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하다. 런던은 가을이다.
아침뉴스와 교양프로그램의 혼종(뉴스+아침마당)인 BBC 브랙퍼스트 진행자와 기상캐스터가 '여름의 마지막날'이라고 선고하면서 호들갑을 떨던 게 8월 31일이었다. 9월부터 귀신같이 날씨가 달라졌고 심지어 아침 최저 기온이 4도로 내려갔다. 어이없어하며 두꺼운 겨울옷들의 생사를 확인했다.
늘 그렇듯, 런던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하루에 4계절이 다 있다. 새벽에는 춥다가 아침해가 떠오르면 딱 좋다가 한낮에는 껴입은 옷이 조금은 덥게 느껴진다. 반소매 차림의 여기 남자들은 털이 북슬한 팔뚝을 흔들며 조깅을 한다. 뜬금없이 빗방울이 좀 떨어지기라도 하면 춥다가 다시 해가 나오면 좀 낫다. 그러다가 오후 4시 반이 되면 해가 져 버린다.
벌써 밤이 이 만큼이나 길어졌다고? 절망하지 말자. 그래도.아직은.가을이다. 오늘 낮의 캔싱턴 가든스는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왕실에서 관리하는 가든스라 그런가. 여기서 지내는 동물들도 때깔이 다른 것 같다. 다들 건강하고 보기 좋다.
보정하지 않은 원본 사진이다. 6층 높이쯤으로 자란 훤칠한 나무들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벤치가 놓였다. 가든스 풍경은 여유로움 그 자체.
환한 가을 햇살을 받은 나뭇잎들이 어찌나 고운지. 사진으로는 이 느낌이 다 담기지 않는다. 맑은 하늘에 비행운을 남기는 저 비행기는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 공의 동상. 바로 앞에 깨알만하게 보이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알버트공 동상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로열 알버트홀을 내려다본다. 여왕의 사랑이 세월을 거슬러 지극하다.
노을이 지는 오후 4시 런던 하늘. 곱다. 아직은 많이 춥지 않다. 두 달 반째 좋은 계절이 이어지고 있다. 겨울은 글루미하기 이를 데 없지만 가을이 충분히 길고 아름답다는 건 런던 살이의 큰 장점일 것도 같다.
11월 17일에 비가 내리고 나면 겨울 느낌이 물씬 풍기겠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 깊어가는 만추를 즐겨줘야 한다.
우리 가족이 내년 가을 런던 하늘을 즐길 수 있을까? 우린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