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모순, 역설 그리고 ‘사랑'
염세주의_厭世主義
사람들은 염세주의자를 부정적인 사람이라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인간과 염세주의자는 결코 같지 않다. 감정에 휘둘려 모든 것을 낙천적으로 보거나, 반대로 감정에 취우 쳐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염세주의자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염세주의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곧 ‘긍정적인 시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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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부조리와 불평등이 가득하다. 수많은 부조리 속에서 단순히 "행복하세요"라던가 "행복하기 위해 사는 삶"이라는 말은 더운 날씨 한 번에 무너져 내릴 허울 좋은 소리일 뿐이다.
원피스라는 만화를 아는가? 작중 도플라밍고라는 인물은 이런 말을 한다. “전쟁터야 말로 중립이고, 승자가 정의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오늘날 그 개인의 생각과 신념에 대해 평가하는 기준이 돈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의’의 기준은 곧,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돈이고, 성공이며, 명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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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을 도덕윤리적 잣대를 대고 그 ‘개인’을 평가하는 것이 정당할까.? 애초에 그들이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원동력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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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창업자 스티븐 잡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같은 기업인들의 개인의 삶을 보면, 지금과 같은 존경을 받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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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얻은 성공, 돈, 명예, 그리고 권력, 권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곧 기준이자 정의다. 이런 논리로 생각해 보면 염세주의자든, 비관주의자던 성공하면 엄청난 통찰력을 가졌다 할 것이고 실패하면 패배자의 피해의식이라 말할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 아니겠는가.
물론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70억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가치관이, 그에 상응하는 각자의 정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정상이라는 사회적 통념은 역사의 흐름과 문화에 따라서 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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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상의 기준들은 각각의 의미와 가치가 담겨있고, 그 순수한 시작의 색채는 아름답기 그지없고, 순백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현실, 권력, 정치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라는 색채가 섞이니 세대갈등, 남녀갈등, 빈부격차, 혐오라는 충돌이 생긴다.
그 어떤 시대보다 자유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각자의 생각, 이상, 바람, 꿈, 가치관들이 충돌한 결과가 지금의 세상이다.
미래는 모르겠지만, 과거와 오늘. 우리의 삶은 언제나 고달팠다. 그게 현실이다.
염세주의자도 사랑에 빠진다
오늘도 나는 모순과 역설이 가득한 회색 도시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염세주의자도 사랑에 빠진다.
나를 부정적이라 생각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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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을 나에게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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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사랑은 잿빛 세상에 알록달록 색감을 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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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언제나 그랬다. 나의 잿빛 도시에서 물감을 한가득 들고 열정적으로 색감을 넣고 있는 화가였으며, 나의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아주었다.
그녀는 나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언제나 도전과 성취의 달콤함을,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추진력을 가질 수 있도록 언제나 지지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꽤 잘 어울리는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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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이 우울증에 걸렸다
나는 몰랐다. 나처럼 어두운 색감의 사람은 다른 색이 섞여도 별 차이가 없었기에 몰랐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내 아내는 파스텔_엘로우 같은 색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밝고 이쁜. 화려하진 않지만 흐뭇한 미소를 언제나 유발하는, 아니 일단 굉장히 귀여운! 그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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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의 엄격한 기준이, 잔인한 사람들이, 치열한 비교와 경쟁이라는 어둡고 축축한 색들이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런 모습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달랐다.
나는 아내가 가지고 있던 색이 혼탁해지는 순간을 보고 깨달았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싱그러운 향기와 생동감 있는 생명의 순간이 짧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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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는 내 아내의 색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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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정신적 탈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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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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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울증을 단순히 ‘우울감’이 높은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겪어봐서 안다. 우울증이라는 이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내 아내는 우울한 게 아니었다. '극단적인 무기력증’.
그렇다. 아내는 정말 극단적으로 무기력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 편히 쉬면 금방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장시간 외벌이 생활을 시작했으며 꾸준히 의사와의 상담을 했고, 가족과 친구는 언제니 응원을 했다.
그렇게 처방받은 약들이 줄어들고,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극단적인 아내의 무기력 앞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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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당신은?
낙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행복을 추구하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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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로가 아니라 답이 필요했다. 곰팡이는 퍼지기 마련이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서 아내를 외벌이로 케어했다.
나도 사람이라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서 감정에 호소하지 않았다. 책임져야 했다.
아는 게 없으면 우울증 논문을 찾고, 책을 읽었다.
누군가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내가 해야 했다.
나는 삶은 고통이고, 지옥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오늘도 웃고,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지지한다.
지난 5년, 염세주의자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와의 극복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슬픔에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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