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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02. 2024

아픔을 간직한 수산저수지, 지금도 아프다

제주 최초의 수몰 마을이 있던 곳 수산저수지

애월읍에 들어서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다 보면 일주 도로변에 오름이 우뚝 나타난다. 

정상 부분에 수목이 없는 다소 볼쌍사나운 모습이다.  

물메오름이라고도 하는데 흔히들 수산봉이라 불리는 영봉이다.  

수산봉 앞에는 제주에서 흔치 않은 널따란 저수지가 있다. 수산저수지다. 

예전에는 귀엄저수지라고도 불렀다 한다. 여기가 애월읍 수산리, 물메마을이다. 

     

요즘 수산리는 대수선 공사 중이다.   

수산저수지도 새 단장 중이다. 


1960년 쌀 증산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면서 생긴 게 수산저수지다.

 

제주 최초의 수몰 마을,
40여 세대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 버린 저수지 만들기 공사,
무엇을 위하여 만들었는가?

수산저수지가 있는 자리는 원래 수산리 오름 가름, 알동네라 불리던 하동마을이 있었다. 72세대(1975년 수산리 전체가 276세대), 마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큰 자연마을이었다. 마을의 일을 도맡아 하던 도가(都家)가 있던 도갓빌레가 있고, 1934년 이전에는 마을의 공회당이 자리잡고 있을 정도의 마을의 중심지였다. 저수지와 수산봉 사이에 있는 멋드러진 곰솔 나무가 진주강씨 선조의 집마당에 있었던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 곰솔나무 바로뒤 수산봉 초입 경사지에 있는 커다란 묘역이 진주강씨 정랑공파의 선조 묘역이다.  

최근에 세워진 수몰마을 표지판과 평온하기만 한 저수지 모습

 


저수지는 자유당 정부 시절인 1957년 3월에 시작되어서 1960년 12월 준공을 했다. 

당초는 공섬지 부근에 일부 논들을 넓히기 위한 소류지건설을 하는 게 당동네 주민들이 요구였다.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당시 면의원과 국회의원을 거치고 중앙정부의 현장실사를 하면서 판이 커져 버린 것이다. 당시 국가적 과제인 쌀농사를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던 정부 관리의 눈에는 사업이 새롭게 보였던 모양이다. 물을 가두기에 딱 좋은 하동마을과 인근에 제주에서 보기 드문 논이 있음을 알고는 저수지 건설 사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동마을에 저수지를 만들어서 물을 모으고, 이 농업용수를 인근 하귀(지금 아세아방송국 주변)와 구엄리 농지에 물을 공급해서 쌀을 생산하자는 생각이었다. 물은 모으는 일은 마을을 흘러서 하동마을을 거치고 바다로 흐르는 답다니내(수산천)를 막아서 하기로 했다.    

 

500여 년 동안 삶을 이어온 마을이다. 증언에 의하면 하동마을에는 유독 젊은 청년들이 많아서 마을의 모든 행사는 하동 청년들이 전담했다시피 했다고 한다. 마을 유일의 이발소가 있던 곳이라고도 한다. 

마을주민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온갖 공권력을 동원해서 사업은 진행되었다. 4·3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데올로기에 예민했던 주민들을 대상으로 "반대하는 자는 빨갱이다"라는 덫을 씌웠다. 또는 4·3 당시의 행적을 캐물으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42세대를 강제로 이주시키고, 문전옥답을 빼앗은 자리에 거의 맨손으로 저수지를 만들었다. 철거민들은 제주시와 번대동, 구엄리, 모감동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38,536평(127,392㎡) 에 저수량 68만 톤의 저수지는 주민들의 피와 땀, 눈물과 사연을 물속에 담고 준공이 되었다. 그러나 수산리 주민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도, 이 저수지를 관리하는 수로조합원이 될 수 없었다. 논농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수지의 이름도 논농사를 하는 하귀와 구엄의 이름을 따서 귀엄저수지라 했다. 나중에 관리주체가 한국농어촌공사로 넘어가면서 수산저수지로 변경이 되었다. 


1965년 이후 농사환경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감귤, 양배추, 참외 등 수익 작물 위주로 재배가 되면서 논농사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당초 저수지 개발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수지도 물을 채우는 일이 원활치 않아서 바닥을 드러내는 일도 여려 번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저수지는 준공 후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본래의 기능을 유지해서 식량 증산에 일조를 했다고 한다.


내 기억 속의 60년대 말 수산저수지


내가 국민학교 시절인 60년대 말 그러니까 67~68년쯤이다. 여름방학이면 저수지 인근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서 머무르고 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친척 형들과 같이 저수지 둑방에서 뛰놀기도 하고, 석축을 타고 내려가서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저수지에 담그기도 했다. 둑에서는 빨래하던 동네 삼촌들을 본 기억도 있다. 당시에는 지금같이 물이 많지 않았다. 전체 면적의 1/3 정도에 물이 있었던 것 같다. 수심도 그리 깊지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저수지를 만들고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했고, 둑방아애 번대동으로 물을 흘려보낸 까닭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애조로가 생기면서 둑방 아래 번대동마을이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에만 해도 꽤나 많은 집들이 있는 큰 마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저수지 물이 유입되는 답다니 냇가에서 개구리를 잡고 목욕하고 했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저수지가 본래 기능을 유지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수익성 결여로 논들이 대부분 밭으로 전환되면서 저수지는 농업용수의 기능을 상실했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저수지는 1986년 대호개발에서 수산유원지 사업을 들고 나왔다. 저수지 주변을 임대하여 야외풀장과 보트장, 놀이시설 등 위락시설을 했다. 나도 한두 번 정도는 다녀온 기억이 있다. 제주에서는 드문 시설이라서 당시에는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1996년경 중단을 하고 시설물을 방치하면서 흉물과 우범지역으로 변하기도 했다.  

수산유원지 모습 (1989년, 제주시청 사진DB)

저수지가 본래의 목적인 농업용수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는데도 여전히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어쨌든 현재 수산저수지의 주인은 한국농어촌공사다. 마을에서 저수지를 사용하고 싶어도 한국농어촌공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마을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부분이다.          


농어촌공사에서는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수산광령지구 수리시설 개보수 사업 토목공사"라는 명칭으로   수산저수지의 대대적인 정비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 표지판을 보면 제방 고르기, 물넘이, 방수로 재설치, 취수시설 재설치 작업을 한다고 돼있다. 


작년에는 아예 저수지의 물을 전부 뺀 적도 있다. 1960년 마을이 수몰되고 처음으로 하동마을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지금도 저수지는 한창 공사 중이다. 이제 저수지 바닥은 볼 수 없다. 어느정도 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둑방과 수산봉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연결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둑방을 걷다가 수산봉까지 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산책코스를 만들기 위함이란다. 그러려면 둑방이 없는 부분에 다시 둑방 높이로 둑을 쌓고 도로와 연결을 해야 한다. 대규모 작업이다. 


수산유원지가 있던 넓은 광장에는 대규모 공원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기존에 있던 시멘트 바닥을 전부 드러내고 흙을 깔았다. 정원을 만들고 오솔길을 만들어 나무들을 식재하고 있다. 공원을 만드려는 모양이다.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주에도 수몰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저수지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없다. 

50여 년 전 진주강씨 할아버지 집에 있었다던 소나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곰솔 나무라고 한다. 천연기념물로도 지정이 돼있다. 


이 나무만이 50여 년전 여기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할 수가 없다. 

이젠 곰솔나무도 그 사연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듯 마을을 향해서 허리를 숙이고 있다. 

혼자 살아있음에 대한 미안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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