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절정을 이뤘던 벚꽃은 거의 다 져 벼렸다.겨우 아슬아슬 매달려 있던 마지막 꽃잎은 이 비에 어디론가 떠내려 갈 것이다. 이 순간 화려하게 만개한 꽃 보다, 꽃 지고 난 후 푸릇푸릇 돋아나는 초록의 설렘이 더 기다려질 때도 있다.
매년 벚꽃이 피고 지는 이 맘 때면 생각나는 일본 오사카와 한 사람이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더......
그가 준비해 준 호텔의 큰 창으로 훤히 내려다 보이던 벚꽃으로둘러싸인 오사카성의 야경도 잊을 수 없다. 일본에 처음 간 나를 위해 오사카 곳곳의 맛집을 알려주던 그.
오사카에 왔으면 오사카다운 음식을 먹어봐야지 않겠냐며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오사카에는 워낙 유명한 음식들이 즐비하고 메뉴도 다양하다. 누구나 다 아는 타코야끼, 라멘, 우동, 야키누꾸, 오코노미야키, 초밥 등. 그래서 나는 일본에 갈 때마다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는 없다.
처음 일본에 갔던 날 그는 도톤부리, 난바, 신사이바시, 오사카성 등 유명한 곳을 구경시켜 줬다. 그때는 내가 술을 마실 때라. 오랫동안 함께 걷고 난 뒤 마신 생맥주 한 잔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한일 간에는 여러 논쟁거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와는 아랑곳없이 양국 관광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긴다. 오사카에도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그중에서 단연 한국인 관광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국적 불문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도톤보리 클리코상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오사카에 갈 때마다 야끼도리(닭꼬치구이)와 맥주를 즐겨마셨다. 그와 나의 술 마시는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절대 권하지 않는다. 그냥 각자 취향대로 아사히 또는 썬토리 생맥주를 원하는 만큼 시켜 마신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는 동안 매번, 한-중-일 간문화 차이점을 시작으로, 역사, 정치 순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중간중간에 자기주장을 강하게 담은 논쟁으로 끝장토론을 한 적도 가끔 있다.그렇다고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불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서로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다니다 보면 다양한 일본 사람을 같이 만나는 기쁨이 있다. 나 혼자라면 만나기 조차 힘든 유명인들을 오사카 뒷골목 허름한 선술집에서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많은 일본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그중에는 한-일 역사 이슈에 대해서 솔직하고 진솔한 의견을 갖고 있는 양심적인 사람도 많았다. 물론 가끔은 극우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 우리 분노 게이지를 높여주던 사람들을 만난 적도 없지 않다. 그럴 때마다, 그는 완벽한 논리로 상대를 압도했다. 사실, 나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어떤 분위기인지를 '감'으로 알아채곤 했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일본이나 일본 사람들이 싫지 않다고 다만, 일본의 극우정치와 전체주의가 싫은 것뿐이라고.
며칠 전 TV에서 '퇴근 후 한 끼'라는 프로그램을 재방송으로 봤다. 내용에는 오사카 뒷골목의 숨겨져 있는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을 소개하고 맛보는 내용이었다. 그 방송의 장면 장면이 그와 함께했던 오사카의 추억과 중첩됐다.
얼마 전 오랜만에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기간 중에 오사카를 잠깐 방문할 시간이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오사카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예전에도 가끔 보이긴 했지만, 흥청망청하는 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이 보였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들이 살기에는 녹녹지 않고 앞날의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런 안타까움도 뒤로하고 가는 곳, 발길 멈추는 곳마다 그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제는 그와 만났던 순간순간의 '점'들이, 가는 곳마다 연결되어 '선'이 되어있다. 어느덧 그 선들이 다시 겹겹이 쌓여 이제는 '면'이 됐다. 그를 만났던 건 '순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그와 함께 했던 '면'은 공간이 되었다. 시공을 넘은 '추억'이라는공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