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마다 나부끼는 현수막을 보자니
국제자유도시라는 헛된 꿈과 제주살이라는 열풍을 만나면서부터다. 자고 나면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아리송한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언론을 도배한다. 센터니 단지니 타운이니 이름만 들어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게, 또는 이름으로만 이라도 혹하게 만들어낸다. "저 위치에 그런 시설이 들어선다고?" 토박이 제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장소와 시설이다.
마을에서도 그렇다. 마을은 대부분 넓은 임야나 농지를 포함하고 있는 곳이라 사람이 주거하지 않는 공간이 많다. 이런 마을을 오랜만에 찾는 날이면 낯선 환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밭과 밭 사이, 또는 광활한 임야 가운데 떡하니 우뚝 솟아있는 펜스다. 속에는 마치 금은보화라도 숨겨놓은 듯 빈 곳 없이 울타리가 쳐져 있다. 안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엿볼 수도 없다.
제주의 마을 입구에는 현수막 게시대가 있다. 마을에서 관리를 한다. 4~5단의 게시대로 보통 몇 개는 비어 있다. 그러나 가끔은 현수막 게시대가 넘쳐나고, 돌담이며, 도로 보호난간에까지, 현수막이 걸려있는 경우가 있다. 문구도 거칠고 현수막의 색상도 원색이다. 반대니, 투쟁이니 결사 항전이니 데모나 시위를 할 때나 볼 수 있는 투쟁성 단어들로 메꾸어져 있는 경우다.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겠지만, 뭔가는 마을 주민들이 감성을 건드리는 일이 생겼다는 얘기다. 그 일은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시설을 주민들의 동의 없이 들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명의 발달로 삶과 생활은 편해지는 만큼 이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사회기반시설이나 뒤처리 시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하나 주위에 가까이 두기에는 불편한 혐오(?) 시설, 위험시설, 공해성 산업시설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어서 원인행위를 만드는 곳, 처리할 물량이 많은 곳에 들어서는 게 최적이다. 대부분 도시지역이다. 그러나 도시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선 적당한 넓이의 부지를 선택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농촌이다. 일단은 넓은 부지가 있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농촌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시설이 들어오게 되는 과정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을 말하는 건지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또한 실제로 그렇게 마을의 가치(토지나 주택)를 떨어뜨리는지는 검증된 바는 없다. 단지 마을에서 그렇게 느끼고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설령 본인이 이용하고 있을지라도 이런 시설이 내가 사는 주위에 들어오는 것은 거부한다. 어떤 경우는 이런 시설의 성격 자체보다도 이러한 평범하지 않는 시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면서 사전에 마을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는 절차적인 문제 때문에 반대하는 때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런 시설들은 지금의 마을 모습과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시설들이다. 조상들로부터는 물려받았고, 후손들에게는 잠시 빌려 쓰고 있는 현재의 마을,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음에 마을의 고민과 갈등은 커진다. 이런 일이 생기면 마을의 이장은 현수막 붙이랴, 언론 대응하랴, 행정에 모여가서 시위하랴 안 그래도 바쁘다는 이장들이 더 바빠진다. 본인이 이장할 때 이런 시설이 들어왔다고 영원히 마을 역사에 남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을이 반대한다고 해서 이런 시설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시설의 성질에 따라서 여러 가지 조건이 있고 제한도 받겠지만 사업주가 소정의 절차를 받고 행정에서 허가(인가, 승인, 신고) 받으면 마을에서 딱히 막을 방법은 없다. 사전에 마을의 협의나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사업이 아니라면 행정에서는 법규나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손을 털어버린다. 그러기에 마을은 할 수 없이 타협해야 한다. 업체와의 협상이다. 업체는 마을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마을은 업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묵인한다. 마을은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발점이다.
농촌 마을의 주업은 농업이다. 하늘과 땅이 열린 논과 밭 임야가 주민들의 생업 터이자 직장이다. 농민들은 그곳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계를 한다. 길가에 밤새 켜있는 가로등, 말끔히 포장된 도로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자동차의 매연은 농민의 주 생업인 농작물의 작황과 품질에 나쁜 영향을 준다. 새로 들어오는 공해성 시설에서 나오는 분진이나 먼지도 마찬가지다. 온 마을이 회색빛 분진 가루로 덮인 농촌 마을을 생각해 보라. 이곳에서도 농부는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과연 이 회색빛 분진 가루가 가득 쌓인 농작물을 보고도 사 먹을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문명의 이기를 앞세운 편리함에 들어오는 시설,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고 이로운 건지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장소가 최적의 장소인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주거지역에 적합하지 않은 혐오(?) 시설, 위험시설, 공해성 산업 시설, 위락레저시설, 숙박시설들이 제주 섬 전 지역에 무분별하게 들어설 수 있게 지금과 같이 방치하는 것이 맞는 일일지도 궁금하다. 제주의 최대 경쟁력인 쾌적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마주치게 되는 마을의 장소성을 파괴하는 이질적인 시설물들은 내가 있는 곳이 과연 제주인지를 자문하게 한다.
제주라는 섬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제주의 맛은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한 2000년을 전후로 확연히 구분된다. 원래 제주는 자연과 어울리는 휴식이 내재적 상품 가치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 국제적 시설을 갖춘 국제자유도시를 만든다고 제주섬 전체를 쑥대밭처럼 개발이라는 삽질을 했다. 가는 곳마다 공사하다가 만 회색빛 괴물, 문이 굳게 닫힌 빛바랜 흉물 건축물들이 버려져 있다. 그런 현상 앞에서 마을의 시민들은 아픔을 느끼는데 행정이라는 냉혈한은 아직도 이유와 원인을 모르는 모양이다.
괴테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했다. 그 말은 "가장 제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제주 고유의 특성을 가진 것들이 세계인들에게 이색적이게 보이면 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고 그게 바로 세계적인 게 된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도 가장 제주다운 것을 찾고 보전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속 가능한 제주, 영원한 동경의 대상인 제주를 만들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