.
지금 생각해 볼 때,
악의가 없었다면 그게 더 무섭다.
아빠는 말없이 나를 끌어당겼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품 속 깊이 끌어안았다.
나는 그 품 안에서
고삐 풀린 울음을 터뜨렸다.
목이 터져라 울었다.
아빠의 팔은 단단했고,
무너지지 않을 유일한 울타리처럼 느껴졌다.
⸻
그날 이후,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가 나를 예뻐한다는 말이 두려워졌고,
따뜻한 말투를 가진 타인을
쉽게 믿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아빠는,
내가 시야에서 조금이라도 사라지면
거의 반사적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항상 조용했지만,
그 안엔 무너질 듯한 불안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부름에 되도록 빨리,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아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눈빛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제야 나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엄마는 내 목과 손목에
목걸이와 팔찌를 채워주었다.
이름과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각인된,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불안을 증명하는 증표였다.
그건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때론 간지럽고 보기 싫었지만—
그걸 빼는 건 곧
엄마를 영영 못 보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조심해야 우리 가족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어린 나는 어쩐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가 매일 버릇처럼 몇 번이고 하는 잔소리보다는
조금 더 가벼웠다.
“절대로, 아무도 따라가선 안 돼.”
그 사건은 그저 지나간 하루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지켜보기 시작한 첫 번째 하루였다.
⸻
5년 후,
그보다 더 오래 남게 될 기억이 찾아왔다.
그건
보영이라는 아이와의 하루였다.
금호동의 운동장.
흙먼지가 모래바람처럼 흩날리고,
아이들의 웃음이 튀던 오후.
한 남자아이가 내 옆에 있었다.
보영이.
이름이 여성스럽고,
모습도 살짝 그랬다.
긴 속눈썹, 가느다란 손가락,
말할 땐 손으로 입을 가리곤 했고,
달릴 때도 팔을 작게 접어 안고 뛰었다.
우리는 같은 반, 같은 무리였고,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있을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졌다.
그날도 운동장에 한 아저씨가 와 있었다.
며칠 전부터 우리와 놀아주던,
아이들이 ‘착한 어른’이라 여긴 그 사람.
“떡볶이 먹으러 갈래?”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무리 지어 외쳤다.
“가요! 진짜요?”
나도 끌려갔다.
끌려간 게 아니라,
끌리지 않으면 혼자 남게 될까 봐.
분식집.
허름한 조명 아래
뜨겁게 김이 오르는 떡볶이.
그는 우리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었다.
“우리 집엔 더 맛있는 것도 있어.
아이스크림도 있고, 게임기도 있고…”
아이들은 환호했고,
나는 수저를 놓았다.
엄마한테 몇백 번이고 당부받은 말.
“절대로 가족 이외의 누군가를 따라가서는 안 돼.”
이미 약속을 어겼다.
두 번은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안 갈래.”
단호하게 말하자
그는 웃지 않았다. 얼굴이 단단하게 굳었고,
젓가락을 탁 내려놓더니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다시는 말도 섞지 않겠다는 듯한 뒷모습이었다.
며칠 뒤, 운동장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다른 아이들 틈에 섞여서 웃고 있었다.
나는 보영이와 함께 외쳤다.
“그 아저씨 위험해! 따라가지 마!”
그 말이 닿았는지
그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보영이 손을 붙잡고 달렸다.
숨이 찼고,
등 뒤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때—
보영이가 멈춰 섰다.
작은 몸으로,
그 아저씨를 향해 섰다.
“먼저 가.”
나는 망설였다.
눈이 마주쳤고,
그 아이의 눈 안엔 작은 떨림이 있었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시장 쪽으로 다시 달렸다.
그리고 시장 사람들 틈으로 숨어들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돌아간 그 자리엔
그 아저씨도, 보영이도 없었다.
참았던 눈물이 펑펑 흘렀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보영이가 잡혀갔을까 봐,
어디론가 끌려갔을까 봐,
머릿속에 수없이 많은 불안이 휘몰아쳤다.
나는 울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설명할 겨를도 없이
보영이 집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 소리가 백 년처럼 느껴졌다.
“제발… 제발 받아…”
숨을 가다듬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받아줘서 다행이었지만,
보영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떨림을 누르려는 듯,
어른 흉내를 내듯 또박또박 말했다.
“그 아저씨가…
다시 또 방해하면 죽여버리겠대.”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보영이는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덧붙였다.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괜찮다는 말은 끝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투엔,
겁에 질려 있었지만 끝까지 씩씩해지고 싶었던,
작은 어른 하나가 숨어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려 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그건 손을 내미는 친절이 아니라,
말없이 등으로 막아서는 용기였다.
나는 알게 됐다.
작고 조용한 용기 하나가,
어떤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떠올렸다.
그날, 그 여자의 웃음도 손길도
처음엔 친절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던 말투와 미소까지도.
그리고 그날, 세상은 조용히 속삭였다.
‘친절은 공짜가 아니야.’
누군가의 손길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늘 따뜻한 것만은 아니란 걸.
그때 나는 어렴풋이 배웠다.
⸻
며칠 뒤,
우리는 이사를 했다.
엄마는 “재개발 때문”이라 말했지만
나는 안도했다.
이곳을 떠나면
그 어둠도 따라오지 않기를 바랐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나는 라면을 먹다가 문득 보영이가 보고 싶었다.
말로 다하지 못한 고마움이, 마음을 자꾸 찔렀다.
그래서 보영이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현관 벨도, 이름표도—모두 사라져 있었다.
엄마와 나는 한참을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초인종을 누를 수도, 그냥 돌아설 수도 없었다.
손에 들려 있던 학용품 선물세트도 갈 곳을 잃어버렸다.
그날 처음 알았다.
세상엔, 보고 싶어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 생각은 문득문득,
가장 사소한 기억에서 되살아나곤 했다.
이사 가기 전날,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왔었다.
엄마는 라면을 끓여주셨고,
보영이는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들었다.
“나, 라면 처음 먹어봐.”
그 말에
다들 멈칫했지만
보영이는 한 젓가락을 후루룩 삼키며 말했다.
“이거 진짜 맛있다.”
정말,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이—
보영이의 마지막 모습으로 남았다.
나에게 처음으로 남자다웠던 사람.
그리고
내가 평생 잊지 못할,
나의 첫 번째 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