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계절,
“병원에 데려다주세요.”
나는 소리쳤다.
엄마도, 아빠도 보고 싶었다.
동생이 생각보다 무사한 모습을 보며
기적 같은 ‘어쩌면’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그 마음은 ‘불안의 확신’으로 변해갔다.
이모부의 차가 도로를 달렸다.
창밖 풍경은 빠르게 스쳐 갔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듯한 고요.
그리고 —
병원 근처,
사고 현장을 스쳐 지나갔다.
길 구석으로 흐트러져있는 콘크리트 기둥 자재.
그 사이로 번진 붉은 핏자국.
발로 짓밟힌 우유갑처럼 찌그러진 차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나는 엄마를 먼저 만났다.
유리 파편이 얼굴과 몸 곳곳에 박혀 있었고,
붕대로 감싼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입술을 꾹 깨물며 흐느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진정하려 애썼던 마음은,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나는 소리 내어 울었고,
엄마는 움직이지 않는 팔 대신,
젖은 눈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 눈빛이,
살아서 마주한 두 사람의 온기 같았다.
“괜찮아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눈가에는 꿰맨 자국이 있었다.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실명은 면했다고 했다.
하지만 유리 파편의 흔적은
쌍꺼풀 라인을 따라 선명한 상처로 남아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너무 미워졌다.
다치지 않아야 했는데.
하나도, 어디 하나도 다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도,
‘살았구나.
엄마가 살아있구나.’
그 사실 하나로,
나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아빠는……?”
내가 묻자,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의식이 없어서……
의식이 먼저 돌아와야 해……”
말끝이 흐려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서늘한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처음 봤다.
아빠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는 ‘아빠’가 아니었다.
가슴은 살색을 잃고
검푸르게 멍들어 있었으며,
깊게 파인 안전벨트 자국은
마치 낙인처럼 선명했다.
굳게 닫힌 입과 눈을 감은 얼굴.
그 얼굴 어디에서도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정신은 이미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죽은 채 살아 있는 모습.
그 낯설고 무서운 모습 앞에서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더 가까이 다가가,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차가운 손등 위에
내 작은 손을 포갰다.
“아빠……나야.
내가 왔어..
내 목소리 들리지?
대답해 봐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아빠가, 단 한 번만이라도
내 부름에 응답해 주기를.
하지만 아빠는
깊은 어둠 속에 잠긴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이틀 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중환자실로 들어갈 때마다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수건을 적시고, 무릎을 꿇었다.
찬물에 젖은 손등,
떨리는 입술.
그 안에서 나는 조용히 무너졌다.
“제발……
살게 해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할게요.
아빠를…… 돌려만 주세요.”
기도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젖은 수건을 짜는 손끝으로만,
흐느낌이 번져나갔다.
나는 이틀 내내
젖은 수건으로 아빠의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
기적처럼
아빠가 눈을 떴다.
⸻
아빠는 1인실로 옮겨졌고,
머리에 나사가 박혔다.
양쪽으로 천천히,
고리를 걸어 쇳덩이를 매달았다.
그건 견인치료라고 했다.
짧으면 며칠, 길게는 몇 주간 이어지는 고문이었다.
그때였다.
조용했던 아빠가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가누지 못한 채
침대 위에서 미친 듯 발작했다.
어눌한 비명은 크게 울리지 않았지만,
몸짓은 말보다 더 처절했다.
간호사들이 달려와
아빠의 몸을 침대에 꽁꽁 묶었다.
의사는 말했다.
“목뼈가 부러진 상태라
의식이 돌아오면서
모든 감각이 함께 살아나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고통이 몰려올 수 있어요.”
살아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니었다.
아빠에게는 고통이었고,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장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베개는 처음엔 하얬다.
그러나 곧,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빠의 머리 위로 매달린 쇳덩이,
붉게 젖어가는 베개,
철제 침대 아래로 흘러내리는 핏줄기.
모든 것이 피였다.
모든 것이 고통이었다.
나는 침대 발치에 웅크린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아빠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끊임없이 퍼덕이는 팔다리.
침대에 묶인 채 버둥거리는 몸짓.
의식을 되찾은 몸이 보내는
처절한 반사.
목뼈가 부러진 아빠는
움직일 때마다 몸 전체가 찢겨나가는 고통을 견뎠다.
눈을 감은 채, 그 모든 고통을 살아서 견디고 있었다.
“으……, 으으…….”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낮고 깨어진 신음.
단어도, 문장도 아닌,
살아 있는 몸이 짜낸 고통의 소리.
나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아빠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차가운 쇠내음과 피비린내가 뒤섞인 병실 구석에서,
나는 터질 듯한 심장으로
끝도 없는 밤을 버텼다.
기도를 했다.
입술이 아닌, 심장으로.
“아빠……
부디, 견뎌줘.. 아빠라면 할 수 있어..
제발, 살아줘.”
하지만 내 기도는
붉게 젖은 베개와
천천히 식어가는 공기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
견인치료가 시작되던 첫날밤.
나는 병실에서
눈을 감지 못했다.
한숨도 쉬지 못한 채,
침대 아래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와 붉은 기억만을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
나는 고통과 마주하는 방법을
처절하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