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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May 07. 2024

챕터 7 인정



완벽하게 혼자 존재한다는 것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난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었다. 참 심오하고 어쩌면 별거 없을 그런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과연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이젠 모르겠다.




혼자 다니는 모습에 몇몇 반 아이들은 나에게 혹시 민서랑 지유와 싸웠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얼버무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간혹 차은재를 마주치면 반가우면서도 괜히 혼자 다니는 모습이 창피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학교 안에서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고, 그 마음을 차은재도 아는 것인지 나를 배려해 주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매 순간 담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속에서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을 견디면서 보냈다.




"민서야, 이은아.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잠깐만 오라셔."


반 아이가 선생님이 우리를 찾는다는 말을 하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머뭇 머뭇 거리며 일어나 의자를 정리하면서 혼자 가야 할지 같이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이에 민서가 눈앞에 와 있었고, 나도 빠르게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내가 앞서 걸었고 민서는 그 뒤를 따랐다. 눈은 앞을 보고 있었지만 내 신경은 온통 뒤를 향해 있었다. 발이 바닥에 닫는 것이 너무도 잘 느껴졌고, 손이 앞뒤로 흔들리는 것이 괜히 어색해져서 팔짱을 꼈다.


"어..! 이은이하고 민서 왔어?"

"네."

"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오늘 특강 있는 거 어제 말했었지? 그거 준비 좀 해달라고 불렀어~ 이거랑 이거랑 해서 놓고, 이것도 가져다가 놓고! 아..! 그리고 이거는 자리마다 하나씩 두면 되고..! 다음이 선생님 시간이니까~ 그때 둘이 가서 준비 좀 부탁해도 될까? 혼자 해도 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심심할 테니까 둘이서 했으면 해서. 둘이 제일 친하잖아."

".. 아. 네.ㅎ"

"네.. ㅎ"


선생님께서는 다다음 시간에 특강이 있는데, 그 특강을 위한 준비를 둘이 같이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우리 둘이 제일 친하지 않냐는 말을 덧붙이면서. 우리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고 나서 선생님께서 주시는 자료와 이것저것 물품을 들고 학교 강의실로 향했다.


종이를 붙이고, 책상에 필요한 물품을 놓고, 또 물건을 옮기는 소리만 날뿐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간이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아닐까, 우리가 다시 예전과 같은 사이로 돌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왠지 모를 기대감 같은 것이 차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민서에게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처럼 민서도 그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용기를 내고 싶었다. 난 민서를 쳐다보았고, 우리는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나 마주친 눈이 민망하게도 곧바로 민서는 내 눈을 피했다.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준비를 하는 동안 민서의 시선은 단 한 번도 나를 향하지 않았다.


그렇게 2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힘들지만 그래도 꽤 버틸만하다. 그런데 만약에 또 갑자기 별일 없었던 듯 돌아간다면 어떨까? 나는 기뻐할까?'  




"네 탓 아니다."

"어..?"

"네 잘못 아니라고.. 저번에도 말했잖아. 네 탓 아니야. 그냥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 그리고 왜 그랬는지 이유에 대해서도 대충..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은 채로 또 아무렇지 않은 사이로 돌아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냥.. 내가 놓지 못하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착각하고 있었던 거 일지도 모르지..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이가 사실은 아니었던 거일지도 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것들 때문인 게 가장 크기도 해. 그러니까, 괜히 네가 미안해하지 마."


"너도."


차은재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도 네 탓하지 말라고. 네 탓이 아니야. 자책할 필요도 주눅들 필요도 없어. 뭐.. 물론 내가 너무 쉽게 얘기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별일 아니야~ 어떻게 모든 것에 다 완벽하겠어. 세상엔 복잡한 게 아주 많고 또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과 반복되는 일들도 많잖아. 그러니까 너도, 너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마."

"응.."


"아무튼. 너는 나한테 좋은 친구야. 그래서 나도 너한테 좋은 친구가 될 거야. 그거에는 변함없으니까 많이 힘들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응..!"


차은재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어느샌가 내가 차은재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차은재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매번 나를 울컥거리게 만들었다.


"너 고등학교 어디로 갈지 정했어? 나는 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가려고."

