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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 캐나다

Thank you와 Sorry로 버티는 외국인 매뉴얼

by K 엔젤

웃지 않으면 위험한 나라

한국 엘리베이터는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 건 나일지도 모른다.
문 앞에 서서 버튼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같이 타고 있는 사람은 그냥 공기다.

간혹 아는 얼굴 만나면 “몇 층이세요?” 하고, 어색한 사이라면 그냥

“우리 둘 다 없는 사람이다” 하고 지나친다. 이 좁은 땅에선 그게 매너 같았다.

근데 캐나다에 오니까, 이게 통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 말한다.

“Hello.”
“날씨 좋죠?”
“강아지 너무 귀엽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따라 한다. 친절해서가 아니라, 이방인 티 안 나려고.

길에서도 눈만 마주치면 입꼬리가 먼저 올라간다.

한국은 침묵이 기본값이라면, 여긴 미소가 기본 세팅.

어느 날 새벽, 졸린 눈 비비며 엘리베이터 탔는데 꼬마 하나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Good morning!”

그때 생각했다.
“아 여기선 웃지 않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구나.”



퇴근이 허락된 나라

이곳의 개인주의는 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편하다.

한국은 관계주의가 너무 심하다.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상대 기분을 먼저 계산하고, 분위기에 맞춰 생각을 바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특히 윗사람 앞에서는 자기 생각? 그건 그냥 봉인한다.

그래서였을까.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땐 일이 힘든 게 아니었다. 일은 덤이고, 진짜 업무는 인간관계였다.

여긴 다르다. 5시 퇴근이면 진짜 5시에 퇴근한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달랐다. 일을 다 끝내도 상사보다 먼저 나가는 건 마치 사직서 내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다.

“오늘 칼퇴했는데 나를 찍은 거 아닐까?”
“부장님한테 또 말실수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퇴근 후 집에서도 회사는 따라왔다.
심지어 침대 위에서도 나는 내일 부장님에게 무슨 말을 덧붙여야 덜 미움받을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에 비해 이곳은 단순하다. 쉬는 시간은 칼같이, 퇴근 시간도 칼같이.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쯤 되면 깨닫는다. 한국에서는 회사에 몸을 바치는 노동자, 여기는 퇴근 시간에 맞춰 나가는 인간.

삶이 단순해졌다.



Thank you, Sorry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문화

내가 캐나다를 좋아하는 이유? 사실 별거 없다. 이 세 단어 덕분이다.

“Thank you.”
“Sorry.”
“Excuse me.”

여기선 이 세 마디만 입에 달고 살면 웬만한 사회적 갈등은 다 무마된다. 거의 방탄조끼급.

쇼핑할 때 누가 내 앞을 지나가야 하면? 그냥 못 지나간다.
반드시 “Sorry” 혹은 “Excuse me.”
그냥 지나가면? 그 순간부터 넌 무례한 인간, 아니 거의 캐나다 사회에서 퇴출 대상.

문을 먼저 열고 들어간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 올 때까지 손목이 부러져도 잡고 있어야 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님에게 “Thank you!” 안 하면 어떤 눈빛을 받는지 경험해 보면 안다.

한국에서 살 땐 이런 게 늘 답답했다. 양보를 해줘도 아무 말 없는 사람들.
카페에서 손님이라는 이유로 무례를 기본값으로 세팅해 오는 사람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사치, “미안합니다”는 거의 멸종 위기 단어였다.

여긴 다르다.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도 고맙다, 미안하다를 붙이니

상대도 덜 무안하고, 나도 덜 예민해진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여기선 Sorry와 Thank you가 없으면 그냥 사회적 사망이구나.”



유학생도 일을 할 수 있다

캐나다는 할 일만 잘하면 된다.

성실하게 일하면 피부색, 나이, 장애, 결혼여부, 이혼여부 같은건 아무도 신경 안 쓴다.

그냥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는다. 하물며 나 같은 유학생에게도 일을 시켜주고 돈을 준다.

그래서일까, 힘들게 일하고 받는 첫 월급봉투는 가끔 눈물겹다.
“아 나도 여기서 쓸모 있는 인간이구나.”


하지만 캐나다에서 사는 게 버거운 이유? 단 하나, 영어.

여기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유색인종, 동양인, 영어가 서툰 여자다.
가끔 회사에서 긴장해서 말이 꼬이거나 능력을 다 못 보여줄 때
“아 영어가 모국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솔직히, 가끔 이런 상상도 한다. 캐나다 백인으로 태어났다면? 영어를 술술 했다면?
그리고 금방 깨닫는다. “그랬어도 여전히 나는 회사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었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캐나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똑똑하거나 빠릿빠릿하진 않다.
한국인들이 근면성실 DNA를 기본 장착하고 태어난 건 사실이다. 피부색과 모국어는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난 그냥 결심했다. 불가능한 것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자.
이왕 외국에서 사는 거, 한국인의 근면성실을 무기 삼아 끝까지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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