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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15. 2024

옛것과 새로움이 같이 있는 마을..애월리

애월리 구도심을 둘러보고..



애월(물가 涯, 달 月)은 반달 모양의 바닷가(해안가)를 가졌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지명을 붙일 정도로 아름다웠던 해안가는 매립공사와 LNG 항건설 등으로 원형은 훼손된 지 오래다.


애월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고, 이주민들이 제일 선호하는 마을이다.

애월의 유명 관광지로는 한담해변과 곽지해수욕장이 있다.

이효리로 대표되는 연예인들의 제주 살기의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들리는 설에 의하면 애월을 중심으로 한림, 한경까지 꽤 많은 연예인들이 세컨드하우스가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무엇보다도 제주 시내를 거치지 않고 제주공항에서 바로 갈 수 있는 농촌마을이다.

그러면서도 제주 최대 상권인 신제주를 가는데 20~30분이면 가능하다. 농촌에 살면서 편한 소비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장점으로 애월은 제주에서 관광객들이나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마을이 되었다.   



애월은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마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애월로는 제주의 중심이었던 예전 일주도로다. 어느 마을을 가든 일주 도로변은 그 마을의 중심지였고,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 모든 관공서와 학교,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애월도 마찬가지다. 일주도로의 새 이름 애월로는 예전 애월리의 중심거리였다. 도로 좌우로 읍사무소, 파출소, 전화국, 우체국, 애월초등학교, 애월중, 애월상고가 있었다. 동서 1km 구간은 화려했던 애월리의 예전 모습 그대로다. 대로변은 마을의 중심지였던 그 모습 그대로 지금70~80년대 구시가지의 모습이다. 나지막한 단층의 슬레이트집, 초기 슬래브집의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길가라 대부분이 상가다. 건물 앞이나 창문에는 여지없이 상호나 간판들이 붙어있다. 세월을 감당하다 바랜 간판들과 이제는 다소 찾기가 힘들어진 이름의 간판들도 있다. 애월상사, 애월기계세탁, 전당포, 이용원, 사진관 등등 상호부터가 고풍스럽다.



사람들이 모이는 촌락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식수가 있어야 하고,
이 촌락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이 있어야 한다.


고려시대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성을 쌓았는데 이게 애월진성이다.

지금 애월진성의 흔적은 애월초등학교에 남아있다. 애월초등학교와 애월포구를 경계하고 있는 큰 울타리가 애월진성이다. 비교적 옛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서 그 위용을 알 수 있다.


제주에서 대부분의 마을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이 된다. 애월리 대표적인 용천수는 하물이다. 하물을 중심으로 대규모 촌락이 형성된 게 애월리다. 그래서 인지 마을의 상징인 하물은 지금도 잘 정비 보존되고 있다. 애월리사무소 사거리에 서서 바닷가 쪽을 보면 그냥 보인다. 하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애월초등학교와 애월진성, 애월 옛 포구, 도대불들을 볼 수 있다. 애월의 옛 심장부의 모습이다.


애월리 구시가지의 모습, 지금도 그대로다
옛 애월포구와 애월진성



큰길인 애월로 좌우로 들어가면 예전 애월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주택가다.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는 농촌 촌락의 모습이다.


구불한 마을 안길과 팽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농로나 올레를 포장하고 정비를 해놓은 듯한 모습이다. 넓이도 일정치 않고 방향도 일정치 않다. 오르막 내리막이다. 도로는 차량을 위한 게 아니고, 사람들이 지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모습이다. 길을 따라 집들이 있는 게 아니고 집을 비껴가면서 길을 만들었다.


제주의 전통 가옥들이 그랬듯이 집들은 도로 방향으로 정면을 향한 경우는 별로 없다. 다들 돌담으로 도로와 경계를 하고 있다. 돌담은 모두 성인들의 키 높이 이상으로 지나가면서 집 내부를 볼 수 없다. 돌담 위로 얼굴을 비쭉 내밀어야 집 안마당을 훔쳐볼 수 있는 구조다. 주로 해안가 마을에서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돌담 모습이다.

    

몇 집 걸러 두어 개의 골목이 만나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동네 사람들의 쉼터인 폭낭과 댓돌이 있다. 댓돌은 인간의 문명에 밀려 없어졌어도 폭낭은 동네 사람들의 삻을 머금은 채 무심하게도 서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 폭낭 아래 모여있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끔은 세월의 편안함을 무시할 수 없는 듯 자리는 그대로인데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집들도 보인다. 그러나 주위 분위기를 많이 거슬리지는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애월리 마을안길 모습



지금 애월로는 한적하다. 가끔 지나가는 차들이 몇 보일 뿐이다.

대부분의 차들은 새로 만들어진 일주서로와 애월해안로를 이용한다.

이 두 도로는 애월로와 대칭으로 남쪽과 북쪽에서 마을을 횡단하게 만들어진 도로다.

구도심 도로인 일주도로를 가운데 그대로 두고 남북에는 애월리를 관통하는 도로를 새로 만들었다. 덕분에 그 도로와 구시가지는 그대로 보전할 수 있었다.


북쪽 바닷가에는 애월해안로라 불리는 해안도로가 있다. 애월읍을 막 들어서는 하귀리에서 애월리까지 해안선을 따라서 바다를 보면서 달릴 수 있는 길이다. 이 지역의 포구와 해안가를 매립하면서 만들어놓은 도로다.


제주의 해안도로는 지나는 지역마다 많은 포구를 삼켰다. 포구는 해안마을의 삶의 전부였다. 원형을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없다. 해안도로 애월리 구간에서는 애월포구, 애월항들을 볼 수 있다. 해안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구도로와 만나면서 한담해변이 있는 한담동으로 가게 된다.

주로 해안선을 따라서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다닌다. 주변에는 먹을거리 상가들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남쪽으로는 예전 일주도로를 대신하는 일주서로가 시원하게 나 있다. 애월읍사무소에서 곽지리까지 왕복 6차선의 대로다. 기존 시가지를 거치지 않고 애월을 지나게 만들었다. 경유하는 차들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가장 많은 차들이 다닌다.


애월리는 일주서로와 애월해안로 사이에 주민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애월리가 많이 개발되었다고 하나, 이리저리 무분별하게 변화하고 바뀐 게 아니고,

기존 시가지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주변에 상가가 생겼다.

구분 개발됨으로써 산만함이 비교적 적은 마을이다. 그래서 옛 정취를 아직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애월은 (구)제주시에 가장 근접한 마을로 교통의 발달로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 마을이다.

한 30분여를 달리면 제주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닐 수 있고, 문화와 쇼핑생활을 할 수있다.

행정구역상으로도 예전 북제주군에서 제주시에 편입됨으로써 제주시 문화권으로 흡수되는 바람에 많이 쇠퇴하기는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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