"음.. 난.. 먼 곳으로 가려고."


차은재는 내 대답을 듣고 짧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이유 물어봐도 돼?"

"그냥, 뭔가 새로운 곳에 가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넌 잘 할 거야."

"응 ㅎㅎ 너도. 너도 평소처럼 잘할 거야."




'놓는 게 쉽지 않다. 내가 참 미련하다는 생각도 든다.

고등학교를 멀리 간다고 하니까 차은재가 많이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나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래도 '좋은 친구'라는 차은재의 말이 마음 깊이 남았다.'




언제나 예상치 못 한 일은 생기고, 그 과정 속에서 난 혼란스러워할 뿐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민서와 지유는 내게 말을 걸어왔고, 나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나름 자연스럽게 보였길 바라며.

사실 별거 아니란 듯이 반응했지만 심장은 엄청나게 빨리 뛰고 있었고,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고개를 저었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런데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애들이 내게 말을 걸어주었을 때, 내가 너무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겨울방학이 오기 전까지 다행히도 그 시간 동안에 우리의 사이는 위태롭지 않았다. 그런데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애들과 헤어지는 것이 많이 아쉽지 않았고, 또 어떨 땐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분명 절대 예전과는 같은 사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또 그 확신과는 다르게 내 마음은 매 순간 아슬아슬했다.




'아쉽지는 않다. 그런데 그냥..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이, 그 설렘이, 그 웃음이, 그 공간의 공기가 그리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잊고 싶은 기억도 많다.'




졸업과 동시에 우리의 사이도 자연스럽게 끊겼다. 그러나 어딘가 정리되지 않은 마음에 괴로웠다.


나와 차은재는 방학 동안에 가끔 만나 공터에 갔고, 또 고양이도 보러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차은재는 혼자서도 고양이를 보러 가는 날이 많았는데, 안 보인 지 꽤 됐다고 했다.


"또 안 왔네.."

"그러게.. 무슨 일 있나..? 저번 주에도 안 왔다고 했지?"

"응.. 에이 뭐~ 밥 챙겨주는 분이 자리를 옮겼을 수도 있고, 고양이가 다른 곳을 찾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가.."


걱정스러운 마음을 짊어진 채 오늘도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차은재의 집이 우리 집보다 먼저 보였지만 차은재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고마워, 잘 가!"

"응. 푹 쉬어~"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차은재가 나를 불러 세웠다.


"고양이 분명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차은재의 확신에 찬 눈빛과 말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응..! 그럴 거야. 꼭."


"아 그리고 백이은. 우리 고등학생 돼서도 자주 연락하고 가끔이라도 이렇게 만나자. 꼭."

"그래 ㅎㅎ"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다. 억지로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나를 바꾸지 말자고 되뇌면서도 어느샌가 굳이 나를 바꾸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두 달 동안은 짝꿍과 '지금 어디쯤 수업을 하고 있는지' 나 '숙제가 무엇인지' 와 같은 말만 짧게 주고받는 사이였다. 익숙했다. 아니, 익숙해져야만 하는 사이였다.


또 한 달이 지나고 자리를 바꾸는 날이 왔다. 별 기대 없이 바뀐 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먼저 앉아 있던 짝꿍이 잘 지내보자면서 힘차게 손을 내밀었다.


"오..!! 백이은! 잘 지내보자 ㅎㅎ"

"응. 그래.. ㅎ"


박세연은 아주 활발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본인의 친구를 내게 소개해 주었고, 점심시간이면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팔짱을 끼며 나를 데리고 갔고, 본인의 관심사를 알려주고 나의 관심사를 물었고, 짝꿍이 바뀌는 날엔 너무나도 아쉬워하면서 매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아왔다. 세연이는 내가 집에 가는 길이 외롭진 않을까 걱정을 해주는 아이였다. 버스에서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해서 괜찮다고 말하면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몇십 개 찾아서 보내주는 그런 마음이 예쁜 친구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다. 기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괜히 좋지 않은 생각들을 끄집어냈다.


