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도 빵심도 아닌, 오지랖 심

남의 밥상이 더 궁금한 뼛속까지 한국인

by K 엔젤





아침 식사는 대부분 빵과 바나나로 차려진다.



아침에 빵으로 허기를 달랜 사람들은 점심엔 샌드위치와 에너지바, 그리고 주스를 받는다.하지만 ‘한 끼를 먹더라도 왕처럼 푸짐해야 힘이 난다’는 내 기준에서 보면, 이 식단은 영양가도 부족하고 지나치게 초라해 보인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빵심’으로 사는 걸까. 칼로리를 아무리 계산해 봐도 금방 허기질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힘을 짜내어 하루를 버티고 바깥 생활을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너무 빠른 저녁 시간

이곳의 저녁은 유난히 빠르다. 잠은 늘 10시가 넘어서야 오는데, 저녁식사는 겨우 5시에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은 채 쉽게 깊은 잠에 빠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녁이 되면 늘 배고프다며 밥을 더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이들을 보면 직원들의 눈치를 살핀 뒤 슬쩍 한 접시 더 가져다준다.


가끔은 남은 음식마저 다 떨어져 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땐 내가 싸온 음식을 내민다.


“이거라도 먹어요”


한 번은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 도착한 친구가 있었다. 남은 스파게티 양으로는 도저히 허기를 채울 수 없을 것 같아, 쉬는 시간에 먹으려고 직원실에 숨겨둔 빅맥 세트를 꺼냈다. 그리고 반으로 잘라 조심스레 그에게 건넸다.


초밥의 가진 영향력

이곳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음식을 먹는지 유난히 궁금해한다. 얼마 전, 아시안 마트에서 초밥을 사 와서 비닐봉지에서 상자를 꺼내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던 평소 식탐 많은 제이미가 냉큼 다가왔다.


“이게 뭐야? 나도 한 개 먹어도 돼?”
“나 초밥 엄청 좋아하는데!”

초밥 한 상자가 갑자기 이곳의 VIP 대접을 받는 음식이 되던 순간이었다.



제이미에게 초밥을 하나 건네주자, 곧바로 “나도 먹어도 돼?”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느새 사람들은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했고, 낯설고 흔치 않은 그 음식은 금세 작은 소동을 일으켰다. 파스타도, 피자도 아닌 생소한 메뉴 덕분일까. 예상대로 초밥 21개는 눈 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 집에서 한국 음식을 만들 때면 자연스레 그 얼굴들이 떠오른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던 노숙자 친구들. 그래서 요즘엔 밥을 하면서도 ‘다음엔 뭘 가져가면 이 사람들이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제는 집에서 짜파게티를 해 가고, 후식으로 방울토마토까지 챙겨 저녁을 먹었다. 남은 건 면 몇 젓가락과 방울토마토 몇 알. 나는 그것들을 책상 위에 슬쩍 남겨두었다. 그때 제이미가 내 접시를 힐끗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너 그거… 다 먹은 거야? 그 토마토, 내가 먹어도 돼?”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음식 앞에서는 누구나 솔직해진다는 것을. 나는 남은 방울토마토를 모두 건네며 말했다. “다 먹어.” 그리고 슬쩍 물었다.


“혹시 중국 음식도 좋아해?”

제이미는 토마토를 집어 들며 웃더니 물었다.


“넌 뭐든지 다 잘 먹는구나. 한국 음식도 좋아해?”

“그럼! 난 웬만한 건 다 좋아해. 특히 사람들과 같이 먹는 건 더 좋아. 그때가 제일 행복해.”


나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이미의 얼굴에 환한 빛이 번졌다. 역시, 음식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을 웃게 만든다.


내가 오늘 먹은 건 짜파게티라고 중국식 국수인데
만약 네가 원하면 내일 올 때 만들어서 가지고 올게.



먹는 것에 진심인 제이미에게 짜파게티를 해주기로 약속하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근무는 아침 6시.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5시 40분이었다.


‘몇 분 늦더라도 제이미에게 줄 건 만들어야지.’

그 생각 하나에 샤워는 제쳐두고 곧장 부엌으로 직행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씻는 게 아니라 냄비에 물을 올리는 일이었다.


끓인 면에 춘장을 볶자 고소한 향이 부엌 가득 퍼지며 코끝을 간질였다. 허겁지겁 대충 만든 짜파게티인데도 평소보다 훨씬 맛있어 보이는 건 아마도 마음이 더해져서일 것이다. 짜파게티를 그릇에 담고,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방울토마토도 몇 알 챙겼다. 들뜬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서, 제이미의 방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이미 깨어 있던 제이미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좋은 아침! 음식 가져왔어?”

나는 들고 있던 그릇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



“짜잔! 약속했던 짜파게티.
널 위해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만들었어. 맛있게 먹어!”

제이미의 얼굴에 더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 짧은 순간, 피곤한 아침이 작은 축제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내가 글을쓰는걸 알고 흔쾌히 사진촬영에도 응해주는 유쾌발랄한 제이미


“이따 점심으로 먹을게, 정말 고마워!”

제이미가 기뻐하는 걸 보니 뿌듯했지만, 동시에 묘하게 다른 얼굴들이 떠올랐다. 괜히 오늘 같이 근무할 동료들 생각까지 나는 것이다.

오전조에 함께 설 일을 리사와 사라는 매운 걸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나는 신라면 몇 봉지를 챙겨 넣었다. 그리고 평소 나를 잘 챙겨준 교대조 관리자 켄트를 위해서도 작은 선물을 따로 준비해 두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음식을 챙기는 일은, 그 자체로 이미 따뜻한 하루의 시작 같았다.



사람에게 ‘무엇을 먹는가’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문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곳 노숙자 지원센터에서 제공되는 음식들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한 번은 사라에게 담터 아몬드 호두 율무차를 줬다가 민망한 적이 있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민 차 스틱을 다시 돌려주며, 아몬드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먹는다고 했다. 진심이 무색해졌던 그 순간. 하지만 이번에 준 라면은 달랐다. 둘 다 환하게 웃으며 너무 좋아했다. 그제야 작은 친절이 통하는 걸 느꼈다.





물론, 내 넓디넓은 오지랖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주엔 3일 연속 새벽 근무를 뛰는데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거의 굶다시피 일하는 싱글 파더 크리스가 눈에 밟혔다. 그 수척한 모습이, 괜히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 안에 으깬 감자가 듬뿍 들어 있어서, 하나만 먹어도 든든해. 아침까지 힘낼 수 있을 거야.”


밥 안 먹는 아들을 챙기는 엄마처럼, 나는 저녁으로 가져간 인도 만두(사모사) 두 개 중 하나를 크리스 손에 살짝 쥐여주었다.


개인주의의 나라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내가 뭘 먹는지보다 남들이 뭘 먹는지가 더 궁금한 걸 보면, 역시 나는 타고난 오지랖 넓고 정 많은 한국인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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