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신장을 위한 차
오랜만에 남편의 30년지기 동생분에게서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20대 시절, 뉴욕 유학 중이던 남편과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계신 분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남편을 찾아와 위로를 얻고, 회사 운영이 어려울 때는 전화로 조언을 구하곤 했다. 오늘은 세종시까지 KTX를 타고 오시겠다는 걸 보니, 이번에는 위로가 필요한 듯했다.
그분은 술을 워낙 좋아하셨다. 그래서 남편도 늘 적당히 맞춰 마시다 보면 평소보다 과음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그렇게 한 번 과음을 하면 남편의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데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까지 걸렸다는 점이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의 여운이 남편의 몸에 오래 남아 나를 속상하게 했다.
거기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남편은 폐렴 치료를 위해 일주일 넘게 항생제를 복용 중이었다. 오늘 마시는 술은 남편의 간에 더 큰 부담을 줄 것이 분명했다.
마음이 답답해지자 온몸에 힘이 빠져 침대에 몸을 눕혔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떼를 쓰면 내 의사가 잘 전달될 것 같지가 않았고, 그냥 지켜보기엔 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남편이 내 기색을 살폈는지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게 마음에 꾹 담아두지 말고, 어른스럽게 인격적으로 이야기해봐봐."
그 한마디에 조금 진정이 되어 내 걱정을 솔직하게 전할 수 있었다. 남편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나서 말했다.
"응, 오늘은 술 안 마실게. 아예 차를 몰고 가야겠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오자 남편은 집을 나섰고, 나는 오랜만에 집에 혼자 남았다. 차를 타고 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집에 들어서자 갑자기 텅 빈 듯한 공간에 남편의 흔적들만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남편의 온기를 대신해 줄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차나 한 잔 끓여볼까."
겨울에 마시기 좋은 따뜻한 성질의 차에는 생강차, 계피차, 쑥차, 홍차, 대추차, 황기차, 유자차, 검은콩차, 작두콩차, 인삼차 등이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검은콩차를 끓이기로 했다. 겨울에는 활동량이 줄어 신장 기능이 저하되기 쉬운데, 검은콩차는 신장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검은콩차를 만들기 위해 서리태 40알 정도를 준비했다. 40알이라고 해봐야 반 주먹도 채 되지 않는 양이었다.
먼저, 검은콩을 깨끗이 씻어 체에 받쳐 물기를 뺀 뒤, 냄비에 기름 없이 넣고 약불에서 볶기 시작했다.
콩들이 3분쯤 볶아지자, 보들보들 떨리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십년 전에 처음 내게 말을 걸어왔을 때 내 마음이 꼭 이랬다.
6분쯤 지나자, 마침내 입고 있던 검은 옷의 자크를 내리듯 콩들의 껍질이 갈라졌다. 그 틈으로 연둣빛 속살이 살짝 드러나며 고소한 향을 물씬 풍겼다.
충분히 볶아진 콩을 조금 식힌 후, 물 1.2리터를 붓고 중불에서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어오르자 약불로 줄여 20분 정도 더 우려냈다.
검은콩차 레시피를 찾아보면 대추나 꿀을 더해 마시라는 조언이 많다. 하지만 막상 검은콩만으로 차를 끓여서 맛을 보니, 숭늉 느낌의 고소함에 다른 무엇도 더하고 싶지 않았다.
참고로, 검은콩의 종류에 따라 차의 맛도 달라진다고 한다.
서리태로 만든 차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
**약콩(서목태)**으로 만든 차는 깊고 진한 풍미,
쥐눈이콩으로 만든 차는 영양이 더욱 풍부하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많이 마시면 신장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하루에 두세 잔 정도가 적당하다.
따뜻한 찻잔을 손에 감싸 쥐었다. 코끝에 가까이 가져가 향을 깊이 들이마시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머금었다. 은은한 고소함이 코끝을 스치며 입안 가득 퍼졌다.
남편이 돌아오면, 이 따뜻한 검은콩차 한 잔을 정성껏 데워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