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감수성이 남다른 편이다.
그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느꼈다.
친구랑 같이 놀다가 친구가 울면 따라 울 때도 있었고, 슬픈 동화책을 읽어주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청개구리>나 <성냥팔이 소녀>, <플란다스의 개> 이런 동화책을 읽다가 아이가 너무 울어서 달래 준 적도 있었다.
친정 엄마 집에 가서 할머니가 보는 일일 드라마를 같이 보다가 등장인물들이 우는 장면에서 같이 우는 바람에 친정 엄마가 당황하셨던 적도 있었다.
이런 면은 나를 꼭 닮았다.
나는 알아주는 '지감소(지랄맞은 감성의 소유자)'였다.
특히 사춘기 무렵엔 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감성이 널을 뛰는 아이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점점 이성적인 인간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헤세에 심취하게 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내 평생의 숙제는 감성과 이성이 가장 조화로운 비율로 맞춰지는 인간에 있었다.
이 둘의 관계는 인간이 성장해 나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아이는 눈물도 많고,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이다.
검사에서도 사회성 부분의 점수가 높게 나온 것은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성격 때문이었다.
특히 엄마의 감정에 가장 민감하다.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니 당연하다.
평상시에 아이에게 부드럽고 자상하게 말하는 엄마이기에 조금만 톤이 달라져도 알아차린다.
내 말투가 조금만 딱딱해져도 "엄마 화났어? 기분 나빠?"
하고 묻는 아이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짜증 나는 말투를 보이거나 때론 직업병이 남아 있어 굉장히 단호하게 얘기하게 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서운해서 눈물을 보인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는 때도 있는데, 그러고 나서 아이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엄청 미안해진다.
그럴 땐 솔직하게 사과하고 나의 감정에 대해서 알아듣게 설명을 해 준다.
아이가 감정을 세세하게 구분해서 반응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나는 나의 감정에 대해 아이에게 비교적 자세하게 구분해서 설명해 주는 것에 익숙해졌다.
자세히 예를 들어 설명해 주니 점점 아이가 타인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반응하는 법을 익혀 가고 있다.
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별일 아닌 것에도 눈물을 보이는 일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감성적이다.
며칠 전에도 절친과 통화를 하면서 같이 게임을 하다가 친구가 자신을 방어해 주고 적을 같이 물리쳐 주니까,
"00아, 사랑해!"
라고 해서 그 친구가 당황해서
"어.... 어."
하는 걸 스피커폰으로 듣고는 웃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곰 같은 친구가 뜬금없이 사랑 고백을 하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와 나는 끊임없이 스킨십을 하고 사랑 고백을 하는 편이다.
나는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집안의 문화 덕분인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꽤나 스윗한 편이다.
이모들, 사촌 누나, 형들에게 곧잘 달려가 안기고 누나들에게 "이쁘다"는 말도 잘해서 누나들에게 카톡 이모티콘이나 치킨 선물을 잘 받아서 잘 써먹는다.
집에서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자기는 혼자 놀다가도 갑자기
"엄마. 나 좀 안아줘"
하고 달려올 때가 있다.
안아주면 "피곤했는데 이제 됐다" 한다.
어제는 안아달래서 안아줬더니 울컥 눈물을 보여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단다.
요즘 감성이 확 성장해 가는 시기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가 사랑스럽다.
이 감성은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을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확신한다.
다만, 나처럼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고 조절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그것 역시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연습과 수련이 필요하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남자치고 너무 감성적인 내 아이도 언젠가 반드시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룬 인간으로 성장해 나갈 가라고 믿는다.
또, 내 아이는 일반적인 시선이 아닌 독특한 시선을 갖었다.
아이가 일곱 살이었을 때, 백설공주를 읽었는데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아이는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근데 엄마! 마녀는 어떻게 됐어?"
주인공인 백설 공주나 일곱 난쟁이보다 아이에겐 마녀의 끝이 궁금했나 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 글쎄. 공주의 아빠한테 쫓겨나지 않았을까?"
"그럼 들판으로 쫓겨나서 늑대한테 잡혀 먹혔을 수도 있겠다. 안 됐다."
"그르게. 나쁜 짓을 했으니까 벌을 받았겠지."
"그래도 불쌍하지 않아? 공주는 잘 됐지만..."
그런 아이였다.
갖은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결국엔 행복해지는 주인공들보다 사악한 일을 벌여 벌을 받는 악인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는 아이.
아이는 주인공들보다 주변 인물들 하나하나에 관심이 많았다.
해피엔딩보다 새드 엔딩에 깊은 여운을 느꼈다.
아이의 그런 시선이 참신하게 여겨졌다.
보통의 남자아이들은 쓰는 걸 싫어하는데 아이는 집에 와서 뭔가를 정리해서 쓰는 걸 좋아한다.
게임 규칙을 정리해서 작성하거나 게임 캐릭터의 특징을 정리해서 기록하기도 했다.
학원 아이들의 특징을 적어 놓기도 했다.
왜 그렇게 쓰냐고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작가가 되려고' 그런단다.
쓰는 걸 좋아하는 면도 나를 닮았다.
미각이 남다른 것도 나를 닮았다.
그렇다면,,,,,
덕후의 유전자도 있겠네
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