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일어 단어 하나의 위용!
SNS나 여기저기 다양한 기사를 접하다 보면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이어가는 젊은이는 물론 몇 가지 이상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내게 주어진 한 가지의 일도 때로는 버거워하며 지내는 저에는 때론 경이롭기도 하고 때론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일한 만큼 벌이도 넉넉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비정규직의 특성상 그다지 큰돈은 만지지 못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부분은 고용주의 입장과도 맞물리기에 편향적으로 어느 편을 거들기는 곤란한 문제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마치 편하게 부모의 돈으로 학업을 마친 얌체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부끄럽습니다. 부모님의 수입이라야 월급 소득이 전부이니 풍족한 삶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 앞에서 등록금으로 한숨조차 쉬지 않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마땅히 아르바이트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거니와 해볼까? 제대로 시도조차 안 했습니다. 참 태평하게 학교를 마친 셈입니다.
하기야 두 번 정도의 시도는 해보았습니다. 하나는 학습지 영업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꽤 유명한 학습지인데 지금처럼 영업망이 좋은 시절이 아니어서 일일이 가정을 다니며 계약을 따내는 방식이었지요. 건당 이~삼십 원을 수당으로 준다는 조건이었는데 어느 집이 해당 학생을 키우는지도 모르는 터에 시도조차 못 하고 포기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음악전문점의 DJ였습니다. 단지 팝을 좋아한다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유만 가지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틀을 하다가 선임 DJ의 잔소리에 아쉬울 이유 없던 저는 그날로 문을 박차고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예 아르바이트는 제게 지워진 단어였습니다.
우리 시대의 아르바이트 현장이란 그 종류가 한정적이었습니다. 그나마 대학생이 쉽게 할 수 있던 과외는 신군부의 과외 금지 조치로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불온사상을 퍼트릴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편의점이나 카페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니 기껏해야 신문이나 우유배달이 가장 간편한 수단이었습니다. 힘이 좀 있는 친구들은 방학 때 소위 막일이라고 하는 현장 일로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돈을 손에 쥔다는 일차적인 기능 이외에 아르바이트의 순기능은 분명 많을지도 모릅니다. 고등학생 때에는 가정형편 때문에 배달하는 친구나 또래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난 행복한 아이구나!’라는 값싼 위안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이겨내려 애쓰는 모습에 많은 도전을 받곤 했습니다. 이 도전은 ‘난 게으르구나!’라는 단순함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세상은 네가 여기는 것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반드시 수입도 비례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세상에 좀 더 열정을 쏟을 만한 가치는 아직 남아 있어! 이렇게 다양한 교훈으로 다가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요? 마음이 풍족하다는 밑바닥에는 경제적 풍요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업무의 양과 수입의 묘한 불균형, 만족감. 이런 것들의 상관성이 여느 수학 공식으로는 풀리지 않을 듯한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