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바깥운동의 최대 방해꾼은 추위와 바람이다.
찬바람 때문에 며칠간 걷기를 쉬었다.
밖을 보니 나뭇가지에 모처럼 바람이 없어서 걸어도 좋을 듯했다.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들도 동행이어서 든든하다.
어디로 가볼까?
사실 두 달여 못 가본 바닷가가 궁금하기는 하다. 그런데 바닷바람이 걱정이다.
" 오늘은 날씨도 괜찮으니 바닷가로 가죠, 아들한테 이호해수욕장도 구경시켜 줄 겸.."
내가 잠시 망설이는 이유라도 알아차린 듯 동반자인 아내가 말했다.
" 오케이, 그럽시다. 가다 추우면 돌아오면 되니까"
우리는 바닷가로 향했다. 10분여를 걸어서 바닷가에 다다를 무렵,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바닷바람이 분다.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제법 차다.
오늘 목적지인 이호해수욕장까지는 내도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해안도로는 오래전에 계획되었으나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지연, 중단을 반복하다가 몇 해 전에야 개통이 되었다. 아주 오래된 어촌마을을 부수고, 없앤 대가다. 좁은 포구를 메우고, 구불구불했던 해안가를 넓혀서 차들이 다니기 좋은 넓은 아스팔트 길로 만들었다. 왼편으로는 탁 트인 바닷가, 오른편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바닷가는 이 마을의 랜드마크로 몽돌해변인 알작지를 끼고 있다. 도로 주변도 잘 정리되고, 깔끔해서 카페와 먹을거리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과 걷기 운동을 하는 동네 사람들도 북적인다. 특히 여름날 밤은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동네모습이다.
해안도로에 접어드니 본격적으로 바람이 분다. 제접 강하다. 바람을 막아줄 것이 없는 탁 트인 곳이라 거침없이 달려드는 겨울 바닷바람은 온몸으로 맞아야한다. 입이 얼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다. 구깃 구깃 주머니 속에 감춰두었던 마스크를 꺼내서 착용했다. 이렇게 찬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2km여를 걸었다.
도회지스러운 멋이 주는 맛이 제법 차다.
돌아오는 길, 추위를 피하고 싶었다.
갈 때 걸었던 해안도로 바로 위편에는 농로가 있다. 아직은 개발이 손길이 덜 미친 곳으로, 장애물 하나 없이 휭하니 넓은 들녘이다. 어디에 서도 밭담으로 오밀조밀하게 만들어 놓은 농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밭일하다가 허리를 펴면 나지막한 밭담 너머로 한라산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농로는 우마가 다니고도 남을 정도의 넓이로 곧게 잘 만들어져있다. 시멘트 포장으로 근대화의 손길을 탓지만, 그래도 목가적인 시골 풍경은 여전하다.
이곳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보리농사를 하던 곳이다. 여름철 한라산을 배경으로 찍은 이곳의 파란 보리밭은 SNS를 장식할 정도로 명물이었다. 좋은 것은 남들과 같이 보기는 아까운 것인지 혼자만의 창틀에 가두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앞뒤가 탁 트인 풍광을 전세 낸 듯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공동주택들이 들어섰다. 이제 내도동 보리밭의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자연과 동업하는 농부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아직도 살아있는 고즈넉한 농촌 분위기와 바람 송송 구멍이 뚫린 현무암 밭담 길은 아주 어릴 적 할머니 집을 다녀오는 기분이다.
따스하고 포근했다.
좁은 공간, 섬마을 제주의 색깔은 나날이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