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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Feb 07. 2024

이집트의 ‘정’을 느끼다 - 부룰루스(두번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겨우겨우 잠이 들었는데 해가 뜨자마자 눈이 떠졌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생긴 버릇이다. 아침에 늦잠을 못 잔다. 해만 뜨면 일어나는 버릇. 늙으면 아침잠이 없다는데 난 아직 안 늙었는데.


어찌 되었든 새벽에도 기도소리와 닭 울음소리 때문에 중간중간 잠에서 깼다. 시골이라 그런지 기도 소리는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또 닭은 왜 이렇게 일찍 우는지 (거의 새벽 3 ~ 4시에 울었다.) 안 그래도 흥분되어 잠을 잘 못 잤는데 더 잠을 못 자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나에게는 다 추억으로 남을 수 있어 좋았다. 누구도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니까.

일어나자마자 집 옥상으로 갔다. 주변 풍경을 보기 위해서.
어제도 봤지만 한 번이라도 더 내 눈 속에 남기고 싶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어제랑 똑같았다. 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이런 것들이 더 좋다.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멋진 호수 등
어제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아침 풍경 구경을 마치고 아래층에 있는 손님방에서 쉬고 있는데 조카들이 찾아왔다. 하루 지났다고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이들. 아이들하고 놀고 있으니 자꾸만 딸 시아가 생각났다. 한국에 있었으면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사랑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시아랑 비슷한 또래다 보니 더욱더 생각이 많이 났다. 보고 싶다 시아야~~~


이렇게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 Sabry가 와서 옛날집 구경 가자고 했다. 약 10년 전만 해도 이곳에 도로와 전기가 없어서 갈대로 만든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때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아직까지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돌아가신 할아버지 유품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어
매일 아침, 저녁마다 할머니가 거기에서 시간을 보내신다고 했다.


정말 우리나라 같으면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집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고, 실제로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살던 집이라니.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데서 살았지? 우리나라 초가집과 어떻게 보면 약간 비슷하긴 한데 화장실이 우리나라는 밖에 따로 있었지만 여기는 화장실도 집안에 같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한 창고와 주방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빵을 구워 먹던 화로는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옛날 우리나라 주방에 있던 가마솥같이 나무 장작을 태워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정말 이제는 보기 힘든 옛날 생활모습까지 볼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밖에서 Sabry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역시나 조카들이 와서 사진 찍어달라고 한다. 역시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도 신기해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특히 Ahmed가 나를 가장 잘 따랐는데 내 옆에 꼭 붙어 사진 찍는데 가만히 두면 하루종일 찍을 태세였다. Ahmed의 셀카 타임. 작동법을 알려줬더니 혼자서도 잘한다.


드디어 아침 준비가 끝났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다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다. 왜냐하면 어제 점심이 너무 맛있었으니까.


아침은 직접 구운 빵과 꿀, 치즈로 이루어진 간단한 식사였다. 하지만 이것도 다른데서 먹어본 맛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이집트에 머물면서 이집트 전통 빵(A’eish_일명 걸레빵)을 많이 먹어봤지만 여기서 나온 빵은 더 고소하고 퍽퍽하지도 않으면서 훨씬 더 맛이 있었다. 특히 검은색 꿀에 찍어 먹으니 더 맛있었다.
한번은 검은색 꿀에,
한번은 그냥 꿀에,
또 다른 한번은 치즈와 함께,
정말 식사 때마다 내 혀를 즐겁게 해 주는데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가 없도록 맛있었다. 간단한 아침이었지만 나에게는 엄청 행복한 아침 식사였다.


이렇게 아침을 먹고 쉬고 있는데 Sabry가 오늘은 주말이라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자기가 대표로 나가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모스크를 몇 번 가보았지만 실제로 예배드리는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기대됐다. Sabry는 손수 이집트 전통의상을 다리며 예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차를 타고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모스크가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Sabry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네에서 Sabry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코란을 다 외우고, 코란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으니 이슬람 국가에서 Sabry는 존경받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여기서는 내가 알던 Sabry가 아니었다.


