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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Mar 13. 2024

직업의 귀천

그래서 치위생사가 뭔데? UIUX 디자이너는 또 뭐고?

치위생학도로 학교를 4년 전공하고 졸업한 후, 또다시 억겁의 3년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취직조차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전공을 살려 직업을 선행하지 않으면 미래에 내가 원하는 일(디자이너 직무를 하기에)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직장에 대학 동기들과 함께 입사를 했다. 치과는 총 3개였는데,  본점 1개와 분점 2개였다. 제법 큰 네트워크 치과였고 때문에 지역에서 어느 정도는 알아주는 치과였다.  하지만 동기들에 비해 우리 지점은 업무량이 많았고, 밀려드는 환자, 하지만 원장님의 섬세함과 치료에 대한 고집으로 잘 빠지지 않는 환자들. 우리 지점은 항상 웨이팅이 있었다. 일이 너무 바쁘니 몸이 하나씩 망가지기 시작했고,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청년채움공제를 걸어 놓은 상태였기에 나는 발에 커다란 쇠사슬이 묶인 도비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디데이를 세어가며 대학교부터 전해진 여초과의 위엄을 느끼며 몸살했다. 


치위생학과라,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 언니 또한 치과위생사다. 사실 난 내가 치위생학과를 가기 전까진 치과에 있는 분들이 모두 똑같은 간호사인 줄 알았다. [치위생사]라는 명칭이 따로 있는 줄 몰랐기 때문에 수시에 학과를 적으면서도 낯설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시 합격 소식을 기다리면서 제발 치위생학과만큼은 불합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을 정도로 나는 이 직업군을 싫어했다. (전국에 열심히 일하시는 치과위생사분들 죄송합니다.) 뭐랄까. 직업 자체가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안경광학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모든 의료인, 의료기사분(이후부턴 편하게 '직업군'이라 칭하겠다.)들은 의사와 떨어진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의 업무와 환자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라는 느낌이 강했으나 치과위생사는 업무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의사의 개입이 크다. 나에게는 이 점이 이 직업의 메리트가 전혀 없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다른 직업군에선 일해 보지 않아 내가 성급하게 일반화할 순 없지만 사전적 의미로도 치과 진료 협조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그밖에 예방처치 및 소위 말하는 스케일링을 단독으로 하긴 하지만, 그 또한 시술의 일부일 뿐 빠른 시간내에 끝낼 수 있으며 이후에는 의사가 진료를 시작할 때 어시스트(대부분 석션을 하는 것) 업무가 주를 이루는 것이 치과위생사의 실정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협조를 하는가. 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위잉- 소리가 나는 기계를 핸드피스라 부르는데, 치아를 절삭하거나 치료를 위해 치아의 우식을 제거할 때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의 열에 치아가 무리가 갈 수 있어 핸드피스에서 물이 함께 나온다. 이때 너무 바쁠 땐 스케일링용 Saliva 팁을 꽂고 혼자 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핸드피스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하고 잘못 꽂을 경우 석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위생사가 석션을 잡아 줘야 한다. 석션은 병원에서 수술 등의 행위를 할 때 가래나 혈액을 흡입해 주는 기계로, 치과에선 타액과 혈액, 핸드피스의 냉각수를 흡입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각설하고, 이렇듯 직업에 대한 애착이 없으니 업무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하루종일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일하다 임시치아나 틀니를 조정하거나 만들 때 몸을 굽혀가며 어시를 한다. 스케일링이나 환자의 임시치아 및 보철물의 적합, 석션을 진행할 때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과하게 숙여야 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손을 써야 하는 직업이니 하중이 앞으로 쏠리다 보니 나의 어깨는 점점 앞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원래도 사고 때문에 골반, 허리가 안 좋았던 나는 일을 하는 3년의 기간 동안 어깨와 목, 발목까지 하나씩 순차적으로 망가뜨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치과에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의 노예 생활을 끝내고 무작정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무의식으로라도 매번 되뇌이다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뭐가 뭔지 몰라 앞이 깜깜했다. 이제와서 디자이너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두렵기만 한 도전이었다. 가장 먼저 내일배움카드를 발급 받았다. 들은 말은 많아서 나라에서 지원을 많이 해 주는 게 내일배움카드라는 소리에 발급을 받고 기다리며 HRD net을 서치했다. 사실 말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했지, 요새 어떤 것들이 디자인계의 트렌드인지를 알 수 없었다. 사이트를 뒤적거리니 가장 많은 강의는 개발자 강의였던 듯했다.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알 수 없는 용어들의 홍수였다. 


