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언젠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정했을 때, 어떤 누구의 개입도 원하지 않기에. 스스로의 선택에 따르는 모든 것들을 감당하기 위해 첫 번째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돈'이었다.
이 생각을 처음 했던 건, 원했던 대학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단념했을 때이다. 학비, 생활비, 월세 등등. 태어나서 처음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그땐, 이해할 수 없어서 그냥 받아들였다. 지금은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 선택에 일정 부분 간섭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또, '난 이걸 원해!' 라고 소리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래서 일단 눈앞에 닥친 것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고, 생활비를 받아 관리하다 보니 단위부터 다른 숫자가 버거웠다. 월말이면 계좌에 몇 천 원 남아있을 때가 많았다. 많아봤자 주머니에 5만 원 있었던 고등학생이 엊그제인데 돈을 다루는 데 미숙한 건 당연했다.
첫걸음으로 '배분'과 '조절'을 배워야 했다. 각 지출 분야에 생활비를 얼마나 배분할 것인지 알아야 했고, 그에 따라 조절하는 습관을 길러야 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습관을 만들며 들었던 적금이 만기되어 조금의 여유가 생겼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지출이 생겨도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편하게 했다.
사람들은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것을 드러내는 걸 부적절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중 첫 번째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경제적인 문제라고 느낀다. 일단 아무 도움 없이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어야 다른 원하는 것들을 할 준비가 된 것이고, 도전해 볼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려면, 그 선택의 결과까지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 돈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조건이고, 때로는 꿈을 꾸는 데 필요한 입장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학생이라 먼 이야기라고 느꼈지만 훨씬 나중에 깨달았다면 훨씬 더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무작정 '다 잘될 거야' 했던 이전의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려고 하니 내가 한참 부족함을 느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 복잡한 조건들 위에 세워진 일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