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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책, 밤을 보내는 책

by 이지현

대학생활 3주 차,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서점으로 향했다. 책을 읽는 것이 공부하는 것만큼 품이 들지는 않지만 그만큼 얻을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서점에 간다. 서점에 가면 사려고 했던 책이 아닌 다른 책도 눈에 들어온다. 그 책을 사 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기분에 두 권 다 구매한다. 디자인이 예뻐서, 제목이 특이해서 고르는데 항상 이 책들은 꼭 마음에 닿는 글을 가지고 있어서 아침햇살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기 좋다. 나머지 사려고 했던 한 권은 그 사람의 말과 시간을 배우고 싶어서 집어든다. 이 책들은 달빛 아래에서 잠 못 드는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죄책감을 덜어주기도 한다.


아침을 여는 책은 가볍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고, 분주히 움직이는 세상을 바라보며 잠을 깬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읽을 책을 고르고,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울 만큼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많은 문장들을 읽지는 않는다. 읽으며 오늘 하루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지 생각한다. 어떤 날은 다정한 문장으로, 또 어떤 날은 무심한 문장으로.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책을 처음으로 골랐다. 철학에 입문하기에 이 책은 거부감이 없고 짧지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잠을 깨기에 충분했고, 다이어리에 쓸 한 문장은 꼭 있었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이 온종일 마음에 맴돌며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끈다. 철학이 담긴 한 문장은 하루를 바꾸기도, 한 달, 일 년을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오스카 와일드-


반면, 밤을 보내는 책은 묵직하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조용한 방 안에서 책을 펼친다. 밤이 되면 문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낮에는 가볍게 흘려보낼 문장도 밤이 되면 가슴에 오래 머문다. 충분히 자책하고 반성하며 성찰한 후에야 눈이 감기는 날이 있다.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내일을 축내서 오늘의 아쉬움을 희석하는 사람들."
"밤에 하는 생각들은 대체로 농도가 짙다."


아쉬움 때문에 조금은 깊은 감정에 빠지는 날도 있지만 오히려 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밤도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둔 고민이 다시 떠오르면, 부족한 경험을 들려주는, 노련함을 빌려주는 책을 펼치기도 한다.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돕고, 나는 그 도움에 힘입어 내일을 위해 편안한 잠에 든다. 나보다 더 복잡한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면, 내 걱정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때가 많다. 걱정하며 골 아파 하기엔 나의 삶은 쌓인 하루가 적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아침을 여는 책은 하루를 살아갈 마음의 방향을 잡아주고, 밤을 보내는 책은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기도, 실체 없는 걱정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적정선에서 유지하기 위함이다. 해소하지 못한 것들이 모여 나를 끌어내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마음의 피로를 매일매일 조금씩 덜어낸다면, 우리는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삶을 대할 수 있다.


거리낌 없는 마음이 필요하다.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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