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들

그리고, 선택의 시작

by 세하

중학교 입학식 전에, 아빠, 엄마, 여섯 살 난 동생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었다.

나보다 열한 살 많은 오빠와

열세 살 많은 언니도 있었지만,

오빠는 대학교 기숙사에 있었고

언니는 연년생 둘째를 막 출산한 참이었다.


그 사고 이후,

언니와 오빠를 대신해

나는 이모네 집에 맡겨졌고

그곳에서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


이모네 집은 다정한 곳이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대신해 줄 이모가 있었고,

밥상을 차려주는 언니와 오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 안에도

낯선 공기는 분명히 섞여 있었다.


혼자 외벌이로 자식 넷을 키우던 이모는

아침마다 국을 한 솥 끓여두었다.

국그릇에 가득 담긴 국들은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엄마한테는 안 먹겠다고 떼를 쓰던 말들이

이곳에서는 금기어처럼 느껴졌다.


다른 식구들이 먼저 일어나는 날이면

나는 남은 음식을 검은 봉지에 몰래 담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그날도 그랬다.

손에는 검은 봉지 하나.

마땅한 버릴 곳을 찾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

학교로 가는 길엔

토성 밑을 지나는 펜스와

공장이 맞닿은 작은 샛길이 있었다.


지름길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엔 좁았지만,

혼자일 땐 오히려 편했다.


쓰레기를 처리한 내 손에는

만화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순정 만화책 속에 빠진 채,

발끝으로 걷는 듯한 기분과

내 안에서만 소리가 울리는 듯한 감각을 만끽했다.


그때 그 좁은 골목 안에서,

검은 봉지를 들고 다가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펜스 쪽에 바짝 붙였다.

그 좁은 통로를 마주 보고 지나가기엔 어쩐지 불편했기 때문이다.


느린 걸음으로 가까워지면서 검은 봉지를 들고 있던 그의 손 반대편 손이

천천히 봉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그 손을 내 얼굴에 문질렀다.


너무 갑작스 운 상황.

‘놀랐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입을 벌릴 시간도,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었다.


그저—

얼굴에 이물감만이 번져갔다.

미끈거리면서 미적지근한, 말도 안 되게 낯선 감촉.


나는 본능적으로,

들고 있던 만화책을 벅벅 찢어

얼굴을 닦아 내려고 애썼다.

그 흔적을 지우고 싶었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냄새도 없었고, 색마저 흐릿한 그 무언가가

혹시나 내 얼굴을 녹아들게 만들어버리는 화학약품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학교로 가던 방향을 틀어

그대로 이모네 집으로 달려갔다.


──


아무도 없는 집.

도착하자마자 미친 듯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내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다행이다…’


안심이 되는가 싶다가 이내 다른 고민이 피어올랐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미 1교시는 끝나버린 시간.

어릴 때부터 엄마는

아파도 학교에 꼭 데려다준 뒤 조퇴를 시켰었다.

결석이란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집은 고요했고

나는 그 고요 속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점심이 지나고

언니와 오빠가 돌아왔다.

그들은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나는 울지 않았고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다.


“누가…

이상한 걸 내 얼굴에 문질렀어.

미끌거렸었는데, 집에 오는 사이에 말라버리더라고…

그게 뭐였을까? 나한테 왜 그랬을까?”


오빠는 미친놈 이라며 욕하면서 소리를 질러댔고

언니는 내 어깨를 감쌌다.

그들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무단결석을 했고

그 결정은 처음으로 내가 혼자 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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