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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속 편지

바닷가에서 발견한 이름 없는 병 속 편지

by HONG Mar 29. 2025

바닷가에서 발견한 이름 없는 병 속 편지

편지가 발견되었던 건 관광 겸 놀러 왔던 어떤 유튜버 때문이었다.

그는 라이브 방송을 켜고 잔뜩 흥분한 채 낡은 유리병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 병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에 뭔가 들어있었어요!"

영상에는 오래되어 빛바랜 종이가 클로즈업되었다.

빛바랜 종이에 적힌 글자는 숫자와 작대기로 이루어져 있어 더욱 기묘해 보였다.

그는 혹여 찢어질까 돌돌 말린 종이를 조심스레 고정 한 채 카메라를 갖다 대며 말했다.

"이건 대체 어떤 언어일까요?"

그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병 속 글씨를 비추었다.

화면에는 알 수 없는 숫자와 작대기들이 가득했다.


[바닷가에서 발견한 이름 없는 병 속 편지]

영상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흥분했다.

어느 해변에서 발견된 낡은 유리병, 그 안에 정체불명의 문자가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낡고 바랜 글자들은 의미를 알 수 없을 만큼 흐릿했지만

사람들은 지루한 일상 속 새로운 흥밋거리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는 이 수수께끼를 두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황당한 가설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다잉메시지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이는 외계인의 언어를 옮겨놓은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 매체에서는 '재앙을 예견하는 신비한 편지의 내용'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기사를 냈다.

어느 누군가 암호전문가에게 이 내용을 보여줬으나 전문가도 분석을 포기했다는 소문까지 들리자,

사람들은 미스터리한 이 편지가 대체 어떤 대단한 비밀을 숨기고 있을지 궁금해했다.

다른 유튜버들은 편지가 발견됐다던 해변부터 시작해 근방의 마을까지 찾아다니며 경쟁하듯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그때쯤이었다. 내가 우연히 SNS에서 내 편지를 다시 보게 된 건.

엉망으로 써져 있는 숫자들과 멋대로 그어진 작대기들, 어쩐지 낯익은 편지지.

당연히 낯익을 수밖에 내가 쓴 편지니까.

"말도 안 돼!"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라던 그 미스터리한 편지의 주인이 나라고?

머리가 팽 도는 기분에 다시 제자리에 넘어지듯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 편지를 발견한 유튜버의 영상을 재생하고 편지를 바라보자 조금 더 선명히 기억이 떠올랐다.


편지를 바다에 버렸던 건 열네 살이 될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어서 괴로워했었다.

참 이상했다. 우린 같이 대화를 나눠본 적도 별로 없는데

집에 갈 때나, 침대에 누울 때, 조금이라도 혼자 있을 때면 그 친구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그러다 말갛게 웃는 모습이 떠오를 때면 어쩐지 도망치고 싶어 이불을 얼굴까지 올려버리곤 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잔뜩 무거워진 마음을 어디에도 둘 수 없어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예쁘게 만든 편지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막상 다 써놓고 보니 그 문장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 부끄러웠다.

가만히 편지를 바라보다 구겨버리곤 이번에는 아무도 읽을 없는 글자들을 적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과 작대기들, 자음과 모음 그리고 획수를 제멋대로 조합한 것들.

그렇게 한 겹 더 숨겨진 마음을 돌돌 말아 유리병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걸로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지리라 믿으면서 그렇게 며칠을 내버려 두다

가만히 유리병을 바라보던 어느 날은 전해지지 못할 그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쩐지 멀리 떠나보내야만 진짜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감상에 빠져

교외로 나가 바다에게 맡기듯 유리병을 힘껏 던져버리며 그렇게 나의 짝사랑을 마무리했다.

전해지지 못할 편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편지가 나에게 괴담이 되어 되돌아오다니..

황당함을 뛰어넘어 어쩐지 섬뜩한 기분마저 들어 팔뚝을 매만져댔다.


'사실 별게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면 좀 가라겠지..'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소문은 도저히 가라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병 속의 편지'를 검색하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추측 글이 쏟아져내렸다.

그럴듯한 해석들이 붙어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이 편지가 가진 '특별한 의미'를 믿기 시작했다.

 -너 이거 봤어?

친구가 메신저로 보내준 영상에는 낯익은 글씨가 보였다.

누군가 숫자와 작대기들과 재앙이 일어났던 연도를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내용과 함께

다음 재앙이 벌어질 날짜를 유추했고 가까운 미래이며 빠른 시일 내로 공개하겠다는 영상이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될 일인가..?'

나는 도저히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 화면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거 완전 그럴듯하지 않냐? 어떻게 이렇게 딱 맞게 떨어지지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무시한 채, 나는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해 보았다.

