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믿나요
견인치료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머리에 박힌 나사, 그 나사에 매달린 쇳덩이.
아빠는 한 마리 새처럼 침대에 묶인 채 고요히 고통을 견뎠다.
붉게 물들던 베개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시 하얘질 무렵,
의사는 말했다.
“이제 수술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때부터,
내 간호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엄마와 동생도
아빠 병원의 근처 병원으로 함께 옮겨졌다.
엄마는 팔 수술을 받았고,
동생은 다리 수술이 필요했다.
동생은 사고가 나던 날, 아팠다.
하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이 아픈 것조차 잊을 만큼 새파랗게 질려 있었을 뿐이었다.
유리 파편이 엄마에게로만 향했던 것은,
엄마가 사고 순간 무의식적으로 동생을 감싸 안았기 때문이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모성애란 그런 것인가’ 싶었다.
다행히 엄마와 동생은 같은 병실을 쓸 수 있었다.
6인 병실은 환자와 보호자가 모두 가족 같았다.
어느 날, 씩씩하게 밥을 먹는 동생을 보며 옆 환자가 말했다.
“아가, 너 참 씩씩하구나~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동생은 한참 멀뚱히 대답하지 못했다.
“세영아, 너 소방관이 꿈이잖아~ ‘소방관 되고 싶어요’ 하면 돼~”
그러자 어린 동생은 조용히 말했다.
“나 이제 소방관 안 하고 싶어.
무서워서…
나는 못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한 아이의 꿈이 사라지는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어쩌면 나보다 내 동생에게 더 가혹한 날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
학교에 가기 위해
나는 이모 집에서 지냈다.
토요일이 되면,
4교시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넘는 거리의 엄마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와 동생을 잠깐 보고,
그 길로 20분 정도를 걸어 아빠에게 갔다.
엄마 병원에서 아빠 병원으로 가는 길은,
북적이는 도시 한가운데서도
나 혼자 다른 세상에 떨어진 것처럼 쓸쓸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지나쳤고,
나는 그 틈을 조용히 발끝만 바라보며 걸었다.
사실,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은 것도 있었다.
손에는 엄마가 쥐여준 쪽지와 버스비가 있었지만,
그걸 쓰기가 아까워 차라리 걸어가는 편을 택했다.
지나가며 풍겨오는 고소한 빵 냄새나
달콤한 붕어빵 냄새에 마음이 설렜지만,
가게 앞에 멈춰 서는 것조차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그냥 지나쳤다.
누군가 말을 걸까 봐,
길을 잘못 들까 봐,
나는 발끝만 바라보며 조심조심 걸었다.
그렇게,
작고 수줍은 아이 하나가
큰 세상 속을 소리 없이 건너고 있었다.
그렇게 무거운 걸음을 옮겨
아빠 옆에서 하루를 자고, 다시 돌아오는 일상이 매주 반복되었다.
아빠는 그 병원에서
가까스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병원 복도는 길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었다.
수술실 앞에 앉아 있을 때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모았다.
기도라기보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
아빠는
병원 생활이 길어질수록
점점 나를 더 필요로 했다.
나는 수건을 들고
아빠의 몸을 닦았다.
아빠는 다른 이의 손길은 거부했지만,
내 손길에는 유독 얌전했다.
그래서 목욕도,
면도도,
전부 내 몫이었다.
서툴렀지만
나는 면도기를 들었다.
칼날이 아빠 턱을 스칠 때마다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빠 역시, 깊게 파인 얼굴선에 면도기가 지나갈 때면 혀를 잇몸으로 집어넣거나
바람을 모아 살갗을 부풀려 올렸다.
나에겐 그때,
그 작은 아빠의 배려들이
너무도 큰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건 돌봄이 아니라,
내가 아빠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
처음으로 욕실에서 목욕하는 날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을 거부했던 아빠.
병실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아빠의 휠체어를 욕실로 옮겼다.
오빠역시도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욕실 문을 닫고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할 수 있어.’
