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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디딘 첫 걸음

프롤로그

by 이지현 Mar 09. 2025

대학에 합격한 후, 기숙사에서 생활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기숙사 신청에서 떨어졌고, 갑작스럽게 자취를 결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는 자취’였지만, 한편으로는 고등학생 때부터 막연히 품어왔던 독립에 대한 로망이 떠올랐다.

맛있는 밥을 예쁜 그릇에 담아 먹고 운동하는 모습, 새벽까지 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삶. 상상 속 독립은 마치 영화 같았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삶이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내 하루를 내가 만들고,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과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느리고, 둔한 나는 시간을 조금은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를 원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자취를 반대하지 않았지만, 마냥 찬성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혼자 살 수 있겠어?’, ‘밥은 어떻게 챙겨 먹을 건데?’ 같은 질문을 던지며 걱정하셨다.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혼자 해보고 안 되면 인터넷 찾아보면 되지.’ 아무 생각 없는 낙천주의였다.

기숙사에서 떨어졌다는 걸 알게 된 후, 다음 날 바로 방을 알아봐야 했다. 부모님과 부동산을 다니며 열 개가 넘는 원룸을 둘러봤고, 결국 학교 정문을 마주 보고 있는 작은 방을 계약했다. 처음 알아들을 수 없는 어른의 말이 쓰여있는 계약서를 받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진짜 혼자 사는구나.’, ‘저 계약서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게 되면 진짜 어른이 되는 건가?’ 설렘 반, 걱정 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들떠있었다.

이사를 마치고 혼자 남겨진 첫날, 낯설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문을 닫자, 낯선 정적이 방을 채웠다. 냉장고가 웅웅 거리는 소리만이 유일한 배경음. 집 안에 나 혼자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정말 편하게 잤다. 모든 방해 요소에서 벗어난 진짜 나의 첫 모습이었다.


커튼을 설치하지 않아 뜨는 해를 가리지 못해 새벽 6시 반쯤 눈이 떠졌다. 잠에서 깨려고 벽에 기대어 멍하니 정돈되지 않은 방을 둘러봤다.

‘나 일어났는데 뭘 해야 하지?’

자취생활을 기대했던 내가 뱉은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배가 고팠고, 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부터 모든 걸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계좌에 돈이 얼마 있더라?’

그 순간, 혼자 사는 게 단순한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자취는 단순히 부모님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책임지는 과정이었다. 끼니를 챙기고, 생활비를 관리하고,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단순한 자유가 아니라, 책임이 뒤따르는 삶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꿈꿨던 독립은 조금 더 자유롭고 멋진 모습이었다. 현실에서 독립은 준비되지 않은 채 덜컥 맞이한 변화였고, 막상 기대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매 순간 마주하는 선택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꿀지 궁금해졌다. 분명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일단 그냥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생활기록부 속 ‘나’가 아닌 진짜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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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행착오가 나를 더 능숙하고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 믿으니까.


그렇게, 나는 독립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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