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귀리 마을여행코스 테스트투어 동행기
상귀리는 제주의 역사적 변환점인 삼별초 대몽항쟁과 4.3이라는 소용돌이가 직접 몰아쳤던 마을이다.
처음 고씨가 설촌 했던 마을은 삼별초의 항전으로 사라졌고, 강 씨가 세운 두번째 마을은 4.3으로 소개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두 번의 환란으로 마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남은 주민들은 그 후에도 인근 해변가 마을인 하귀리로 거처를 옮겼다.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마을을 떠났던 주민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2005년 애조로가 마을을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마을의 중심지가 외부로 공개되기 시작했다. 개발의 손길이 다가오고 이주민들이 늘기 시작했다. 제주시의 연접지역이라 공항이나 신제주와 가깝고 교통도 편해졌기 때문이다.
상귀리는 삼별초의 최종 항전지인 항파두리 내성이 있는 마을이다. 토성은 워낙 크기에 인근마을과 경계를 같이 한다. 그러나 항파두리 하면 고성리에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상귀리 주민들은 이런 부분을 안타까워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마을에서 시도하는 마을여행은 주민들의 잠자던 의식을 깨워주고 마을의 정체성을 찾는 큰 출발점이기도 하다.
휴일 이른 아침인데, 마을회관에는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복장부터 총천연색이다. 누가 보아도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이다. 때마침 푸르러 오는 시골마을 풍경과 어울리고, 한껏 높이 쳐든 하늘의 파란색과도 잘 어울린다. 상쾌한 아침이다.
"어떻게 잘 되세요?" 한번 뵌 적이 있는 분, 오늘 길을 안내하는 해설사분에게 슬쩍 얘기를 건넸다.
"두 번 했는데도 또 떨리네요.." 무관심하듯 하면서 건네는 목소리가 살짝 떨림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지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다 귀향했다고 한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고향마을을 보는 느낌과 생각, 가치가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고 한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뭔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넘쳤다고 한다. 마침 행정에서 마을여행을 함께할 마을 큐레이터 양성교육이 있다고 해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으면서 마을여행을 알았고, "이거구나" 하는 생각에 몇 사람이 뭉쳐서 "상귀리 마을여행추진위원회"라는 조직도 꾸렸다고 한다. 물론 마을이장님의 적극적인 지원하에서다. 코스도 개발하고, 해설 스크립도 만들고, 환경정비도 하고 처음 하는 낯선 일이었지만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이 3번째 현장 테스트다. 이과정을 통과하고 가치나 상품성이 인정되어야 비로소 마을여행코스가 된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녹녹하지가 않다.
제주의 마을은 저마다의 특징과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도 일반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제주를 모두 같은 것으로 묘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가 다르다. 이 다름을 잘 이끌어내고 다듬어서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마을여행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마을 큐레이터 활동이라고 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출발신호를 울렸다. 서로 낯선 사람들이라 간단한 인사를 하고, 몇 시간짜리 여행동반자가 되었다. 처음 보는 이들이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을 벗 삼은 여행객이라는 동질감이 있어서 그런지 어색하지는 않다.
조용하고 한적한 농로길을 따라 웅성웅성 무리 지어 가는 소풍길이다.
돌담길을 따라가다가 인근에 잡초가 무성한 밭으로 들어갔다. 700여 평의 밭에 묘지가 19개나 있다고 한다. 공동묘지도 아니고 문중묘지도 아니다. 그냥 명당으로 소문나 있어서 묘지가 많이 들어왔고, 현재도 13개가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묘지 전시장이다. 산담이 있는 곳, 없는 곳, 비석도 최근의 비석, 아주 오래된 비석, 산담의 형태도 다르다. 같은 자리에서 방향만 바꾸면 다른 산소다. 얽히고설킨 산담의 송악을 보니 버텨온 세월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죽은 자의 출입문이라는 신문이나 비석, 동자석도 그대로다. 코스를 만든다고 얘기를 했더니 몇 분은 이장을 했는데 이장을 한 산소도 봉분이 개장이 된 채 그대로다. 쌍묘를 쓴 경우 대부분이 남좌여우(男左女右)다. 제주의 장묘문화를 짧게나마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안내자는 꼭 이곳을 마을여행코스에 넣고 싶었다고 한다.
내비 담은 고씨에 의해서 마을의 설촌이 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현장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삼별초의 전쟁으로 마을은 흔적도 없어지고, 무슨 일인지 현재 마을에는 고씨성을 가진 주민이 한 명도 없다고 한다.
황다리 꿰는 마을의 본향당이다.
송 씨 할머니와 강 씨 하르방의 설촌역사가 있는 곳으로 매년 음력 정월 초이렛날에 당제를 지낸다. 높이 6~7m의 거대한 소왕천 암벽틈에 있다. 주위는 수백 년 된 동백나무와 도토리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들어가는 입구가 잘 정리되어 있고 당 주변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지만 원래는 울창한 나무숲이었다고 한다.
