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신가요
세 번째 목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빠는 자꾸만 무언가를 참지 못하는 눈치였다.
“움직이시거나 목 보호대를 절대 빼시면 안 돼요.
지지대는 생명줄이에요.”
간호사는 수시로 강조했다.
⸻
그날 새벽.
나는 병실에서 잠을 깼다.
의식보다 먼저 다가온 건—
기이한 정적이었다.
침대가… 비어 있었다.
지지대는 가지런히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빠…?”
나는 복도로 뛰쳐나갔다.
간호사에게 알렸고,
순식간에 병원 전체가 분주해졌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갔다.
어쩌면, 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옥상 문은 다행히 잠겨 있었다.
그리고—
비상계단.
한 간호사가 헐레벌떡 달려오며 외쳤다.
“여기 있어요!”
⸻
계단 벽에
몸을 기댄 채
네 발로 기어오르던 아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한 칸, 또 한 칸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아빠는 목에 감겨 있던 보호대를 스스로 풀어버린 채,
두 다리가 아닌 네 발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피가 맺힌 수술 자국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달려가 아빠를 끌어안았다.
“아빠… 왜 이러는 거야…”
아빠는 터질 듯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살고 싶어.”
그 한마디였다.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는
살아 있으려는 본능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
나는 그날,
‘삶’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저 한 칸, 또 한 칸을
기어오르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서진 몸으로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아도.
가진 걸 모두 잃어도.
살고 싶어서,
계속해서 손을 뻗는 것.
그게, 삶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사람의 고집과 약속을
기억했다.
⸻
어릴 적,
카드값 문제로 싸우던 엄마와 아빠.
엄마는 울면서
아빠의 카드를 잘라버렸다.
그리고 그날,
아빠는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안 쓸게.
카드, 그딴 거 없어도 살아.”
그 약속은
몇십 년이 지나도록
지켜졌다.
지금도 아빠는
카드를 쓰지 않는다.
그건 고집이 아니라,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겠다’는
그 사람만의 방식이었다.
⸻
그리고 어느 월급날 밤.
불량배들이 아빠를 둘러쌌다.
갈색 코트 안주머니 속,
두툼한 봉투 하나.
그 안엔 가족의 생계가 들어 있었다.
돌아온 아빠의 코트는
뒷자락에 발자국이 가득했고,
얼굴은 온통 긁히고 멍들어 있었다.
엄마는 “그냥 줬으면 됐잖아.” 하면서도,
뒤돌아서
그 코트를 껴안고 울었다.
그게 우리 아빠였다.
⸻
그리고 지금,
그 아빠가
몸이 부서진 채
계단을 기어오르고 있다.
나는 깨달았다.
아빠는
단 한 번도
포기하거나 피하지 않았다고.
몸이 망가져도,
고통이 밀려와도,
그는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
그날 이후,
아빠는
몰래 침대 가장자리까지 움직였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고,
매일 아주 조금씩
자기 몸을 깨워냈다.
의사는 말했다.
“이 회복 속도,
믿기 어렵네요.
진짜 강한 분입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아빠니까요.'
그렇게, 아빠는 다시 삶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
그날 밤,
아빠는 내게 조심스레 부탁했다.
“어머니 사진 좀, 가져와 줄래?”
나는 곧장 집으로 가서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던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꺼내 아빠에게 건넸다.
아빠는 사진을 받아 들고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숨죽인 울음.
처음 보는 아빠의 눈물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빠도, 아빠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한 남자였다는 것을.
'몸이 굳는 것 같아서…
다시는 못 움직이게 될까 봐.’
그날 새벽,
아빠가 힘겹게 뱉어낸 그 말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보내는 마지막 응원이었는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말자.
무너지지 말자.
다시 살아내자.
그날 밤,
나는 한 남자의 마음을,
그리고 그의 오래된 외로움을
처음으로 보았다.
하지만 삶은, 늘 가장 깊은 곳에서 또 다른 파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