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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Apr 25. 2023

딴짓하려면 수업은 왜 듣니?

그것도 대학생이 말이야!

(이미지출처: 피리 부는 밍구) 대학은 늘 낭만이 있지만, 그렇다고 항상 그런 건 아닙니다.


젊을 때 지방의 치과대학에서 잠시 강의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전공의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니 그 경력이 참작되었던 모양입니다.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마취를 전부 다루기란 사실 불가능한 일이고 치과의사의 특성상 졸업 후 마취과 의사로 나아갈 건 아니기에 개론(槪論) 정도의 개념을 세워주고, 임상에서 다룰 마취 정도로만 다뤄주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전혀 배울 의욕이 없는 학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몇 명의 학생들은 치과의사를 하면서 마취과라는 학문이 도움이나 되겠나? 싶었던 모양입니다. 딴짓하는 건 그래도 애교 정도였고 아예 대 놓고 자는 경우 속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어느 날은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결석하지 왜 나왔느냐 반문도 하고 싶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다가왔습니다. 출제 방향을 짚어주고 비록 학점이 높지 않지만 잘 치루려니 믿고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락자가 생긴 것입니다. 점수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59점이 나왔습니다. 60점 밑이니 당연히 F입니다. 치의학과 담당 교수님과 상의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마음 한편에는 1점 차이로 과락을 준다? 그건 아니 될 일이지! 그런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답변은 의외로 명쾌했습니다. “그것은 그냥 교수님 재량입니다. 결과에 따르겠습니다.”
 

출강 교수의 과목에서 과락이라? 말 그대로 평생 치과의사와 관계가 없을지도 모를 마취과학에서 과락이라? 정말이지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이틀을 고민했습니다. 교무과에서는 성적을 어서 넘겨주기를 바라고 있지, 고민은 되지, 결국 선택을 한 게 다시 채점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가 명백한 객관식은 어쩔 수 없고 단답형이나 여타 주관식에서 여지를 주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62점 D-로 처리했습니다. 그렇게 그해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학교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불가피하게 우열은 존재합니다. 성적의 우열이야 어떻게 해도 남는 것이지만 열반(劣班)에 대한 편견은 없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이성적으로 분명히 압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학생의 얼굴도 모르고, 유행가 제목처럼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한결같은 나의 바람은 ‘부디 좋은 치과의사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학부의 성적과 사회의 성적은 분명 다르듯이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선한 의사로 남아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놓기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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