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가 좋다고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제주의 모든 것을 사업화의 시각에서만 본다는 것입니다. 제주인의 가치와 정서까지도 돈이 되는 뭔가로 자꾸 바꾸고자 합니다. 그들은 제주의 기본적인 정체성이나 문화는 크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주사람들의 정서와 맞지 않기 때문에 local people과 충돌하는 것이지요"
그는 분명 말투가 이주해 온 타지인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들 눈에도 일부 이주민들이 제주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얘기를 그들의 입으로 공식석상에서 스스럼없이 얘기한다는 점에서 놀랐다.
오늘은 시민 아키비스트들의 첫 모임이다. 아키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가 연구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다. 주제발표를 했던 내용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토론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제주에 대한 이주민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오늘도 참석자의 50% 정도는 이주민들이다. 몇 년 전부터 제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각종 교육이나 모임, 스터디들이 많이 생겼다. 제주의 마을공동체에 대한 교육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의 옛 모습을 찾아서 기록하는 교육 과정까지 생겼다. 이런 과정들은 보통 교육을 이수하고 나면 수료증을 주고, 가끔은 해당 분야에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을 할 기회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정원은 보통 20명에서 많게는 40명 정도다. 교육 기간도 보통은 20~30시간이지만 다소 전문성이 요구되는 경우는 10개월 코스, 80~100시간이 되는 경우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교육참여자들이다. 교육과정별로 차이는 있지만 많게는 거의 반이상이 이주민들인 경우도 있다. 오리엔테이션 자기소개 시간에는 전국의 사투리가 전부 나온다. 짧게는 지난주에 이사 와서 짐 정리도 안 된 사람부터, 이주한 지 몇 년 되는 사람, 제주 토박이까지 아주 다양하다. 교육참여 이유도 갖가지다. 제주를 알기 위해서, 제주가 궁금해서, 단순 호기심에서, 시간이 많은데 할 게 없고, 친구가 없어서 등등이다.
제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제주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심지어는 공부를 하고 싶은 대상이라고 하는 데는 고마울 뿐이다. 그들의 대단함에 찬사도 보내고, 신기함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성이 의심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최근 10년의 제주사회 변화는 누가 주도했나?
제주로의 이주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최근 10년 제주의 변화는 엄청나다.
제주도의 인구는 1992년 처음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 50만 명을 돌파한 이래 21년 만인 2013년 60만 명을 넘어섰다. 이후 9년 만에 2022년 70만 명 시대를 열게 됐다. 2013년 제주의 순인구증가는 7823명이다. 실제적으로 이때부터 제주로의 이주 열풍이 불었다고 볼 수 있다.
대형 자본이 제주를 잠식한게 국제자유도시 사업이라면, 실제적으로 제주사회를 바꾼 것은 이주민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자본이라고 하겠다. 제주에 터전이 없던 이주민들은 제주에서 먹고 살아갈 방법으로 제주를 사업의 관점에서 많이 접근했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사업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은 가진 사람들은
" 제주, 어디에서 무슨 사업을 하면 될는지? 어떤 곳이 부동산가격이 변화가 많을지? " 등의 사업적 관점으로 시작을 했다. 경치가 볼만하다 하면 카페, 민박, 펜션이 생겨났다. 과수원이나 밭 한가운데, 좁은 농로길 옆,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는 주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은 생뚱맞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마을 깊숙한 곳에는 괴물 같은 타운하우스 단지나 세컨하우스, 휴양형 주택들이 숨어있다. 이런 건물들은 큰 도로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심산유곡의 별장이다. 보통 경치가 좋은 곳, 한적한 곳은 마을에 특별한 의미를 둔 장소가 많다. 그들에게 이곳이 마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장소인지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자본이 없는 사람들은 제주의 문화와 콘텐츠에 접근을 한다.
" 제주의 어떤 문화나 전설, 자원을 가지고 콘텐츠화하면 사업성이 있을까? "
"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캐릭터 사업? "
제주에 대한 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정보와 지식이 쌓이면 전문가로서 컨설팅을 하고 돌아다닌다. 교육을 받았으니 전문가라고 생각을 한다. 섣부른 지식으로 오해와 편견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생긴다.
제주의 젊은이들은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제주를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마을에서는 60대로 젊은이다. 청년회 가입도 가능한 곳이 있다. 마을에는 변화와 활력이 필요한 데 이를 불어넣어 줄 사람이 없다. 때 맞추어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가 마을에 등장했다. 마을에서 늘 보던 자연과 늘 듣던 얘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을 하고 신개념을 입힌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제안을 한다. 매우 유혹적인 얘기다. 더욱이 돈까지 만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제주는 바뀌어 가고 있다..
" 너희들의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은데,
내 추억을 지우지는 말아 달라 "
요즘은 90년대 이전, 신혼여행으로 제주에 왔던 세대가 퇴직을 하고 다시 추억여행을 많이 온다.
" 제주가 많이 바뀌었네, 옛날 신혼여행 왔을 때 그때 제주가 아니다. 그때 제주가 좋았는데.."
공항을 떠나면서 남기고 가는 말이다.
한참 전 풋풋한 낭만의 감정으로 제주를 보던 생각이다. 세월이 흘렀으니 제주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제주의 변화가 그들이 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고 인위적임에 불편해하는 것이다.
요새는 부쩍 제주다움, 제주스러움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예전에는 외부로 크게 노출되지 않던 목소리들이다. 아마도 제주가 자꾸 대상화, 객체화되어 가는 데 대한 제주인들의 반성의 소리가 아닌가 한다. 그냥 자고 나면 없어지는 제주의 정체성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자 제주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는 얘기이기도 하다.
어제 토론 말미에 했던 분이 말이다.
" 너희들의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은데, 내 추억을 지우지는 말아 달라 "
제주는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가지 양립하기 어려운 명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선주민과 이주민이라는 이질적인 두 삶의 주체가 살고 있는 공동체다.
제주를 보는 선명하게 다른 두 개의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