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추억을 지우는 것들..

굴착기(포클레인)가 지나간 자국들

by 노고록

따.. 굴착기(포클레인)가 지나간 자국들

" 따따따 따, 쾅쾅쾅 쾅"

바위를 때리는 금속성 굴착기의 소리가 요란스럽다.

이 놈은 자비가 없다.


조용한 아침 산책길이다.

얼마 걷지 못해서 가던 길을 멈추었다.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내가 가는 좁은 농로인 올레길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올레길은 바닷가를 끼고 있는 해안 길, 오름과 들판사이를 걷는 들길(오름길), 밭과 농촌마을을 끼고 걷는 농로와 마을안길이 대부분이다. 제주의 옛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원도심 길도 있기는 하다.


초창기 제주 올레길에는 제주다움이 살아있었고,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많았다.

2007년 1코스를 시작으로 현재 27개 코스에 총연장 437KM, 방문객은 이제 연인원 1,0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올레길은 짧은 기간에 폭발적인 유명세를 얻으면서 탐방객이 급증했다. 이젠 올레길은 제주 관광의 대명사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할 문명의 도구가 필요하다.

올레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문명의 이기들이 올레길 주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편의를 앞세운 개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으면서 농사짓던 밭과 과수원은 사라지고 우뚝우뚝 건물이 들어섰다. 한라봉, 천혜향, 보리, 고구마, 당근, 양파, 마늘 등 농작물이 사라지고 카페와 레스토랑, 커피숍, 펜션, 민박 등 사람을 위한다는 각종 편의시설이 자리를 잡았다. 밭을 일구고, 오가는 길 농부를 태워주던 소와 말도 사라졌다. 대신에 번쩍번쩍 빛나는, 고급스러운 차들이 줄지어 서서 주인님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개발과 자본이라는 괴물이 들어오면서 배려와 공유가 기저에 깔려있던 제주의 문화는 구시대 유물이 되고 있다. 몇십 년을 아무런 간섭 없이 다니던 올레길에 측량기계와 등기부등본이 등장했다. 무심코 길을 가다 보면 팻말이나 현수막을 걸어놓고 길을 막는 경우가 생겼다. " 여기는 사유지이니 다닐 수 없습니다"

몇십년을 다니던 길이고, 어제까지도 잘 다녔는데 이제는 다닐수 없다니 참 당황스러운 일이다. 대대로 내려온 관습과 배려는 퇴물이 되고, 낡은 것이 되었다. 제주와 마을, 동네 삼춘의 마음에 개발이라는 붓으로 지워지지 않을 금을 긋는다.


제주는 예전부터 올레를 사이에 두고 주변에는 가족 형제들과 괸당들이 모여 살았다. 올레가 좁으면 돌담을 안으로 쌓아서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불편 없도록 배려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기에 지적도는 그대로다. 올레는 내 땅, 네 땅이 아닌 올레를 오가는 모든 사람의 공유 공간이다. 올레는 제주에서 마을공동체 정신을 담은 지극히 복합적이고 대표적인 개념이다.



제주의 오랜 문화의 유산인 따뜻한 "올레"에 "길"이라는 현대적 수식어를 붙여서 이제는 "올레길"이라는 낯선 외래어가 돼어 버렸다.


오늘도 낯선 그런 현장을 걸어본다. 올레길에서 개발의 대명사가 돼버린 굴착기가 나대는 현장은 제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오늘은 인근에 대단위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진입로 확장작업을 하는 중이다. 원래 농로이기는 하나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암석들이 있어서 방치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 거대한 암석을 제압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이 생겨서 제거 중이다.



건설현장의 상징인 굴착기는 못하는 게 없다.

그동안 인간이 할수 없었던 굴착 작업, 토사 운반, 건물 해체, 지면 정리작업을 손쉽게 해낸다. 바위를 깨는 착암기의 역할도 하고, 집게를 장착했을 때는 운반하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다.





그동안 꿈쩍도 않고, 땅속 깊이 박혀있던 거대한 암석이 제대로 주인을 만났다. 굴착기가 바위를 부수고, 산산조작난 바위들을 덤프트럭에 실어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 평탄작업이 끝나고 레미콘 차량이 두어 번 왔다 가면 여기는 여느길과 마찬가지로 평편한 도로가 될 것이다. 콘크리트 포장이 된 올레길이 된다. 이 길을 오가면서 있었던 수많은 추억과 사연, 사람들의 역사는 콘크리트 속에 묻히게 된다.


굴착기는 개발의 상징으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무엇이든지 갈아엎고, 부수고, 없애 버린다.

그들이 왔다간 자리는 모두가 새로워진다. 모두가 없어지고,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척이나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

우리의 추억, 어쩌면은 우리까지 지워버릴 수 있는 그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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