돌담을 경계로 할망당과 하르방당은 대척점에 위치한다. 가운데 서로가 볼 수 없도록 가림돌담도 있다.
국내 무당계에 영험이 좋다고 소문이 났는지 육지부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방문 후 어지럽히고 가는 예가 많아서 아예 크게 안내문을 써 붙였다. 동네 삼촌이 여기서 좋은 기운을 얻었는지 매일 2번씩 청소를 한다고 한다. 야외에 있는 본향당 중에 이보다 더 깨끗한 곳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도 누군지 모를 사람의 안녕을 빌어주는 촛불과 꽃 한 다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꾸래기 폭포는 황다리궤 입구로 들어가면 당 맞은편 소왕천에 있는 자연 폭포다. 지금은 하늘도 보이고 훤한데 해설사가 어린 시절만 해도 여기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숲 속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건기라 그런지 바위틈으로 졸졸 흐르고 있다.
상귀리 마을 본동과 항파두리 성사이에는 소왕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마을에서는 소앵동이라고 부른다. 위치적으로는 수산리와 경계라 애매하기는 하다. 수산리 예원동이라는 자연마을의 마을회관이 소앵동에 위치해 있다. 행정상으로는 불분명하지만 비교적 고지대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이다. 여기에 소왕옛길이 있다고 한다. 가파른 마을길을 쉬멍쉬멍 올라갔다. 마을가운데는 오래된 팽나무 그늘에는 "마을이 앵무새 모양이라고 해서 소앵동"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있다. 마을 가운데를 지나 옛길로 들어섰다. 잘해야 우마차가 다녔을 정도의 농로 외길이다. 멀리는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란 바다에 파란 하늘이라, 그리고 푸른 밭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이 동네가 초당옥수수 주산지라 가는 곳마다 옥수수 밭이다. 막혀있던 잣길도 여행코스를 만들면서 정리를 했다고 수고를 하소연한다. 잘한 일이다. 제주의 밭에는 잣길이 있어야 한다.
꽤 걸었다. 햇빛을 맞으며 건길이라 목마를 시간이다. 물과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다.
종착지에는 이 지역을 있게 한 생명수인 용천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소왕물이다. 잘 정비되고 널찍한 용천수다. 비교적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않아서 발을 담글 수도 있고, 물허벅을 지어볼 수도 있는 넉넉한 장소다. 모두 곡소리를 하면서 등짐을 풀고 돌바닥에 앉았다.
이럴 때는 입에서 나오는 곡소리를 잠재워줄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언젠가 방송에 들었음직한 RE100으로 생산한 삶은 달걀 2개와 마을회관옆 매실로 만들었다는 매실차가 배급되었다. 이쯤 되면 맛있지 않은 것이 없을 터인데, 여기서 스토리를 얹으니 더욱 맛이 있다.
오늘이 테스트 투어이니 만큼 모두 한 마디씩 얘기를 했다.
소감과 좋은 점, 나쁜 점, 개선사항 등등이다. 돗자리를 깔아주니 모두 평론가이고 비평가다.
오늘 수합된 얘기를 반영해서 정식 마을여행코스로 만들고 모객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제주에는 마을여행을 준비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
마을에서는 일찍부터 하고 싶어도 어찌할 바를 몰하서 주춤했었는데, 행정에서 끌고 지원을 해주니 일단 따라 하기 시작했다. 마을은 무지갯빛 꿈을 꾸고 있다. 마을여행이 잘돼서 마을이 돈도 벌고, 마을도 많이 알려지고 하면 다른 마을사업들도 잘 되겠지 하는 꿈들이다. 그런 부푼 꿈들이 있어야 일을 시작하지마는 그 경로를 잘 알고 있는지 하는 걱정이다.
마을은 생각만큼 단단하거나 조직적이지 못하다. 인력이나 인적자원이 풍부하지도 않다. 몇 사람에 의지하고 한 발 국씩 걸어가다가 그 기둥이 없어지면 쉬 넘어지는 체제다. 그 의지하는 곳이 행정이나 전문 용역사인 경우는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반면 여행은 전문적인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다. 경쟁도 치열하고 그 만치 리스크도 크다. 그런 여행이라는 사업이 순수하고, 비조직적이고 아마추어적인 마을에 적합한지 하는 걱정이다. 마을 여행은 필요하고 추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 듯 나서기를 권하지 못하는 이유다.
체계적이고 완결적이지 못한 섣부른 정책으로 일부 사람들의 배만 채우면서 마을에 허탈감을 주는 또 다른 예가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마을의 주인은 마을의 주민이고 마을 그 자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