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는 대학생활, 처음 하는 자취에 적응하느라 바빴지만, 시간은 많았고 여느 대학생처럼 살았다. 3월 셋째 주 금요일,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가 늦게 집에 들어왔고,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기분 나쁘게 내리쬐는 햇빛에 문득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서점으로 향했고, 책을 집어 들었다. 고요한 시간을 함께한 책들이 선반을 가득 채울 즈음, 나도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예전처럼 감정에 휩싸인 채 글을 쓰게 될까 봐 겁이 났지만, 차분하고 정리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다시 펜을 들었고, 깨달았다. 여전히 고민은 많았지만, 그것을 이전처럼 어둡게만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면접을 대비할 때, 생활기록부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나를 꾸며냈다. 당시에는 그 종이에 적힌 사람이 나라고 믿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그 믿음은 깨졌고 나를 잃어버린 듯한 허무감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고, 앞으로 답해나가야 할 질문이기도 했다.
펜을 드니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눈으로 보였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흘려보냈을 내면의 목소리가 또렷해졌고,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나는 지금 만족하고 있을까?’ 혼자일 때 가장 나 다웠고, 글을 쓰며 나 다운 모습을 알아가고 있었다.
나와의 대화가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것들을 꺼내고 답하느라 머리는 하루 종일 돌아갔다. 결국 쉴 수 있을 때마다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뒤늦게 과부하가 걸린 것을 알아채곤 일상과 고민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휘둘리는 대신, 정해진 시간 안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이후에 일상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다. 애매한 질문에 적당한 답을 내는 법을 배웠고, 그 답이 변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였다.
내면의 대화를 할수록 물음표는 점점 늘어났지만, 그 시간을 적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할수록 내가 선명해졌고, 잘 살아가기 위한 마음을 지켜낼 수 있었다.
고민은 곧 불안이었다. 답을 찾지 못할까 봐, 막연한 상태가 길어질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문장들이 하나둘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아직은 몇 없는 문장들을 계속해서 써 내려간다면,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