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30대 격동기 세번째이야기
남편과 1살차이.
연봉도 비슷하게 벌었는데, 늘 아이에 대한 부채의식은 저에게 더 크게 주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똑같이 직장 다니고, 똑같이 늦게 퇴근하고, 똑같이 피곤한데도, 병원 연락이 오면 제가 뛰어가야 하는 거고, 어린이집 행사도 당연히 제 일정이 먼저 조정되는 거였죠.
그걸 "엄마니까 그렇지"라고 넘겨버리기엔 너무 많은 걸 저만 감당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내는 연차, 반차를 결혼도 안한 팀장님이 매번 이해해주기란 쉽지 않았겠죠. 매번 눈치가 보였고, 아이가 열이나서 병원에 입원한 날도 밤새 간호하고 아침에 교수님 회진 기다렸다 아이의 상태를 듣고나서, 새벽부터 달려오신 친정엄마와 바톤터치 후 택시타고 회사까지 날라서 출근하고 프로젝트 보고 한 적도 있죠. (이 때도 남편은 집에서 자고 출근했어요)
사실, 누가 대신 해주겠다고 한 적도 없고,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이미 짜여 있었던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감정이 깔려 있었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제 안에 쌓인 감정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냈어요.
이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스스로 짊어진 선택들이었는데... 왜 이렇게 억울하고 답답했을까요.
약간 저도 모르게 초기 우울증처럼 아무것도 아닌일에 눈물이 나오고, 하루에도 감정이 업다운이 되는 등 정말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경험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힘든 순간 남편이 뭐 때문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라고 물을 때면, 그걸 하나하나 다 설명해야만 아느냐고 토로하며 서로 대화를 시작하면 답답하다며 그냥 됐다..하고 결말짓고 그 다음 날을 찜찜하게 맞이하는 나날들이 연속적으로 발생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각자 나름의 사정으로 인한 억울함이 들기 시작했던 거겠죠.
하지만, 저는 저의 억울함이 더욱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을 위해 제 커리어와 미래를 희생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왜 똑같이 공부해서 내가 버는 돈보다 그가 버는 돈이 더 가치있고 지켜야 할 바운더리에 더 명확하게 들어가 있어야만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남편은 저를 페미니스트같이 이야기 한다고 어디가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죠. 그럴때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란걸 꼭 해야만 했던건가 잠시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나름 잘 참아낸다고 생각했습니다. 표현을 해봤자 답답한 마음만 커지니, 그냥 아이의 웃음으로 위로 받고 하루이틀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마음에 ‘작은 균열’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