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육아가 더 힘들었어

Part 1. 30대 격동기

by 마포바게뜨

1982년생 김지영을 보며 눈물 줄줄 흘리던 사람들 손!

네. 그렇습니다.

그 중에 저도 있었습니다.


저는 1981년 파다닥 대는 닭띠로 태어나 주어진 일을 향해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 돌진하지만, 체력이 빠르게 고갈될 때 불합리한 지시가 내려오면 한번씩 크게 파다닥 되어 100% 칭찬받을 걸 10%로 낮춰버리는 재주가 있는 억울한 미생이었습니다.


뭐 가끔씩 파다닥 되었어도, 성과주의 압박이 심한 조직에 있었던 까닭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 욕구가 나름 큰 윗 분들을 만나면, 나름 성과는 안겨드렸기에 그나마 제 자리는 지키며 잘 살고 있었습니다.


멘탈이 무너지기 전까지

29살. 광고 회사 힘들다고 다니지 말라고 하는 유명한 말("내가 광고 회사 힘들다고 했자나")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오퍼 제안이 와서 면접보고 들어간 곳의 문화는 체계적으로 역할을 명확하게 나눠서 일하던 전 직장의 업무 방식과는 매우 틀렸습니다.


선 넘고 훅훅 던져지는 일들에 화도 나고 밤새서 말도 안되는 일정을 맞추기를 몇 년... 어느 순간 병든 닭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었을때 만성 지루성 피부염에 걸리고 약을 먹어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게 된 어느날.. 친구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너 소개팅 할래?"


리프레쉬가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친구의 물음에 군 말없이 OK.


말 수도 적고 고집도 세고 답답도 하지만, 이 사람이랑 어떻게 결혼까지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신차리고 눈을 떠 보니 결혼식장이었습니다 ㅎㅎㅎ


그리고 찾아온 예쁜 아이까지.

정말 태어날때는 힘들게 나와서 두 번의 출산은 나에게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을 남겨준

이쁜 딸래미.


모든 것이 행복할 줄 알았고, 이만하면 평탄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들 조리원에 있을 때가 좋은 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웃으며

아이와 함께 집으로 오기 전까지는.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이 제일 무서웠어요

신생아는 2시간마다 깨는거 왜 아무도 얘기 안해준거야?


그야말로 대 환장 파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엄마가 처음이라, 육아서를 아무리 읽어도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이 울음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가도, 늘어난 뱃살과 빠진 머리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인생은 이제 끝났구나를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출산후 한달 만에 그 전과 같은 모습으로 복귀했던 연예인들은 마사지나 피부 관리에 돈을 썼거나, 육아를 24시간 전담으로 해 주실 분이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며 그들이 TV에 출연할때마다 아무도 뭐라고 안했는데 흥분을 하였고,


아이가 깨기 전에 국에 말아 후루룩 한 그릇 먹는 식사 방법과 문 열어놓고 큰 일을 보는 모습 등

내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게 하는 순간들도, 어느새 전혀 부끄럽지 않게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친정엄마가 도와주신다고 오셨다가 가시는 날, 남편이 야근하고 오는 날엔 단 둘이 아이와 적막속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기에, 그런 날은 무조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동네를 계속 걷다가 기저귀 갈기 편하게 된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공간이 넓은 동네 스타벅스에 가서


저녁까지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멍때리기 놀이를 하다가 저녁때쯤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이런 시간에 익숙해질 무렵..문득, 힘들었던 과거의 기본 카페인 3잔 야근 라이프가 매우 좋았던 시절이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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