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게 감사할 줄이야...
요즘 모기가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집집마다 모기와의 전쟁이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안방까지 따라온 모기를 탁 쳤는데 침대 위 이불에 모기의 피가 터져 너무 속상하더래요.
저도 뒤뜰에 나가 앉아 있다가 안으로 들어오면 모기에게 물린 자국이 수두룩 하구요.
남편이 모기약을 뿌릴 때 저는 그 모기약 향이 너무 싫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고개를 내밀었는데 공중에 분사된 모기약이 입속으로 들어가 사레가 들린 적도 있어요.
모기를 쫓는 초를 켜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거실에 앉아있는데 정말 사람 약 올리는 ‘에엥’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면, 후다닥 경기를 하면서 모기를 잡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죠.
내 손톱보다 작은, 종이 한 장보다 가벼운 모기라는 존재가 왜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걸까요?
그런데, 며칠 전 유리문에 앉아있는 파리를 보고
앗! 모기가 아니네!
하고 얼마나 반갑던지요.
그런데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더라고요.
문을 열 때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파리가 얼마나 얄밉고 싫은지
파리채를 들고 돌아다니며 파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었던 게 고작 몇 달 전인데...
이젠 그 지독히 짜증스러웠던 파리가
모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네.
심지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그래서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걸까요?
아니면 모든 건 상대적인 걸까요?
몇 달 전의 나에겐 파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짜증 나고 귀찮은 곤충인데
강적 모기의 출현으로 파리는 아! 다행이다 모기가 아니어서 하는 반가운 존재가 되니까 말이에요.
아들에게 방금 파리가 모기가 아니어서 예뻐 보이더라고 얘기했더니
엄마 참 이상하네. 난 모기도 싫고 파리도 싫은데.. 엄마는 참 Thankful 하네…
제가 파리에게 감사할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참 모든 게 상대적인 것 같아요.
지금 내 앞에 당장 놓인 고통이 그 순간엔 최고의 고통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오기도 하고,
어떨 땐 지금 이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야 하고 느끼지만 또 시간이 지나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행복감이 몰려오는 순간이 있기도 하죠.
제가 애틀랜타에 있는 일본 무역 회사에 다닐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배로 받아야 할 Komatsu 불도저의 커다란 자재들을 forecasting 예측 오류로 비행기로 받아야 할 때였어요.
다른 일본직원들은 모든 공급업체가 일본에 있었지만 저는 공급업체가 모두 이탈리아에 있어서 여름 두 달을 바캉스를 가기 때문에 여름이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자재를 미리 받아뒀었어야 했죠.
피치 못하게 비행기로 쇠로 만든 경용자동차 크기만 한 자재를 받아야 할 때는 정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처럼 자재비보다 운송비가 훨씬 더 들었는데요. 그런 추가 비용이 발생할 때마다 고객의 생산 예측 오류를 지적하며 운송비를 받아냈어야 했었죠. 포케스팅을 분석하고 또 분석해서 그 오류를 증명해서 운송비를 받아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업무 중 하나였는데요.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쟈스민의 업무는 매번 정확하게 오는 일본 업체들을 맡고 있는 일본 직원들의 업무보다 10배가 더 힘들다고 늘 말하곤 했었어요.
남편의 직장 이전으로 어쩔 수 없이 달라스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달라스에 있는 Samsung Telecommunication America에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휴대폰 자재를 비행기로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순간 생각했죠. 우와 세상에 모든 자재를 배가 아니라 비행기로 받는다고? 내 최고의 골칫덩어리가 없어졌잖아. 일이 완전 껌이겠는데 하고...
그런데… 삼성에 들어가 보니 모델수도 10개 미만이고, 모델 변경이 4-5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코마쯔와는 달리 매달 새롭게 런칭되는 수십 개의 휴대폰 자재들의 설계표를 거의 매일 업데잇해야 하더라구요.
코마쯔는 4년에 한 번 해야 할 일을 삼성에서는 거의 매일 해야 하는거였죠.
3년이나 정들었던 일본회사를 떠나오면서 직원들이
“Jasmine , 너는 이 힘든 일을 꿋꿋이 견뎌내고 잘 해냈으니
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거야!”
하고 응원을 해줬었는데...
삼성에 들어와 보니 제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었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본 회사에서의 일은 삼성에서 제가 겪고 헤쳐나가야 할 힘들었던 업무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였다는 것을 깨달았죠.
파리의 반가움에서 새발의 피로 이야기가 흘렀는데요.
지금 좋다고 영원히 좋은 것도 아니고 지금의 적군이 나중엔 아군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우리 집 창문에 잠시 반갑게 찾아온 파리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