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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또 삶 Jul 18. 2023

03. 나아지지 않는 우울과 불안 덩어리

엄마의 두 번째 입원

 

 대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의 상태가 또 안 좋아졌었다. 그전에도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를 반복했던 거 같지만... 내 살 길을 찾으려고 버둥거릴 때라 그런지 기억이 좀체 나지 않는다. 어쨌든 19살부터 23살까지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5년의 시간은 온통 잿빛이었다.


신이 우리 가족에게 '아직은 행복하질 때가 아니야. 너희에게 더 큰 시련을 줄 거야'라고 하는 듯 매일이 고통이었다.  


 엄마는 뉴스에 나오는 얘기들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티브이에 나온다는 것이다. 모든 뉴스의 주인공은 엄마였다. 엄마 때문에 기후가 안 좋고, 엄마 때문에 갖은 사고들이 났고, 엄마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웠다. 엄마 때문에.. 엄마 때문에... 그놈의... 자신 때문에...!!!! 모든 세계의 일들이 자신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엄마의 몸이 아픈 거라면 수술을 하던지 약을 먹던지 해서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적어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을 텐데... 엄마의 머릿속은 도대체 어떻게 고쳐줘야 하는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약을 안 먹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약 없이는 잠을 잘 못 잔다며 매일 약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도 엄마의 상태는 안 좋았다.


 나는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나의 목구멍은 조음(調音) 하는 법을 까먹은 것처럼 어떠한 음성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무력감(無力感)... 그래... 그 무력감. 끝도 없이 펼쳐지는 무력감의 파도에 짓눌려 나는 패잔병(敗殘兵)처럼 비트적거리며 내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어느 날은 엄마가 윗집에 시체를 담는 관(棺)이 즐비한 거 같다며 무섭다고 불안에 떤 적이 있었다. 윗집에 올라가 주인에게 한번 집안을 보고 싶다고 하고 눈으로 확인했는데, 관은 커녕 그냥 한 가족이 평범하게 사는 집이었다. 엄마의 머릿속은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리 무서운 망상까지 하게 된 것일까...


나는 잡을 수만 있다면 그 불안과 우울 덩어리를 낚아채 불에 태워 버리고 싶었다. 엄마의 머릿속에서 꺼낼 수만 있다면 기꺼이 꺼내어 재도 남지 않도록 모조리 태워버리리 -


 우리 집엔 내가 스무 살 때부터 데려와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엄마는 집에서 고양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고양이의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자신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다며 고양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확대해석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못생겨서 고양이도 그걸 알아서 자기에게 안온 다라던지... 고양이도 이상한 사람을 다 안다든지... 해괴한 말들을 많이 했는데 진지하게 그 얘기를 할 때면 나는... 정말이지 나까지도 정신이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엄마가 얘기를 꺼내는 순간이 무섭고 두렵고 같이 미쳐갈까 봐 나까지도 불안했다.


 2007년 4월쯤 내가 스무 살 때 엄마가 두 번째 입원을 했다. 그런데 이때의 기억이 없다...! 그때 나는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였는데 내 머릿속에서 일부분을 지우개로 지워버렸던 거 같다. 우연히 그때의 일기를 발견하고는 가까스로 기억을 해냈다.  


2007년 4월 13일 일기

내게 필요한 건 견디는 것...?

주춤하는 순간, 무너져 버릴 것 같다.

견뎌가는 것만이 필요하다면...

신념 속에 흔들리지 말기를...

존재해 다오...

죽는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것 아니겠니...

지금 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것 아니겠니...

지금쯤 낯선 곳에서 그리워하고 있을 그대에게...

난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일까.

나마저 주춤거린다면

어떤 신념도 남아있지 않다면...

괴로움에 힘들어하고 있을 나머지마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삶을 포기하지 말아요.

없어진다면,

그거 또한 허무한 것이 무어 있다고...

나는 살고 싶어요.

그래서 돌아왔어요.

사랑한다고 말할래.

그대 꼭 돌아와요.


2007년 4월 16일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이러다가 밑바닥까지 닿을까 봐 앞이 안 보인다.

어떻게 내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어요.

어떻게 나만 편하게 공부할 수 있어요.

전화기를 붙잡고 소리 내지 않으려고

눈물을 먹었다. 꾸역꾸역 숨을 들이쉬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말들이 너무나 많아서...

말하지 못한 말이 너무나 많다.

후회가 되는 일들만...

잘못했던 기억들만이 떠오른다...

괴롭다. 속상하다...

좀처럼 마음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기댈 곳도 의지할 곳도 없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방해되고 싶지 않다...

그대에게 힘들다고 수 백번, 수 천 번

말하고 싶었다. 지쳐서... 이젠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다고...

웃고 싶을 때 웃었던 게 언제더라...

내 안에 다른 나를 만들고는 그게 나였더라... 믿고 싶었다...

괴롭고 속상하다.

카타르시스.

정화될까?

술 마시면...?

울면...?

가슴을 치면...?

꽉 막혀버린 속이...

나를 괴롭힌다.

뭘 먹어도 체한 것처럼 내려가질 않는다.

먹고 싶은 것도 없어...

애써 뭘 들으려고 하지 않고 싶어서...

그냥 지나치는 허공의 소리가

닫혀버린다.

울 수가 없어요...

그대 앞에선 울 수가 없어요...

정리...

무어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어질러져 버린 뇌 속 회로들이 엉켜서

풀어지지 않을 거 같아.

청소를 했다.

정리를 했다.

마구마구 정리를 했다.

이러다 내 몸도 정리하고 싶어 질 거다.

머리도 정리하고 싶어 질 거고

천천히 다른 사람들도 정리할 거고...

정리하고 나면

다시 제자리로 가야지...


2007년 5월 1일

나도...

좀 봐주면 안 될까요?

나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그리웠는데.

나도 사랑받고 싶은데...

아직도 어린 건가요.


가장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자,
너의 온 우주인 엄마에게 기댈 수가 없어 힘들었겠다...

그 외로움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서웠을까...
온전한 정신으로 엄마 옆에 있기도 힘들었을 텐데...
엄마의 그 모습들을 보고 괴로웠지?
많이 힘들었지?
엄마의 이상한 행동들을 볼 때마다 너도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거야...

그럼에도 이렇게 잘 커줘서 고마워...
이제 심장을 떨어뜨리지 마...
그러지 않아도 돼.
우리 같이 꼭꼭 담아두고
공허함을 따뜻함으로 채워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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