안에 들어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가 들어가자마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잠깐 보는 게 아니고 한참 동안이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기서도 나는 완전 인기 스타였다. 먼저 Sabry가 친척 어르신들에게 나를 인사시키고 강단으로 올라갔다. Sabry가 그곳에 서 있으니 또 다르게 보였다. 같이 일하면서 혼나던 Sabry가 아니었다. 정말 기분 묘했다.


Sabry의 설교는 30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처음에는 Sabry 설교를 동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는데 너무 길어져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몰라서. 끝나고 나서 물어봤더니 30분 동안 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30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데 열정이 대단했다.


예배의 순서는 처음에 들어와서 절을 하고, 다음에 코란을 읊으면서 기도를 올리고 30분간 설교를 듣고, 마지막으로 다시 코란을 읊으며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설교를 Sabry가 진행하다니. 그것도 정해진 것 없이 즉흥적으로. 진짜 Sabry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모든 예배가 끝나자 Sabry의 친척들이 나에게로 몰려들었다. 다들 내가 온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다. 한 명 한 명 다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며 Sabry가 소개시켜 주고 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다들 자기 집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Sabry도 당황했는지 웃으면서 자기 집에서 먹기로 했다고 친척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정말 여기서 초대받은 집에만 가려고 해도 한달은 여기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인심이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고마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 여기서 Sabry 친구 중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Sabry 외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친구였다. 명절을 맞아 휴가를 받아서 와 있었는데 모스크에서 나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Sabry 외에 영어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아직도 아쉬운 것이 여기서 다같이 사진을 못 찍었다는 것. 생각할수록 너무 아쉽다.


이렇게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Sabry 아버지께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다. 꼭 한국에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정말 말이 통했으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을텐데 너무 아쉬웠다. 아랍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사진 찍을 때는 웃지 않으셨지만 항상 말씀하실 때는 웃으면서 이야기하셨다. 아마 사진에서는 근엄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손자를 안고 찍을 때는 여느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어제부터 해산물 요리를 기대하고 있었던 나에게 또 한번의 행복한 시간이 다가왔다. 나의 가장 큰 즐거움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특히 어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그런 음식. 값비싼 레스토랑 음식보다 훨씬 값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마실 차도 준비해 놨는데 그 잠깐을 못 기다리고 난 잠들어 버렸다. 정말 행복한 꿀잠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맛에 취해 잠이 들었으니 이 세상 누가 부럽겠는가.

30분 자고 일어났을까. Sabry가 배가 준비되었다고 나가자고 했다. 드디어 호수에 배 타고 나가는구나. 정말 할 것도, 가볼 곳도 많은 곳이었다.

집 앞에 있던 조금한 배와 같은 배였다. Sabry 친척 중에 한 명이 배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직접 가지고 왔다고 했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다니. 정말 너무 고맙고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배를 타고 갈대숲 사이를 지나 큰 호수가로 나갔다. 갈대숲 길은 생각보다 꽤 길었다. 배를 타면 금방 나갈 줄 알았는데 가도 가도 끝이 안보였다. 예전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갈대가 많았다는데. 집 앞에는 큰 배가 수심이 낮아 들어올 수가 없어서 큰 호수가로 가서 큰 배로 갈아탄다고 했다. 한참을 달려 큰 호숫가에 도착했을 때 탁 트인 호수는 전혀 호수같이 보이지 않았다. 바다 같았다. 지도에서 본 것처럼 엄청 넓었다. 하지만 이야기했던 큰 배는 단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휴일(금요일)이라 다들 쉰다고 했다.
큰 배를 못다 아쉬웠지만 작은배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이 넓은 호수에 우리 밖에 없다니. 이 넓은 호수 전체를 전세 낸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수가.