세연이와 나는 학년이 바뀌면서 다른 반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방학 때도 가끔 만났고, 거의 매일을 연락하며 지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무난했지만 왜인지 매일이 힘들었다. 나는 분명 좋은 친구들이 옆에 있었음에도 하루하루를 긴장한 채 살았다. 행복하고 재밌는데도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서 항상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마음을 갖고서 학교생활을 보냈다. 행여나 나의 말에, 행동에, 또 그 어떤 모습에 돌아설까 불안하기도 했다. 귓속말을 하면 괜히 내 얘기를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고, 친구가 표정이 안 좋아 보이면 혹시라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마음에 하루 종일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재미있고, 많이 웃고,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기도 하면서.

또 그러한 와중에도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문득문득 알아차리면서.

아주 길게만 느껴졌던 고등학교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고, 수능이 끝나고 나서 며칠 후에 세연이를 만났다.




"야 백이은!! 너 대학교 가서도 나랑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야 한다~"

"ㅎㅎ 그럼 당연하지."


세연이는 대학교에 가게 되어서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을 몹시 아쉬워했다.


"근데 이은아,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응? 뭔데?"

"너..! 너 이 씨.. 걱정하지 마..!"

"응..?"

"너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거 모르지? 흠..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수 있어."

"응?ㅋㅋ 무슨 소리야 그게."


세연이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비장한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그냥.. 혹시나 해서 말 안 했었거든..?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얘기를 해줄걸.. 후회가 되기도 해. 음.. 가끔 너를 보면 어딘가 긴장한 것 같아 보였어.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모습이 너무 자주 보이는 거야.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고 싶었는데, 네가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괜히 나서지 말자..! 생각했어.. ㅎ"


세연이는 또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걱정하는 것 같아 보이더라고. 그 모습들이.. 그래서 전부터 계속 말해주고 싶었는데.. 나는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너는 지금까지도 내 제일 친한 친구이고..! 그리고 또 앞으로도 계속 친한 친구일 거고. 그래서 나는 너랑 계속 알고 지내고 싶어. 네가 어? 대학교 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더 친하게 지내면 괜히 막 서운할 거 같고, 질투날 거 같고 그래..! 물론 네가 대학교 가서도 잘 지내면 나도 좋지만..ㅎㅎ 그냥 그럴 거라고.."


세연이는 쏟아내듯이 내게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결국 차오르던 눈물은 말릴새도 없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내 모습에 세연이는 말없이 내 옆으로 와서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난 세연이에게 혼자서만 간직했었던 말들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뒤죽박죽 섞여서 말이 이상했지만 세연이는 천천히 말해도 된다면서 기다려주었다. 난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과 부끄러운 일들, 잘못한 일들과 못난 내 모습들 그리고 힘들었던 일들까지도 다 털어놓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세연이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 힘들었겠다.. 그런데 이은아,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나도 실수도 많이 하고, 잘못할 때도 있고 그래~ 그런데 실수할 수도 있는 거고, 또 잘 알지 못해서 잘못할 때도 있는 거고.. 또 그런 일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이렇게 네가 오랜 시간을 생각하고 괴로워하면서 힘들어하고 있는 이 시간들이 분명 헛된 시간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난. 그러니까 그렇게 위축될 필요 없어. 나도 똑같아. 겁도 많고 걱정도 많고 그래.. 안 그래 보이지만 ㅎㅎ 그런데 있잖아 나는 너를 만나서 오히려 용기를 낼 수 있었어. 네가 조심스럽게 내게 해줬던 말들이 위로가 되었고, 나를 배려해 줬던 모습들이 너무 고맙고.. 그랬어. 그래서 나도 너한테 더 좋은 친구가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이은아, 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너를 아끼는 사람들도 있어. 앞으로는 더 많이 생길 거야. 우리.. 우리를 아껴주고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쓰면서 그렇게 멋진 어른이 되어보자..!"


세연이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다.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세연이는 '나도!'라면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내겐 너무나 어렵고 또 무서운 일이었다. 잘하려고 하던 일이 어긋나버릴 때도 있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수가 되어서 나를 자책하게 되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난 세연이에게 털어놓았던 나의 모습들을 언제 또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 그런 마음이 생길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모습조차 나라면, 일단 그런 나를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씩 다치고 낫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샌가 단단해져있는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전 06화 챕터 6 차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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