내가 이해한 바로 가장 쉽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사전적 의미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린다.) 프론트엔드는 개발자들 중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화면을 구현하는 개발자를 말한다. 디스플레이에 나타나는 요소나 모양을 개발하고 만들어낸다. 백엔드는 서버 뒤, 혹은 내부를 맡는다. 디스플레이에 구현하고자 하는 정보들이 있다면 그것을 관리하고 프론트엔드에게 넘겨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개발 강의가 즐비한 국비지원 강의가 정말 맞나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알아보니 퍼블리셔라는 직종이 눈에 띄었다. 웹퍼블리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직업이라고 들은 것 같다. 디자이너와 프론트 디자이너의 중간 역할 정도를 맡고 있다. 간단한 웹사이트의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디자인보단 개발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 3년이 지난 스물일곱의 시점에서 다시금 신입이 된다는 게 내게도 많이 부담이었고, 더 늦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현실적인 부분도 내겐 큰 장벽이었다. '개발자가 돈을 많이 벌긴 한다는데...' 그나마 고려를 해 보자면 백보단 프론트가 맞다는 생각까진 했지만, 이것 또한 디자인을 원하는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기왕이면 현재 직무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곳에서 힌트를 얻고자 오스템 임플란트 사이트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오스템은 애초에 내가 병원을 다니면서도 암암리에 '그래도 오스템 정도면 디자인 공부 열심히 해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디자이너와의 차별성인 치위생학과 전공생이라는 메리트가 있잖아!' 라고 생각한 덕분에 관심도가 가장 높은 기업이었다. 여기저기 뒤져보다 채용공고에 디자인 파트를 찾아보니 UIUX 디자인이라는 말이 내 눈길을 끌었다. UIUX? 전문 용어인가 싶어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UI는 유저 인터페이스의 준말로 쉽게 설명하면 사용자가 화면단이나 서버에서 보는 모든 디자인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브런치 스토리 사이트에 진입하기 위해 네이버 화면을 켰다고 가정하자. 이때 눈에 보이는 모든 화면단들이 UI를 말한다. 검색창, 검색 버튼, 자동검색, 아이콘 등등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UI의 요소들이 사용자와 서버단의 의사소통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쉽게 설명하면 UI를 선택하고 이용해야만 내가 목표하는 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작은 요소들이 사용자와 서버단 사이의 상호작용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UX란 무엇일까? UX는 User experience 의 준말로 사용자 경험을 말한다. 아까의 예시를 다시 한 번 들어보자. 내가 브런치 스토리에 진입하기 위해 네이버를 켠다는 가정 하에 네이버의 검색창을 잘 뜯어 보면 직사각형의 바 형태에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라는 말이 옅은 색상으로 보인다. 어떤 앱이나 사이트든 주의깊게 살펴보면 심심치 않게 그런 멘트들이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얀색의 검색창으로 만들 수 있는데 굳이 멘트를 적어놓은 것일까? 이를 전문적으로 placeholder라 칭하는데, 번역기를 돌리면 자리표시자라 뜬다. 이러한 placeholder는 사용자에게 명확한 정보 입력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각설하고 돌아와서, 공백이어도 되는 이러한 검색창에 사용자가 그 사이트를 사용할 때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게 UX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의 조합으로 사용자가 프로덕트를 사용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UIUX 디자이너이다. 모든 설명을 보아하니 이 직업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 그룹에서든 해결해 주고,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나에게 알맞은 직업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음을 굳혔다. 


 흔히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직업의 귀천은 직업 자체가 천하고 귀하고를 따진 것을 말한다. 나는 그 직업의 귀천의 의미를 달리 말하고 싶다. 어떤 직업이 사회 통념적으로 좀 더 낫고, 부족해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개인적인 고정관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치과위생사가 전문직이며 소위 말하는 여성들이 결혼을 한 후에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하더라도 내가 그 직업에 맞지 않으면 그게 어떤 직업이든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나 또한 어린 나이에 너무 내 꿈이 명확한데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전 직업을 미워했지만, 그 직업 자체가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본인의 직업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나라는 사람과 직업이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없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다루는 귀함은 맞고, 맞지 않음이라 생각하고 적었다.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귀천의 의미는 각자에게 스스로에게 맞고 아님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뭐든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나에게만큼은 귀한 직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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