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움이 사라진 제주
내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휴심재(休心齎)라 부르는 나의 스위트홈은 7층이다.
한라산을 향해서 남향으로 자리 잡은 집은 앞이 저지대라 전망이 훤하다. 거실에 누워만 있어도 한라산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갸울날, 눈이 그치고 하늘이 맑은 날이면, 발코니 창틀이 만들어낸 거대한 유리 캔버스에는 눈 덮인 한라산이 한 폭의 동양화로 다가온다.
우리 가족이 이곳 외도동으로 이사 온 건 2001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 이사 온 건 2001년이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IMF 끝물이라 그런지 분양도 순조롭지 못했고, 후유증으로 아파트 공사도 원활하지 못했다. 입주도 듬성듬성 이루어졌다. 한쪽에서는 입주하고, 한쪽에서는 공사를 하니 단지 내 형편도 말이 아니었다. 어쩌다 정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는 날, 저녁에 여유가 있어도 동네마실을 나갈 수가 없다. 갈 데도 없고, 갈 수도 없다.
깜깜한 밤 거실에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한라산 방향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밖에는 짙은 어둠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 있는 건지 개구리와 맹꽁이 우는 소리가 유난히도 맑고 크게 들렸다. 그때 발코니에서 들을 수 있었던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파트 건너에는 우물과 물이 흐르는 도랑이 있었다.
거실에서 보는 바깥은 깜깜이다. 무엇이 있는지 전혀 구별이 안 된다. 가끔 멀리 불빛이 하나둘 오가면서 움직일 뿐이다. 어떤 날은 움직이지 않는 불빛이 몇 개 보일 때도 있다. 동화 속 산골 오두막집에나 있음 직한 희미한 등불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그 위치에는 애월읍 광령리와 고성리라는 오래된 중산간 마을이 있다. 농가의 화려 않지 않은 불빛들이 수목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불빛이 보일때마다 ”저기 불빛 몇 개가 보이네“라는 표현으로 아내를 불러 세웠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20년이 흘렀다. 요새는 거실에서 멀리 한라산을 쳐다보는 날이 손꼽을 정도다.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늘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식상한 것 같기도 하다. 또 막상 본다고 해도 미세먼지나 구름 때문에 한라산이나 오름능선이 보이지 않는 날이 많기 때문에 이제는 잊고 사는 날이 많다.
이따금 눈비가 내린 다음날은 하느님도 미안한지. 쾌청하고 선명하게 하늘을 보여 주는 날이 있다. 얼마 전 눈 때문에 제주가 고립되고 제주공항이 난리 나던 때가 있었다. 다음날 하늘이 모처럼 쾌청했다. 거실에서 보이는 눈 덮인 한라산이 장관이길래 카메라에 담았다. 오랜만에 보는 한라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혼자 보기가 아까워 SNS에 올렸다. 난 포스팅을 별로 하지 않는데 이런 날은 종종 게시글을 남기기도 한다. 이곳저곳에서 "좋아요"가 난리다. 한라산의 사진도 좋고, 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네 집도 좋다고. 사실 요새는 미세먼지다 뭐다 해서 한라산의 자태를 이렇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이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사진을 촬영하면 PC로 옮긴다. 날짜하고 장소로 폴더 이름을 만들고 저장해둔다. 훗날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와우, 이렇게 많이 변했어? 불빛이 장난이 아니네···.”
사진을 PC에 옮기면서 사진을 확대해 본 순간 나는 놀랐다. 처음 이사 왔을 때 깜깜하게 아무것도 안 보이던 거실과 한라산 사이에 불빛이 화려했다. 멀리 한라산 앞자락에 보이는 모습이 너무 달라져 있었다. 낮에는 뭔가가 보이기는 하는데 분명치 않다가, 밤이면 불빛 때문에 선명하게 보인다. 수목과 과수원이 있어서 녹색의 편안함을 주던 곳곳을 불빛이 대신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보이는 밝게 보이는 빛줄기가 저것 때문이었구나. 20년 동안 슬금슬금 변하다 보니 나는 느끼지를 못했던 것 같다.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을 내걸고 달린 지 2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제는 상전벽해가 되었다. 제주 어디를 가나 예전 제주의 모습을 볼 수있다면 행운이다. 아무리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중산간 마을이나 농어촌을 간다해도 온전한 제주는 없다. 제주 토박이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곳까지 개발의 흔적들은 침투해 있다. 이주민과 펜션, 카페가 없는 곳이 없다. 그들이 싫다고 떠나온 곳의 모습을 그들이 안식처라고 찾아온 제주에 그대로 만들어 놓고 있다.
제주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제주의 깨끗한 바다를 찾는다. 그 자리에서 눈길만 돌리면 바로 볼 수 있는 한라산과 오름을 최고로 꼽는다. 파랑과 초록의 하모니다. 여기 더해서 제주에는 어디서 잃어버린 듯한 고향의 촌스러운 냄새와 맛이 있다. 이제 제주다움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만 보고, 느낄수 있는 맛이다.
제주는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한다고 투자유치와 개발을 외치면서 제주다움을 사실상 포기했다. 외견상 포기한다고 한 적은 없는데 하다 보니 사라졌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제주다움이 있던 곳은 모두 개발과 자본으로 덧칠해 버렸다. 제주다움은 제주의 것이 아닌 개발과 자본의 소유가 돼버렸다.
제주다움을 포기하는 정책은 제주도(?)가 만들었다. 오색 찬란한 꿈을 꾸면서 말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초 계획대로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많은 부분이 변질되면서 실행이 되었다. 그 변질의 중심에는 중국을 비롯한 외국자본과 육지부의 대형 자본, 이주민들도 한몫을 했다.
이제 길가에서 만난 관광객과 제주에 사는 이주민,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제주에는 제주다움이 없어졌다고, 제주에는 볼 것이 없어졌다고 한다.
수도권 주변과 다를 게 없다,
다시는 안 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