Sabry도 너무 즐거웠던지 갑자기 옷을 벗더니 호수로 뛰어들었다. 이야기 들어보니 Sabry도 이렇게 배를 타고 나와본 적이 한참 전이라고. 내 덕분에 자기도 오랜만에 나왔다고 엄청 좋아했다. Sabry도 타지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집 자주 못 오고, 집에 와도 며칠 못 있다가 가니까 배 타고 나올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모처럼 이렇게 배를 타고 나와서 수영도 하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며 엄청 신나 했다. 나도 수영만 할 수 있었으면 같이 했을텐데. 수영 못하는 게 또 여기서 발목을 잡네.


배를 타고 가면서 여기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Sabry 차를 타고 출발했을 때부터 배를 타고 있는 현재까지.
정말 꿈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모든 풍경들이 멋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다 친절했고,
모든 음식들이 다 맛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이런 곳에 나를 초대해 준 Sabry가 더없이 고마웠다. 난 해준 게 거의 없는데 너무 많이 받는 것만 같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호수는 이 동네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다. 부룰루스는 다른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어업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이다. 여기서 잡은 물고기를 팔아 생활을 하고 자식들 키우고 노후를 보낸다.
이 호수가 아주 오랫동안 현재의 모습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10년 전에 도로와 전기가 들어왔듯이 이곳도 점점 더 발전해 나가겠지만 이 호수만큼은 더 개발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도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배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아쉬웠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곧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시 카이로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여기에 와 볼 수 있을까. 정말 여기서의 생활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에 중간에 정박해 있던 큰 배에 올라가 보았다.
큰 배를 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 배는 이집트에서도 여기밖에 없다고 했다. 둥근 모양의 배는 진짜 거북이를 닮았다. 우리나라 거북선처럼. 다른 구동 기구는 없고 오로지 바람의 힘 만으로 배를 움직인다고 했다. 옛날 방식 그대로. 그리고 이 배 밑에는 쉴 수 있는 공간과 물고기를 싣을 수 있는 공간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수가 너무 넓어 한번 나가면 일주일은 있다가 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아래 쉴 수 있는 공간에 음식을 챙겨놓고 밤에 이곳에서 잔다고 했다. 나는 매일 나갔다가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호수가 도대체 얼마나 넓길래.


여기서 또 한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아침에 모스크에서 만난 영어를 잘하는 친구. 이곳까지 찾아와서 같이 배 위에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 아까 자기 집에 가자고 했는데 못 가서 아쉬워서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또 다시 나를 보러 와줘서 정말 고마웠다.


여기서 나도 노를 저으며 배를 운전해 보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노도 생각보다 무거웠고 배도 내 생각대로 잘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잘한다고 지금이라도 배 타고 나가도 문제없다고 놀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해가 점점 더 지고 있었다. 배를 집 앞에 정차시키고 위로 올라오니 Sabry 아버지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이 모래밭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보니 정전이 되어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어제는 가족들끼리 밖에서 돗자리 깔고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을 동네사람들과 다 같이 모래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일상인 이 동네 사람들. 정말 인간미가 넘친다. 옛날의 우리나라도 이랬을텐데. 지금은 너무나 각박해져 버린 사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인데 여기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이 이야기 꽃은 해가 다지고 달이 뜨고 별이 뜰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르익어 갔다. 중간에 기도시간이 되면 바로 옆에 있는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다시 나와 모래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갈대로 만든 모스크. 그 뒤로 Sabry 아버지가 새로운 모스크를 짓고 있는데 완성되기 전까지 옛날부터 사용해 왔던 갈대 모스크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바로 이곳이었다.


이 정전으로 인해 나는 또 한가지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달빛이 밝을 수 있을까. 정말 조금한 조명하나도 없는 곳에서 달빛은 그 어떤 조명보다도 밝았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까지 알 수 있었으니. 옛날 달빛만 보고 길을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 이제까지 이렇게 밝은 달빛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태어나 항상 조명들이 넘쳐나는 곳에 살았으니. 할아버지 댁이 시골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어두웠던 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정말 많은 별들을 보았다. 이 또한 어둠으로 인해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TV나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그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정말 별들이 쏟아질 것 같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아무리 찍어도 그때의 그 느낌이 나질 않았다. 굉장히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정말 이 모습을 내 눈에 담기 위해 한참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목이 아플 때까지.

