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보다 빠른 건 김밥이었다
몸은 캐나다에 있지만, 가끔 마음은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든다.
일하고 공부하고 하루를 채워도 이상하게 한쪽이 비어 있다.
그럴 때 불쑥 한국 사람들과 밥 한 끼 하고 싶어진다. 김치 냄새 섞인 대화가 그리워진다.
나는 불교 신자다. 그런데 작년부터 한인 교회를 나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외로움은 종교를 가리지 않으니까.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새롭게 하소서"를 봤다. 하나님을 만나 인생이 뒤집힌 사람들의 이야기.
신앙 간증이라기보다, 그냥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담’ 같았다. 그걸 보면서 묘하게 위로가 됐다.
“아 나도 뭔가에 기댈 수 있구나.”
작년 10월, 집 근처 한인 교회에 처음 발을 들였다. 그리고 운 좋게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
문제는 내가 너무 바쁘다는 거다. 크리스마스? 못 갔다. 12월 31일? 못 갔다.
새벽 4시부터 저녁까지 노숙자 센터에서 일해야 했다. 사람들은 가족과 예배로 한 해를 마무리할 때,
나는 센터에서 “오늘도 안전사고 없이"를 중얼거렸다.
그날 집사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해요. 오늘은 일을 못 비워서 예배에 못 갈 것 같아요.”
그랬더니 답장이 왔다.
“그럼 내가 음식을 가져다줄게요. 일하는 곳에서 받으면 되죠?”
나는 멍해졌다.
눈이 펑펑 오는 날,
나를 위해 직접 운전해서 떡볶이와 어묵, 김밥을 들고 온다고?
결국 밖에서 보안 서던 남자 직원이 대신 받아왔다. 비닐봉투 안엔 빨간 떡볶이, 김이 잔뜩 오른 어묵, 그리고 김밥. 그날 나는 하루 종일 굶다가 쉬는 시간에 떡볶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짠 맛이었다. 간이 아니라, 상황이.
타지에서 새해를 맞으며, 뜨끈한 어묵 국물 한 모금 삼키는데 문득 깨달았다.
“역시 타향살이의 종교는 하나님도 부처님도 아니고, 김치와 떡볶이다.”
김밥은? 그건 너무 아까워서 손도 못 댔다. 집에 가져가 냉장고에 넣고 4일 동안 쪼개 먹었다.
그때 알았다. “아 행복은 칼로 잘라 먹는 게 아니라, 얇게 아껴 먹는 거구나.”
그날 덕분에 2023년 마지막 밤은 따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민 생활에서 믿을 건 신도, 돈도, 운도 아닌 결국 한국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