패기와는 다르게 휠체어에서 아빠를 일으켜 내리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아빠는 몸을 맡기면서도,
나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들거리는 다리에 남아 있는 힘을 끌어모아
조금이라도 버티려 했다.
나는 온몸을 세워
아빠의 무게를 지탱했다.
발끝까지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아빠를 쓰러뜨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서툰 손길.
불안하게 흔들리는 두 몸.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가까스로 목욕 의자에 앉히고 옷을 하나씩 벗겼다.
아빠의 헐벗은 몸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
우둘투둘하게 일그러진 흉터 자국,
곳곳이 움푹 꺼지고 울퉁불퉁하게 솟은 자국들.
살결은 매끄럽지 않았다.
어딘가는 얇게 꿰맨 듯한 자국이,
어딘가는 구겨진 천처럼 뒤틀려 있었다.
그제야 실감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던 사람이라는 걸.
⸻
어릴 때부터 몇 번 들었던 이야기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창문도 없는 컨테이너 박스.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빼곡히 잠들던 그곳.
어느 날 밤,
밖에서 터진 가스 폭발.
삽시간에 불길이 들이닥쳤고,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건 오직 아빠뿐이었다.
아빠는 말했다.
모포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불길을 뚫고 문을 향해 달려 나왔다고.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불바다 속에서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본능 하나로.
온몸이 불에 탔지만,
아빠는 살아남았다.
엉덩이와 허벅지에서 살을 떼어내어,
타버린 얼굴에 덧대는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던 아빠.
나는 몰랐다.
그 흔적이 이렇게까지 선명할 줄은.
이토록 잔인할 줄은.
평소에는
아빠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봤다.
흉터가 있다는 것도,
화상이 있었다는 것도,
거의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옷을 벗은 아빠의 몸은 달랐다.
흉터는 숨지 않았다.
숨길 수 없는 삶의 상처들이,
모든 피부 위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
작은 의자에 앉은 아빠는,
내가 다가가자 가만히 고개를 떨구었다.
거품을 내려던 내 손이,
아빠의 몸 위에서 덜덜 떨렸다.
그때였다.
아빠가 느릿하게 손을 뻗어
거품 타월을 낚아챘다.
낡은 동작.
조심스럽고, 다급한.
타월은 그의 소중한 곳을 감싸 안았다.
아빠의 숨이,
욕실 안을 적셨고
나는 얼른 눈을 돌렸다.
너무 작고, 너무 인간적인 그 몸짓이,
내 가슴을 와락 쥐어뜯었다.
의사가 말했던 “다섯 살 지능”이라는 말을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빠가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려고
애써 웃었다.
“아빠, 미안해요. 내가 실수했어.”
서둘러 수건으로 아빠의 다리 위를 덮어주며,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간호가 아니다.
아빠의 삶을,
아빠의 고통을,
그리고 그 모든 상처마저 껴안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
아빠는
내가 면도기를 들면 얌전해졌고,
내가 밥숟가락을 들 땐 입을 벌렸다.
나는 그때 알았다.
‘간호’라는 단어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걸.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릴 적
인사 예절과 약속의 중요성을 무섭게 가르치던 아빠가
지금은 나의 손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슬프고도 따뜻했다.
아빠는 달라졌고,
나도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 하나만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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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빠는 조수석에 가족을 잘 태우지 않았다.
어릴 적, 아빠가 나를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하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조수석에서 앞으로 튕겨 나갔고 이마를 부딪쳤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단 한 번도 가족을 조수석에 앉히지 않았다.
동생과 나, 그리고 엄마는 늘 셋이 나란히 뒷좌석에 옹기종기 앉았다.
사고가 나던 날도 그랬다.
조수석에는 할머니가 주신 쌀 한 가마니가 대신 앉아 있었다.
날카로운 철근 자재들이
그 쌀가마니 쪽으로 쏟아져 내렸다고 했다.
누군가 그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상상조차 힘든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아빠의 염려를,
하늘이 도운 건 아니었을까.
뒷자리에서 기도하던 엄마가
사고 순간 실명하지 않은 것도,
무의식처럼 동생을 감싸 안은 것도,
결국,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