이렇게 밤은 찾아왔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웃집에 문제가 생겨서 Sabry가 가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Sabry가 갈까?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돌아온 Sabry는 졸려서 지금은 도저히 못 가겠다고. 조금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출발하자고 했다. 나도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이집트 도로 사정상 새벽 운전은 정말 위험할 것 같았다. 그것도 잠도 못 잔 상태에서는 더욱더 안 될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어보니 여기서는 집에 문제가 생기면 경찰을 부르는게 아니라 주변 이웃들이 와서 해결해 준다고 한다. 특히 Sabry처럼 종교 관련 일을 했던 사람은 더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랑 아버지랑 가서 해결하고 왔다고 했다. 자세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시골 마을에서의 Sabry 위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고 짐을 싸고 Sabry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정말 너무 아쉬웠다. Sabry 부모님도 너무 아쉬워하셨고 하루 더 있으면 소도 같이 잡고 맛있는 음식 더 많이 해줄 수 있는데 간다고 너무 안타까워하셨다.
나도 정말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정말 며칠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정말 좋은 휴양지에 갔을 때보다도 더 간절히 있고 싶었다. 그 정도로 있는 동안 너무 편안했고 너무 행복했다.


마지막 이 사진 한 장 속에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더 많은 걸 직접 말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Shukran(고맙습니다)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더 좋은 표현, 더 좋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고,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가도 되는 걸까. 앞으로 이 분들께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를 타고 집을 빠져나가는데 끝까지 Sabry 부모님은 창밖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 정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카이로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간 곳이 있었다. 바로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곳. 처음에 그냥 지나쳐 왔는데 내가 사진 찍고 싶다고 해서 가는 길에 들렀다. 이곳에 다리가 생기면서 Sabry 동네에 도로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 다리 밑으로 가서 한쪽은 바다. 한쪽은 호수를 바라보며


‘다시 또 오겠습니다.’


다짐했다. 그때는 내가 받았던 사랑을 조금이나 다시 드릴 수 있는 선물과 함께 말이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바다, 오른쪽은 호수였다. 그리고 바다와 호수에서 타는 배가 달랐다. 호수에서 타는 배는 거북이처럼 납작한 배였고, 바다에서 타는 배는 아래가 깊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딱 봐도 한눈에 어떤 배가 바다에서 타는 배고 어떤 배가 호수에서 타는 배인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부룰루스에서 사진을 남기고 카이로로 향했다. 카이로로 향하는 동안 Sabry 장인어른이 전화와서 왜 자기 집에 들르지 않았냐고, 와이프가 전화해서 왜 더 있다 가지 오늘 가냐고 아버님 어머님이 계속 그러신다고 전화가 왔다. 전생에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했나 보다. 정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 걸 보면. 이런 여행을 통해 난 다시 한번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내가 받은 사랑이 너무 과분하기 때문에 이걸 갚으려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줘야하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이집트에 왔지만 난 일 뿐만이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의 사랑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 일을 이집트에서 이집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이집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집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면 일을 당연히 따라온다고 본다. 내가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 집에 초대 받아 간 것도 이집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다가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집트를 사랑하지 않고 이집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 친구들이 나에게 자기 집에 가자고 하겠는가. 여기 이집트에 와서 일로서도 한층 발전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한층 더 발전하는 내가 되는 것 같았다. 그게 한국 사람이건 이집트 사람이건 다른 나라 사람이건 상관없이.

마지막으로 부룰루스의 강을 다시 한번 내 마음속에 담아 본다. 창문을 열고 한없이 호수가를 바라본다.


아 깜빡한 것이 하나 있다. 카이로에 도착해 Sabry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준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명함. 코란을 가르치는 사람의 명함이라고 했는데 이걸 보는 순간 빨리 Sabry가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나랑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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