'이게 우연일 수가 있나?'

'이걸 어떻게 해석했지? 저 사람 천잰거같음'

'너무 무서워.. 그럼 저 날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거지'

'이거 위험한데, 이 편지가 처음에 어디서 온 건지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님?'

'내가 보기엔, 이거 누군가가 우리에게 뭔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제 모른 척 하기엔 너무 멀리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인터넷 탐정을 자처하며 편지가 발견된 장소 근처에서 찍힌 사진들을 모으고 있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단서가 될 만한 흔적들을 찾아대고 있었다.

내가 쓴 편지에서 다가오지도 않을 재앙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마저 생긴 데다,

가장 두려운 건.. 점점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야 한다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핸드폰을 힘주어 쥔 채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썼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그걸 믿어 줄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소문들이 나를 단두대로 끌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이 편지는 제가 썼습니다. 오래전에 정말 별거 아닌 이유로요.'

타자를 치는 손이 어쩐지 무거웠다. 문장을 멈추고 손을 주물러대며 다음 문장을 고민했다.

이렇게만 적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테지.. 나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어릴 때 짝사랑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썼던 암호문이에요.

암호를 어떻게 푸는 건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자음과 모음의 획수를 숫자로 표기하고,

자음과 모음의 모양을 작대기로 간략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내용까지 풀이해줘야 하나 생각했지만 역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올리고 난 뒤, 나는 잔뜩 진이 빠져 식사도 거른 채 시름시름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처음 몇 시간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에이 이거 구라 같은데?'

'갑자기 자기가 썼다고 하면 다 믿어줘야 함?'

'근데 지금까지 나온 암호해석 중에 제일 그럴듯한데.. 이게 장난이라고?'

'종말설 주장하던 사람들 다 어디 갔음?'

댓글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믿는 사람도,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더 이상 말해봤자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겠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새로운 화제들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이야기가 있었냐는 듯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편지는 한때 유행했던 무언가로 남은 채, 아무도 찾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는데..'

사람들은 늘 쉽게 열광하고, 쉽게 잊어버리니까.

그래도 하나가 남아있다면, 내가 좋아했었던 그 친구가 보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SNS에 이름을 검색하고 그 친구의 계정을 찾아내었다.

여행 가서 찍은 듯한 멀리서 찍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

그리고 웃는 모습이 어떻게 옛날과 똑같을 수 있지?

'안녕, 잘 지내?'

더 이상 바다에 메시지를 던져버리지 않게 된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암호의 정체를 밝혀버렸던 순간의 용기가 남아있어서일까?

충동적으로 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내 자신에게 새삼 놀랬다.

'누구세요?'

답장이 왔으나, 내가 상상한 것보다는 조금 거리가 먼 이상한 재회가 완성되었다.

그도 그럴게 몇십 년 만에 연락을 했으니

내가 누군지, 왜 연락을 했는지, 돈을 빌려달라거나 종교권유도 아니라는 납득이 될 수 있는 설명을 연신 해대고 나서야

저녁은 좀 그렇고 커피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토요일 이른 오후, 일부러 한적한 골목의 카페에서 약속을 잡았다.

나는 먼저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카페 안은 기분 좋은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가득 머금고 나른한 분위기를 풍겼다.

"안녕, 되게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려 노력하며 친구를 맞이했다.

"응 오랜만이네, 나도 잘 지냈지. 너도 잘 지냈어? 무슨 일로 연락한 거야?"

하긴, 나 같아도 몇십 년 만에 만나서 보자는 친구가 생기면 대체 무슨 일인지 제일 궁금하겠지.

"어.. 아니 별건 아니데.. 일단 앉아서 얘기나 좀 할까..?"

처음부터 병 속의 편지니, 암호니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기에는 아직 그 정도 용기는 없었다.


수레에 바람이 빠진 바퀴가 하나 있는 것 마냥 우리 대화는 삐그덕거리며 흘러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사무적인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무슨 일로 연락한 건지 밝힐 타이밍이 되었다고 느꼈다.

"사실.. 널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그 최근에 '병 속의 편지'라고 알아..?"

나는 십 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병 속의 편지? 아.. 그 무슨 암호가 있었다고.. 했는데.. 뭐, 예언서랬나..?"

친구는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만 애써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답해 주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그거 사실.. 너한테 쓴 거야. 그 편지.. 너한테 부끄러워서 못줬거든.."

친구는 처음엔 이해를 못 한 듯한 표정으로 멍하게 내 말을 곱씹어보다

드디어 이해했다는듯 씩 웃더니 커피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그거 꽤 재미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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