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된 활동들

by 박드레

2학년이 끝났다.

아이의 통지표엔 선생님의 종합적인 평가가 기록되어 있었다.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인사하며 학교에 등교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쉬는 시간을 알차고 즐겁게 보내려고 함.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과 대화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익혀나가고 있음. 생활 및 학습 면에서 내면이 강하고 유머가 있으며 학습력이 빨라 좋은 성장의 모습을 보여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며 무엇이든 스스로의 힘으로 해보고자 하는 태도가 모범적임. 학습 자세가 바르고 자기의 생각을 잘 발표하며 자신감과 침착함을 잘 조절할 줄 앎. 일기 및 독서 통장, 글쓰기 학습에서 주제에 맞게 인상적인 일을 중심으로 생각이나 느낌을 솔직하고 조화 있게 잘 씀. 글씨체가 크고 바르며 기초 학습력이 탄탄하여 앞으로 더욱 긍정적인 발전이 기대됨.



여러 가지 항목에서 상당히 세세한 선생님의 의견을 읽고 나니, 지난 몇 년간의 치료와 학습 지도 과정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에 대한 기대치를 많이 낮춰 놓았다.

7살부터를 학습 시작 시점으로 삼았다.

아이의 집중력 유지 시간을 고려하여 하루 학습 시간은 1시간을 넘지 않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만큼, 정해진 내용을, 정해진 분량대로 학습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아이에게 일정한 학습의 루틴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주말과 공휴일엔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빠지지 않고 시킨 학습은 연산, 독서 통장, 일기, 독해였다.

한 학기에 수학 연산 문제집은 두 권을 시켰다.

학기 시작 전 예습으로 한 권, 시작 후 복습으로 한 권씩.

연산을 시키면서 아이의 머리가 썩 좋지 않구나를 많이 실감했다.

확실히 수학적 사고에 약했다.

그래도 끈기 있게 시켰더니 지금은 두 자리 곱셈까지도 알아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암산 능력은 약해도 암기력은 우수했다.

한글을 일 년을 학습지를 시켜도 못 떼더니 입학하기 두세 달 전, 무식한 암기법으로 학습을 시켰더니 한 달 만에 뗐다.

구구단도 일주일 만에 다 외웠다.

암기력은 아이가 기본적인 학습에서 뒤처지지 않게 해 주는 힘이 되었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독서 통장 제도가 있었다.

하루 한 권이상 독서를 하고 두 줄 정도 자신의 감상을 노트에 기록하는 거였다.

한 학기에 100권을 목표로 썼다.

독서는 매일 아침 시간과 저녁 시간에 두 권씩 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엔 두 줄을 채우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많이 도와줘야 했다.

문법이 틀리거나 이상한 문장은 가다듬어 주었고, 이 표현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얘기해 주었다.

사고력과 논리 추론력이 덜 발달된 아이다 보니 자기 생각을 풀어내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다.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풀어서 설명을 해 주고, 내 생각도 많이 들려주었다.

또 아이의 생각을 잘 들어보고 아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해 내가 다시 정리된 표현으로 알려주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의견 자체가 필요 없을 단계에 이르렀다.

2학년이 되어서는 그냥 혼자 쓰게 하고 한 번 읽어 보면, 자기 생각이 잘 드러나게 잘 쓰고 있었다.

아이는 1학년 2학기부터 시작한 독서 통장을 세 학기 내내 100권을 넘겨 다독상을 연속해서 세 번 받았다.

300권 이상을 독서 통장에 기록한 것이다.

일기는 1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쓰기로 정해서 빠지지 않고 썼다.

방학 땐 놀러 다닌 적이 많아서 특별한 일이 많다 보니 방학 때 쓰기가 더 수월했다.

일기 역시 처음엔 엉망이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내용도 풍부해지고 쓰는 요령도 늘었다.

나중엔 오타나 맞춤법만 수정해 주면 되었다.


독해는 쉬운 독해 문제집으로 했다.

적은 양을 일정하게 꾸준히 해 왔다.

2년 동안 10권을 했다.


아이의 능력을 향상하는데 도움을 준 두 번째는 승마, 태권도, 미술이었다.

승마는 집중력을 키워주기 위해 시작했는데 개인 강습으로 1-2년 꾸준히 시키니 확실히 집중력 유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기본적으로 말과 교감을 해야 하고, 말이 엄청 예민한 동물이다 보니 말의 호흡과 컨디션을 기승자가 파악해야 하기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낙마를 했다.

우리 아이는 실제로 말에서 많이 떨어졌다.

코치가 항상 옆에 붙어서 계속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따라가며 얘기를 해도 집중력 유지 시간이 짧아서 잘 떨어졌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다른 말이 소리를 내도 말이 놀라 뛸 때가 있어 아이가 낙마를 했다.

