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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아 Nov 29. 2024

엄마와의 이별(1)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다. 그와의 첫 만남은 세 가족의 외식 자리였다. 엄마는 그를 친구라고 소개했고, 나와 동생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에 응했다. 아빠가 아닌 다른 중년 남성을 가까이 마주한 건 처음이었기에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까무잡잡한 피부, 잔디처럼 솟은 곱슬머리가 주는 강한 인상의 그와 하얗고 모난 곳 없이 둥근 엄마는 외향부터 대조적이었다. 어색하고 낯선 식사 이후 그를 아저씨라고 부르게 되면서 호칭은 정리되었지만, 엄마와 그의 사이는 정의 내릴 수 없었다. 나에게 그는 먹는 데 돈 아끼는 거 아니라며 그동안 눈치껏 시키지 못했던 탕수육과 피자를 사 주는 어른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그와 같이 살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엄마의 외박 횟수가 평소보다 눈에 띄게 늘었을 때쯤이었다. 어두컴컴한 거실 창문 밖으로 엄마의 기척을 찾아 두리번거리거나 오다가 사고라도 당할세라 엄마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글을 일기에 적곤 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곁에 없는 날이면 온갖 걱정에 사로잡혀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이별과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던 나는 엄마의 외박 이유가 그 아저씨를 만나기 위한 거였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기꺼이 새 식구를 포용하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그렇게 다시 우리 집에 네 명이 살게 되었다.



 

 정신없이 수험 생활을 마치고 성인이 될 무렵 그의 존재가 불편해졌다. 홀로 방안에 있다가도 울컥 화가 치미는 날이 잦아졌다. 페미니즘이 거세게 부흥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신경을 긁어댔다. 엄마와 그는 맞벌이였지만, 부가적인 가사 노동은 오로지 엄마에게 부여됐다. 퇴근 후 밥을 차리는 건 항상 엄마였으며, 6,030원어치의 노동이 고스란히 묻어난 밥상에서 엄마는 단 한 술도 뜨지 않았다. 오로지 그를 위한 식사였다.

 

 평등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했다. 집의 주인인 엄마가 식모살이를 자처하는 꼴이었다. 밥상을 치우는 것과 집안을 청소하는 건 내 몫이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기에 희생하는 누군가는 같은 여자인 내가 되어야만 했다. 한 번은 화가 목 끝까지 차올라 몸만 일으켜 안방 침대로 향하는 그에게 먹었으면 같이 치우라고 면전에 대고 말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유난이라는 듯이 그냥 두라며 그의 편을 들어주는 엄마가 미워서 나 역시 오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홀로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엄마가 눈에 밟혀 다시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다리 사이로 보이는 거꾸로 된 세상은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몸만 일으켜 식후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그를 보며 내가 정말 같은 종족과 함께 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하는 극단적인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 명의 인류가 북적이는 똑바로 된 세상에서 분노하는 건 희생의 당사자인 엄마도 아닌, 나 혼자였다.




 그와 내가 단둘이 있는 날이면 집안에는 미묘한 적막이 흘렀다. 가끔가다 텔레비전을 보며 내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들 때면 찌릿 울리는 신경을 노랫소리로 잠재웠다. 하지만 그날은 굳게 닫힌 방문과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괴성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뒤 이불을 뒤집어써야 했다.


“무서워서 손이 떨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순간적으로 멎을 것만 같던 심장은 비정상적으로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분노에 휩싸인 듯이 전화를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정황상 통화 상대는 엄마였다.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에 흐르는 냉기류에 덩달아 내 감정도 차가워지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어렴풋이 느낄 수밖에 없는 건 체내화된 감각으로 느끼는 집안 분위기다. 어째서 우리 엄마를 막 대하는 거지? 증오심이 일었다. 그날부로 그는 나에게 얹혀사는 외부인 남짓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 뒤집힌 세상에서 군림하고 있는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둘만 남았을 때는 굳이 내 방에서 밥을 먹었다. 좁은 문을 비집고 식탁을 들고 오다가 긁힌 손등의 상처는 하얀 흉이 되었다.


 한 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에게 날 선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오더니 아저씨가 그렇게 싫으냐고 물었다. 아저씨가 엄마한테 소리 지르는 거 다 들었다고, 둘이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동정이었다. 서러운 마음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방을 나선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없어지는 그의 한숨이 나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갈등과 상처의 불씨가 나로 인해 발화되는 것 같았다. 그 또한 견딜 수 없어 그에게 마음에도 없는 사과 문자를 보냈다. 집안 분위기는 다시 화목해졌지만, 그럴수록 홀로 외딴섬에 있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거짓 웃음을 짓는 내가 가여워질수록 손끝에 닿았던 섬은 저 멀리 점이 되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바로 뒤집힌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드넓은 바다에서 수평선을 향해 표류해야만 했다. 그와의 이별이 아닌, 엄마와의 이별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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