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하는 말
"언니, 예전에 만났던 그 사람 이름이 00맞죠? 성은 0씨고?"
해가 바뀌고 그 사람과 헤어진 지 꼬박 일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함께 저녁 산책을 하던 중 뜬금없이 전남친 이름을 물었다. 내 지난 연애사를 모두 아는 그녀였고, 그래서 전남친 이야기를 절대 먼저 꺼내지 않던 그녀였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라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와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헤어진 직후에는 우리가 어플로 만난 게 너무 아쉬웠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난 게 아니었기에 mutual friend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깐, 헤어진 이후 그의 소식을 들을 루트가 전혀 없다는 게 아쉬웠던 거였다. 그래서였는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들은 그의 소식에 마음이 조금 애틋해졌던 건 사실이다. 별 시답잖은 소식이긴 했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가 괜스레 카톡 친구에 남아있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봤다. 마음이 일렁거릴까 싶었는데, 바람은 이내 지나갔다.
-
교회 친한 친구 몇 명이서 운동 클럽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진짜, 정말로 건강을 챙겨야 할 때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네가 작년에 진짜 열심히 달렸었잖아." 미친듯이 달리던 시절의 나를 알던 친구였다. 대화 주제는 금세 달리기로 넘어가 달리기 클럽을 만들자고, 달리기가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넘어갔다. 전 남자친구를 처음 만난 날, 달리기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래서 그날 그렇게 흥분해서 말했구나, 이런 마음이었나 보네.' 하지만 떠올랐던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러닝 클럽을 만들겠다는 기대와 각오만이 남았다.
-
꿈을 꿨다. 도움닫기 한 번에 공중에서 세 걸음씩 내딛는 꿈. 달리는데 몸이 너무 가벼워 숨이 차지도 않고 빠르게 내달리는 꿈. 꿈에서 깼을 때, 조만간 한 번 달리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찬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그 기분이 조금 그리웠다.
-
달리고 싶어 공원에 나갔다. 오랜만에 달리려니 몸이 무겁다고 느껴졌다. 2마일을 채우고 멈춰 섰다. '엄청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그를 떠올리지 않은 채로 공원에 나와 달렸는데, 달리고 나니 여지없이 그가 떠오르긴 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마치 내 이별극복기 마지막 장 같아서, 기특하면서도 소중해서, 어디 기록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우린 그 순간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다듬어지고 다뤄져야 했던 것뿐이다.
이 연애는 실패 아니고 연습이었다. 연습의 시간이 있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사라질 수 있을까 싶었던, 상대를 향한 원망이 사라졌다. 정말 괜찮았고, 그게 뭐든 앞으로가 더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