난 주로 대기실에서 CCTV를 통해 아이의 기승을 지켜보는데, 한 번은 모처럼 밖으로 나가 타는 모습을 봤는데 잘 타던 아이가 말이 뛰는 바람에 떨어져 펜스에 부딪히는 바람에 목에 상처가 나 피가 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때도 있었다.

그때 심각하게 승마를 중단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아이가 의외로 괜찮다고 계속 타겠다고 해서 밴드만 붙이고 레슨을 끝까지 마쳤다.

또 한 번은 야외에서 외승을 하던 중, 말이 너무 빨리 달려서 컨트롤을 하지 못한 아이가 "엄마! 살려줘!"하고 소릴 치는 바람에 놀라서 달려갔더니 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이만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러다 크게 다치는 거 아닌가 염려스러워하면서도 계속 시킨 이유는, 일단 아이가 그런 경험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점점 말 위에서 집중력을 유지하며 말과 호흡을 맞추어 가는 단계로 발전해서이다.


태권도도 2년을 시켜 1품을 땄다.

방학 땐 쉬게 하고 품새를 늦게 익혀도 그냥 놔뒀더니 남들보다 배가 걸렸다.

그래도 1품 시험을 보러 가서 참관해 보니 기대 이상으로 동작도 정확하게 하고 다리도 잘 올리고 멋지게 잘해서 놀랐다.

품 시험을 준비하면서 한 달을 꼬박 저녁에 도장에 가서 한 시간 반씩 열심히 연습하더니 속성 교육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태권도를 하면서 규칙과 규범을 익히고 정신 교육도 받고 무엇보다 선후배,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고 수련을 하면서 사회성이 키워지게 되었다.

도장에서 사귄 친구들이나 형들의 관계가 학교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인간관계 확장에도 도움을 주었다.


미술도 꼬박 2년을 시켰는데 처음엔 사람 얼굴도 못 그렸던 실력이 점점 좋아져서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맘껏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미술은 일주일에 이틀만 시켰는데도 그림과 만들기를 통해 생각이나 경험을 표현해 내는 연습이 잘 되어서 학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아주 잘 그리는 수준은 아니지만 아이만의 그림체와 표현 방법이 생긴 것은 굉장히 좋은 것 같다.



세 번째, 가장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행이다.

평상시에도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많이 한다.

우선은 내가 여행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이도 야외 활동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주말엔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바다도 가고, 꽃도 보러 가고, 자전거도 타러 가고, 워터 파크도 가고, 놀이동산에도 간다.

아이는 애기 때부터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 울릉도를 빼고는 안 가본 데가 별로 없다.

유치원 때는 그냥 며칠씩 빼고 다녔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론 체험 학습을 써서 놀러 가고 있다.

바다를 제일 많이 가는데 동해는 주로 회를 먹으러 가고, 서해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거나 게를 잡으러 가고, 남해는 다양한 레포츠를 하러 간다.

방학 땐 학원은 다 쉬게 하고 장기 여행을 간다.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고,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고 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아이가 세계를 넓게 인식하게 되고, 책으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여행을 많이 할 예정이다.

한 달씩, 보름씩 다른 도시에서 살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가 부쩍 커졌다는 걸 느낀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소통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아이의 내면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행뿐만이 아니라 나는 아이와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봄이면 냉이를 캐러 가고, 쑥을 뜯으러 갔다.

가을에는 고구마를 캐러 가고, 도라지나 황기도 캐러 갔다.

물론 나도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동네에 그런 걸 잘 알고 나를 끌고 다니는 언니가 있어서 시작된 활동이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가능한 체험들이다.

아이는 흙이나 모래를 너무 좋아했다.

넓디넓은 밭에 풀어놓으면 하루 종일 흙에서 놀았다.

옷과 신발이 더러워지고 차가 진흙 범벅이 되는 것쯤은 상관없었다.

아이는 흙을 만지면서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고 안정감을 느끼는 그 기분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일부러 밭으로 나간 적도 많았다.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얻게 된 것은 정신적 건강함과 기미이다.

난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사람이었는데 야외에서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기미가 점점 늘었다.

피부과도 다니고 해도 별 효과가 없었다.

선크림을 꾸준히 발라야 하는데 깜빡할 때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결과이지 싶다.

그래도 아이가 바깥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가 줄고 행복해하는 게 보여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초 3이 되면서 아이가 점점 여행을 귀찮아하고 집에서 친구랑 게임하는 걸 더 좋아하려는 경향을 보여 가끔 서운할 때가 있다.

당연한 성장의 과정이지만 좀 더 아이와 여행을 오래 하고 싶다.

아이가 혼자 집에 남겠다고 할 때까지 줄기차게 여행을 다닐 계획이다.


여행만큼 인간을 성장시키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없다.








keyword
이전 09화임상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