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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소소재 열 세번째 이야기
붉은 그리움
by
진솔
Jul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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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세마리에 호위병에 둘러싸여
산책길을 오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날아오른다.
나를 누르던 하루를 벗어 던지고 조금씩
어제보다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산은 숨을 쉬라 말하고
나무들의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라
내게 속삭인다
비를 멈춘 바람이 잠시 나를 감고 즐기는 유희를
선사한다
푸르고 깊고 아늑하고 조용하다
객을 호위하는 커다란 백구가 뒤를 돌아 나를
살핀다
차마 익지 못하고 떨어져 나뒹구는 어린 밤송이도
가시만은 지 성질을 못이기고 여린 발끝을 위협한다
차마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떼를 쓰며 나뒹구는것
같다
아직 때가 아닌 이가 저리 쓰러져 누워있다면이란
무섭고 급살스런 생각이 잠시 스친다
일찍 깨었다고
밖을 나돌순 없다
앞이 보이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 곳에 왔으니 이곳의 진리를 따라 주어야 하는 당연함을 조용히 익혀야 한다
이른 아침 어제 들고 들어온 감자 두어알을 까고
도톰한 손두부를 둠벙둠벙 썰어 큼지막히 대파를 올리고 그 끝에 쫑쫑 썬 청양고추를 올려내어
걸죽한 된장국을 손수 끓여 내었다
몇십년 만에 조식 공양에 새로울법도 했을 뱃속이
네가 편하고 좋으면 저도 좋다며 요동치지 않는다
살짝익은 배추김치를 썩썩 썰어 양철 상 위에
차려내는 소박이 웃음으로 와서 내게 앵긴다
얼마 만에 먹는 아침이었을까?
아침공양을 마친 그릇은 정갈히 엎어져 다음 공양을
기다릴테다
잠시 비를 멈춘 하늘의 시간을 빌려 쓸 시간
옷가지를 손으로 빨아 잠시의 눅눅함을 말려본다
서울서 세탁기가 건조기가 식기세척기가
하던일을 손수 척척 한다
그래도 남고 더디 간다
서울서 나 대신 그 많은 일을 해주는 기계가
있어도 시간에 쫒기고도 틈까지도 없었다
이곳에 시간은 좀 다른듯 하다
저 모든걸 해도 시간이 남아 뒹군다
나도 뒹군다
이틀만에 보이는 해가 반갑다
마루 끝에 걸친 붉은 화단에는 봉숭아가 그윽하다
이번에는 내 열손가락 창문에 붉은 봉숭아 꽃을
들여야겠다
이곳의 기억이 크리스마스 때까지 지워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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