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의 추억이 사라지고 있는 제주

어느날 올레길에서 느낀 단상

by 노고록

나의 글방인 유심재로 들어가는 올레 어귀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커다란 팽나무(제주어 : 퐁낭)가 있다.

퐁낭 아래에는 널따란 평상이 있다. 원래 있던 댓돌(팡돌) 위에 방부목을 깔고 도색을 해서 사람들이 앉기 좋은 나무 평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팡돌은 이 올레 사람들의 쉼터이자 대화의 공간인 지금의 마을회관이다.



지금은 추운 계절이라 사람이 없다.

햇볕이 따뜻한 날이면 동네 삼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정담을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운 여름철에는 세상 걱정 없는 자세로 누워서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유심정을 찾는 날, 특히 봄 햇빛이 따스한 날이면 아내는 유난히 걱정을 많이 한다.

" 오늘도 팽나무 아래 삼촌들이 모여 있을 건데, 지나가려면 신경이 쓰여"

봄 햇빛이 따스한 날이면 폭낭아래에는 동네 삼촌들이 모인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보면 온동네 얘기가 다 나온다. 새로운 뉴스가 만들어 진다. 그런 곳임을 알기에 아내는 그냥 무심코 지나는 것이 편안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칫 잘못하면 뒷담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아내는 이 동네 토박이로 여기서 나고 자랐다.

집안에 형제자매들이 이 동네의 화제의 중심에 있던 적도 있었기에 동네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랜만이우다, 건강들 하우꽈?" 입구에 지날 때쯤 아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

"어, ㅇㅇ 구나, OO 동생, 기여, 너도 잘 살암시냐, 어머니 보래 왐꾸나?"

늘 이런 대화로 통과의례를 거쳐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제주의 마을에는 오래된 팽나무가 동네 곳곳에 있다.

몇 가구가 모여 사는 올레의 어귀(입구)나, 마을의 중심지에는 어김없이 팽나무가 있다. 팽나무 밑에는 동네 사람 여럿이 앉을 수 있고, 간단한 게 음식도 먹을 수 있는 평평한 댓돌이 있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의 쉼터이자 대화의 공간이다. 무료하거나 심심한 날 여기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둘 모여든다. 동네 누구네 집 혼사 얘기, 자식들이 커가는 얘기, 누구 집 소가 송아지를 난 얘기 등등 동네의 모든 사람, 모든 것들이 이야기 소재가 된다. 팽나무 아래가 신문사이자, 방송국, 작가의 창작실, 법원, 경찰이 된다.


마을에 있는 팽나무는 마을의 아픔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의 상징이자 역사다.

마을 설촌의 역사이자, 마을공동체 문화의 중심지다. 수백 년의 긴 세월을 마을 어귀에서 버텨낸 팽나무는 제주인들이 힘들었던 시절 배고픔을 같이 했고, 타지인들에 의한 수탈과 착취의 시절, 몽고와 일제의 지배에 의한 아픈 시절, 4·3의 총알을 맞으면서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마을과 동네 삼촌들을 지켜준 버팀목이었다. 그들의 삶의 역사와 스토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제주의 주요 당())을 지키는 신목(神木) 대부분이 팽나무다.

그 정도로 제주 사람들은 팽나무를 신성시한다.

산림청의 자료에 의하면 제주의 보호수는 155그루라고 한다. 그중 팽나무가 99그루다. 반을 훌쩍 넘는 숫자다. 이 팽나무들은 보통 수백 년의 수령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애월읍 상가리에 있는 팽나무는 수령이 무려 1,000년을 넘는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언제 자리를 잡은 나무라는 이야기 인가?


상가리에 있는 수령 1,000년인 팽나무


제주 마을의 상징이었던 팽나무들이 언제부터인가 슬슬 사라지고 있다.

시작은 도로확장과 개발이었다. 처음에는 마을의 상징이자 역사인 팽나무를 어떻게 제거를 하느냐고 고민했는데, 몇번의 제거로 선례가 만들어지니 이제는 부담이 없어졌다. 불편하면 자른다.


제주 팽나무는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최근 육지부로 조경용으로 고가에 팔려 나가고 있다고 한다. 제법 자란 것은 수백만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한다.


팽나무는 이젠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농촌 마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에는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는 팽나무는 아주 공개적으로 매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올레길을 걷다가 과수원 앞 팽나무에 하얀 팻말이 걸려 있길래 궁금해서 기웃거렸다.

"팽나무 삽니다"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이 팻말이 유심재 입구 팽나무에 걸릴날도 있겠구나 !!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천년을 넘게 제주의 마을과 사람들이 믿고 보호하던 팽나무들, 마을의 역사와 문화, 한을 간직하고 있는 퐁낭들이 사라지고 있다.


‘마을의 혼(魂)"과 "공동체문화"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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